"일본도 우리 겁낸다" 축구·야구 못하는 '일본 격파' 도전 나선 한국 검도...제1회 AOKC 대회 출격
검도 대표팀의 훈련 장면(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검도 대표팀의 훈련 장면(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오이도]

"손!" "머리!" "아아아아!" "야압!"

여기저기서 힘찬 기합과 죽도 휘두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27일 오후 경기 안산 오이도에 자리한 경기도검도수련원.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 검도선수권대회(AOKC) 개막을 사흘 앞두고 대한민국 검도 국가대표팀이 마지막 단체 훈련을 진행했다.

검도에서 모든 공격은 우렁찬 기합에서 시작된다. 강한 집중력과 의지의 표현도 기합에서 나온다. 수련원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괴성에 가까운 기합 소리가 대표팀의 의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가벼운 몸풀기로 시작한 훈련은 남자부·여자부로 나뉘어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일대일 대련으로 마무리됐다. 훈련이 끝난 뒤 호면을 벗은 선수들의 얼굴부터 머리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날 대표팀은 일본 출국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단체 훈련을 소화했다. 오는 30~31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한국은 남녀 선수 각 8명을 포함한 26명의 선수단이 출전한다. 23개국·지역에서 36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대회는 한국이 주도해 창설한 아시아·오세아니아검도연맹(AOKF)이 여는 역사적인 첫 번째 공식 무대다.

경기도 검도 수련원에서 진행한 검도 대표팀 훈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경기도 검도 수련원에서 진행한 검도 대표팀 훈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경기도 검도 수련원에서 진행한 검도 대표팀 훈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경기도 검도 수련원에서 진행한 검도 대표팀 훈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경기도 검도 수련원에서 진행한 검도 대표팀 훈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경기도 검도 수련원에서 진행한 검도 대표팀 훈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짐 무게만 23kg…단체 이동도 일이다

이날 훈련을 진행한 경기도검도수련원은 개관 22년을 맞은 검도 전용 시설이다. 검도 국가대표팀도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이용이 가능하지만, 아직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닌 탓에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 대표팀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이용하는데 눈치가 보인다”고 털어놨다. 검도 전용 훈련장도 없어 다른 종목의 체육관을 빌려 써야 하는 처지라, 대표팀은 이곳을 마지막 훈련 장소로 택했다.

수련원 마룻바닥 양쪽에 정좌한 남녀 선수들은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호구를 착용했다. 호면까지 쓰고 일대일로 마주 선 두 선수가 죽도 끝을 상대에게 겨눈 채 눈 싸움을 벌였다. 이후 번갈아 가며 기합과 함께 뛰어들었다. 검도에서 득점이 인정되는 부위는 면(머리)·코테(손목)·도(허리)·쓰키(목) 네 곳이다.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정확하게 때리면서 동시에 기합을 소리쳐야 유효 타격이 된다. 각 소속팀에서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이들이 모인 대표팀인 만큼 훈련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훈련의 밀도가 달랐다.

훈련을 마친 선수단은 단체 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이날을 기억에 새겼다. 이날 코칭스태프는 선수단에게 태극기와 대회 로고, 선수단 이름이 새겨진 면수건을 나눠줬다. 박상섭 대표팀 감독은 하나씩 직접 건네며 "면수건을 머리에 두르면 호면 뒤로 태극마크가 보이도록 디자인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배와 하반신을 보호하는 갑에도 큼직한 태극마크를 새겼다. 일본 도장에서 선수들이 죽도를 들어 올릴 때마다 곳곳에서 태극마크가 번쩍일 게다.

검도는 호면·갑(가슴)·완(팔목)·허리 등 호구 일체와 도복, 죽도까지 장비가 많다. 대표팀 관계자는 “선수 한 명당 장비 무게만 23㎏에 이른다”고 했다. 비행기 이동 때 짐 부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관계자는 “일본 현지에서는 재일 동포 검도인들이 식사와 이동에 도움을 주실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새 검도협회 집행부가 제한된 환경에서도 적극적으로 선수단을 뒷받침했고,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검도를 아끼는 이들이 힘을 보탰다. 박 감독은 "국회 동호회 분들이 검도계의 애로 사항을 관심 갖고 잘 들어주신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검도에 애정을 갖고 도와주는 분들이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검도 대표팀을 이끄는 코칭스태프. 박상섭 감독, 김민규 코치, 박연정 감독, 이윤영 코치(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검도 대표팀을 이끄는 코칭스태프. 박상섭 감독, 김민규 코치, 박연정 감독, 이윤영 코치(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검도 대표팀을 이끄는 코칭스태프. 박상섭 감독, 김민규 코치, 박연정 감독, 이윤영 코치(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검도 대표팀을 이끄는 코칭스태프. 박상섭 감독, 김민규 코치, 박연정 감독, 이윤영 코치(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야구·축구는 일본 만나면 연전연패…검도는 '대등'

야구와 축구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다.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선수들도 엄청난 돈을 받지만, 국제대회에서 일본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한일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이제는 라이벌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상황이다. 검도는 다르다. 검도 인구도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고 인프라 격차도 압도적이지만, 국제무대에서는 늘 대등한 승부를 펼쳐왔다. 2013년 타이완(대만)에서 열린 제13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을 꺾고 처음으로 남자 단체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제19회 대회에서도 남녀 단체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대회마다 일본과 한국이 결승에서 맞붙는 구도가 굳어진 지 오래다.

