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돔 실패 반복 말라" KBO 레전드 10인이 선거 유세차에 오른 이유는? [더게이트 현장]
야구 레전드들이 고척스카이돔 유세에 함께 했다(사진=더게이트 DB)야구 레전드들이 고척스카이돔 유세에 함께 했다(사진=더게이트 DB)

[더게이트=고척]

"2007년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했던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오세훈 후보입니다."

6·3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31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 앞 교차로에 우렁찬 바리톤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목소리가 시작된 곳에는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마이크를 잡은 원로 야구인 김용철이 있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그에겐 동대문이 없어질 당시의 울분과 원망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듯했다.

김용철은 “우리 야구인들에게 동대문야구장은 그냥 야구장이 아니었다. 우리 야구를 꾸려온 역사였다”면서 “그런데 2007년 동대문야구장이 흔적도 없이 강제 철거됐다. 그걸 방임했던 사람이 바로 오세훈 후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용철의 시선이 향한 정면에는 오세훈 시정이 남긴 또 하나의 유물, 고척스카이돔이 자리했다. 김용철의 뒤로는 현역 시절 소속팀 유니폼을 입은 10개 구단 대표 야구인들이 나란히 섰다. 이들이 선 곳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차 위였다.

선거를 앞두고 야구인들이 특정 후보 유세에 집단으로 공개 동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또 하나의 동대문과 고척돔이 반복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야구 꿈나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물려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날 이들을 한자리로 불러냈다.

-동대문 사라진 날의 울분, 김용철 "동대문에서 잃은 야구역사 잠실 돔구장에서 되찾아야"-

연사로 나선 김일권 원로(사진=더게이트 DB)연사로 나선 김일권 원로(사진=더게이트 DB)

동대문야구장은 한국 야구인들에게 단순한 야구장장이 아닌 역사적 성지였다. 1982년 3월 27일 KBO 리그 사상 첫 개막전이 열린 현장이자, 한국 아마추어 야구를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이 구장은 2006년 12월 18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조성을 추진하며 야구계의 거센 반발을 누르고 철거를 강행한 결과다. 한국 야구의 성지가 전시행정에 밀려 폭파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경험은 오래도록 야구인들의 가슴에 한으로 남았다.

동대문야구장을 없앤 자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건립된 시설이 지금의 고척스카이돔이다. 2009년 첫 삽을 뜨고 6년 7개월 만인 2015년 9월에야 완공됐다. 완공 목표 시점만 세 차례나 밀렸다.

건립 과정부터 야구계 의견은 뒷전이었다. 청소년 야구 월드컵 개막에 맞춰 서울시장이 시구하겠다는 정무적 판단이 우선이었고, 그 결과 도면과 시공이 동시에 진행되는 패스트 트랙 방식으로 졸속 추진됐다.

KBO 허구연 총재가 해설위원 시절 '21세기 최악의 돔'이라고 평가할 만큼 완공 이후의 민낯도 처참했다. 4층 좌석의 가파른 경사와 좁은 시야, 불편한 내부 동선, 열악한 주변 편의시설에 지붕 누수 문제도 생겼다. 최근에는 홈팀 선수단이 경기후 훈련을 하려고 하는데 서울시 관리공단이 강제 소등해 큰 논란을 빚었다. 동대문을 헐고 대신 생긴 구장이 고척돔이라는 건 한국 야구계 전체의 비극이다.

-차명주 "우리 청년과 아이들이 뛰는 목동야구장, 장충 리틀야구장 되살려 달라"-

고척스카이돔 유세에 함께한 야구인들(사진=더게이트 DB)고척스카이돔 유세에 함께한 야구인들(사진=더게이트 DB)

이제 야구계의 시선은 잠실로 쏠린다. 1982년 개장한 잠실야구장이 올 시즌을 끝으로 해체를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해당 부지에 3만 5000석 규모의 신축 돔구장을 2031년까지 완공할 방침이다. 총 사업비는 최초 계획했던 2조 1700억원에서 3조원대까지 크게 증액됐다.