이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상섭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박 감독은 청주 출신으로 세계선수권 9~12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단체 준우승 4회·개인 3위를 기록했고, 2022년 8단 검도선수권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베테랑이다. 현재 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처 교수로 재직 중인 박 감독은 "한국이 점점 올라오니까 일본이 경계하면서 겁낸다”면서 “인프라 차이가 이렇게 큰데도 비등비등하니까 대단하다고들 한다”고 힘줘 말했다.

남자팀 코치는 광명인화검도관 관장을 맡고 있는 김민규 코치다. 김 코치도 “검도 인구가 일본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 매 세계선수권 때마다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해왔다. 객관적인 전력은 동등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 일본 안방에서 열리는 첫 대회인 만큼 홈 어드밴티지는 경계 대상이다. 김 코치는 “심판도 사람이다 보니 기가 일본 쪽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그런 핸디캡은 언제든지 있었기 때문에 극복하려고 준비해 왔다"고 덧붙였다.

대표팀 주장 조진용 6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대표팀 주장 조진용 6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여자팀 주장 한하늘 5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여자팀 주장 한하늘 5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선수단, 분위기도 좋고 실력도 최고"

대표팀은 지난 1월부터 한 달에 두 차례씩, 2박 3일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총 11번의 소집 훈련을 소화했다. 이 중 네 차례는 전지 훈련으로 실전 포지션 적응까지 마쳤다. 김민규 코치는 "팀워크나 기세, 체계가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했다.

여자팀을 지도하는 이윤영 코치는 고교 시절 처음 죽도를 잡은 늦깎이 출발이었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국가대표 무대를 밟은 실력자다. 현재 이윤영 검도장을 운영하며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박연정 감독(경주시청)을 보좌하는 이 코치는 "이번 선수들은 분위기도 너무 좋고 실력도 뛰어나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남자팀 에이스는 용인시청 소속의 조진용(1990년생)이다. 세계선수권 네 차례 출전에 빛나는 간판 선수로, 이번 무대를 현역 국가대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한다. 초등학교 때 처음 죽도를 잡아 지금까지 달려온 고참 중의 최고참이다. 20대에는 스피드가 강점이었다면,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으로 상대를 읽는다. 경기 전날 밤에는 상대와의 가상 대결을 머릿속으로 반복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마음도 단단하게 무장한다.

조진용은 "검도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긴장과 흔들림, 자신감은 모두 칼끝에서 나온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후회 없이 제대로 붙어보겠다"고 말했다. 조진용은 검도 선수로는 드물게 SNS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일반 대중에게 검도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여자팀 주장을 맡은 화성특례시청 소속 한하늘도 이번 대회를 남다르게 맞이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검도를 시작한 한하늘은 올해 대통령기 전국실업검도대회 개인전 우승자이자, 지난해 밀라노 세계선수권 여자 단체 준우승의 주역이다. 이번 대회에선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찼다.

한하늘은 “동생들이 고맙게 잘 따라줘서 분위기는 역대 최고"라면서 "목표는 무조건 결승 진출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죽도 하나로 상대의 생각을 읽는 검도의 매력을 종주국 안방에서 보여주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한하늘은 “검도에서는 죽도 끝에 닿는 미세한 감각으로 상대의 긴장과 흔들림, 의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서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싸우는 종목”이라고 검도의 매력을 전했다.

훈련을 마친 검도 대표팀(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훈련을 마친 검도 대표팀(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훈련을 마친 검도 대표팀(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훈련을 마친 검도 대표팀(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훈련을 마친 검도 대표팀(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훈련을 마친 검도 대표팀(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아시안게임을 향한 첫발

아시아·오세아니아검도연맹이 주관하는 이번 대회엔 단순한 성적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시아·오세아니아검도연맹은 한국이 주도해 국제검도연맹(FIK)에 설립을 건의한 끝에 지난해 12월 공식 창립됐다. 검도의 아시안게임, 올림픽 진입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국제검도연맹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단체 자격을 얻으려면 복수의 대륙 연맹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아시아·오세아니아 연맹 창립은 그 요건을 채우는 핵심 기반이다.

검도가 정식 종목이 되려면 독립된 아시아 연맹의 존재가 필수다. 아시안게임에 진입하면 예산 규모가 달라지고, 전국적인 스타가 나오고,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뒤따른다. 지금처럼 선수촌에서 눈치를 보며 체육관을 빌려 쓰는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 있다. 김 코치도 "아시아 연맹이 있어야 아시안게임 종목 채택을 위한 행정적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진용은 더 먼 미래를 내다봤다.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 무대까지 진입한다면 검도가 대중적으로 더욱 사랑받는 종목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30일 개인전을 시작으로 31일 단체전까지 이틀간의 열전에 나선다. 10배가 넘는 인프라 격차와, 정식 종목도 아닌 열악한 현실을 오직 실력과 투지로 메워온 대표팀이다. 경기도수련원을 가득 채웠던 기합 소리가, 이제 도쿄 무도관을 가득 채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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