문제는 신축 구장이 마이스(MICE·국제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복합단지 개발 사업의 부속물처럼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야구장이 상업시설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체 구장 대책도 미흡하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공사 기간인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올림픽주경기장을 개조한 임시 구장을 써야 하는 처지다. 평일 기준 1만 8000석으로, 두 팀이 지금껏 쓰던 2만 7000여 석짜리 잠실야구장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그간 오세훈 시정이 동대문과 고척에서 해온 일을 고려하면 잠실돔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야구계에서 걱정하는 건 결코 기우가 아니다. 앞서 경험한 좌절과 실패를 세 번 반복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이날 야구인들을 자리에 모았다.

-김일권 "천만 시민이 모두 같은 홈으로 돌아가는 서울을 만들어 달라"-

야구 레전드들이 고척스카이돔 유세에 함께 했다(사진=더게이트 DB)야구 레전드들이 고척스카이돔 유세에 함께 했다(사진=더게이트 DB)

이날 행사는 '서울 통합 희망 야구공 전달식'으로 치러졌다. 선수단은 정 후보에게 유니폼과 각자의 사인이 담긴 대형 야구공을 전달하며 현장의 염원을 직접 전했다. 야구 점퍼를 걸쳐 입은 정원오 후보는 레전드들과 고척스카이돔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마이크를 잡은 정 후보는 고척돔을 직접 지목하며 잠실 신축 구장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방금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분들께서 '잠실 야구장을 돔구장으로 만드는 데 이왕이면 제대로 좀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고척 돔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만들 때 제대로 좀 만들어 달라는 말씀이었다."

이어 정 후보는 “시장이 되면 잠실야구장을 제대로 만들어서 세계적 수준의 야구장이 돔구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반드시 그렇게 해서 야구 발전에 더 큰 기여가 되는 잠실 돔구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직 선수들은 각자의 야구 철학을 시정에 투영해 지지 성명을 이어갔다. 한국야구 최고의 대도 출신 김일권 전 KIA 타이거즈 선수는 도루에 빗대어 서울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 목적지는 홈 베이스입니다. 서울도 그렇습니다. 강남에 살든 강북에 살든 동네는 달라도 결국 같은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서울입니다." 정 후보를 향해서는 "천만 시민이 모두 같은 홈으로 돌아가는 서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세 차례 홀드왕 출신 차명주 전 두산 베어스 선수는 배터리의 호흡으로 시정을 빗댔다. "투수가 아무리 전력투구를 해도 포수가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면 명승부는 없습니다. 오직 천만 시민과 야구만을 바라보는 든든한 안방마님이 돼 주십시오."

현장에는 ‘악바리’로 이름을 날렸던 이정훈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6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봉느님’ 삼성 강봉규, 해외파 출신으로 NC 다이노스 창단 당시 코치로 활약한 최경환, 키움 히어로즈 대표 ‘마당쇠’ 마정길, 커터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린 KT 금민철, 미 프로야구 LA 에인절스 출신으로 SSG에서도 활약한 정영일, LG 트윈스에서 두 차례 우승을 함께한 포수 출신 서효인 등 10개 구단 대표 전직 선수들이 자리했다.

김선웅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도 참석해 뜻을 함께했다. 반가운 야구 스타들의 출현에 이날 고척돔을 찾은 야구팬들과 지지자들은 물론 선거운동원들도 사인을 요청하고 사진 촬영을 함께하면서 추억을 나눴다.

정 후보는 유세 후 취재진 브리핑에서 “오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분들께서 잠실 구장을 이왕이면 제대로 지어서 많은 야구인이 사랑할 수 있는 명품 구장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며 "당선되면 챙겨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동대문을 잃고, 고척돔에서 실패를 맛본 한국야구에 찾아온 세 번째 기회. 정원오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야구인들은 기대와 바람을 품고 지켜보고 있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