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상징' 무지개 로고 옆에 성경 구절을?…동성애 혐오 논란 자초한 자이언츠 투수들의 집단 행동
무지개 로고 옆에 성경 구절을 쓴 렌든 루프(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무지개 로고 옆에 성경 구절을 쓴 렌든 루프(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더게이트]

샌프란시스코는 다를 줄 알았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성지이자,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먼저 이들과 연대해 온 구단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기 때문이다. 유니폼과 모자에 무지개를 새기며 다양성을 포용해 온 30년 넘는 역사는, 일부 선수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돌출하며 금이 가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샌프란시스코는 1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에서 '프라이드 나이트'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날 마운드에 오른 투수 다섯 명 중 네 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성애 커뮤니티와의 연대 거부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경기후 취재진과 만난 루프(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경기후 취재진과 만난 루프(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신앙'의 방패 뒤에 숨은 조직적 거부

이날 선발투수 렌든 루프와 불펜투수 JT 브루베이커, 라이언 워커는 구단이 지급한 프라이드 모자의 무지개색 'SF' 로고 옆과 측면에 성경 구절을 써넣은 채 마운드에 올랐다. 또 다른 좌완 샘 헨지스는 아예 프라이드 모자 착용을 거부하고 평소 쓰던 주황색 'SF' 로고 모자를 택했다.

매년 6월은 1969년 뉴욕 스톤월 항쟁을 기리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텍사스 레인저스를 제외한 29개 구단이 이 기간에 맞춰 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는 행사를 연다. 루프와 브루베이커가 모자에 적은 구절은 구약의 신이 노아와 언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창세기 9장 12~16절로 알려졌다. 무지개 상징을 성소수자 커뮤니티로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보수 기독교 일각의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행동이다.

경기 후 루프는 "무지개는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표징이며 신자들은 그 안에서 굳게 서 있는 것"이라며 "혐오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성소수자 팬들이 불쾌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는 "먼저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하겠다"고 답했다. "하나님이 너무나 많은 방식으로 나를 축복해 주셨고,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혐오는 없다'는 항변은 그럴듯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루프가 평소에도 모자에 같은 구절을 써왔다면 순수한 신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없던 구절이 하필 프라이드 나이트에만 등장했다. 1년 365일 중 구단이 성소수자 팬들에게 연대를 표하는 유일한 하루를 골라 이 구절을 적은 것이다. 이날이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 이런 해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모자 착용을 거부한 헨지스는 이번 행동이 선수들이 사전에 생각을 나눈 결과라고 털어놨다. 전체 선수단의 공식 논의는 아니었지만 "몇몇 선수들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며 내린 결정이며, 같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설명이다. 팀 내 분열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 고백은 도리어 이들의 행동이 사전에 조율된 조직적 항의였음을 증명한다. 사령탑 토니 비텔로 감독은 구단의 성소수자 포용 역사를 언급하면서도 "선수 개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다"며 논란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침묵의 불복'은 자이언츠만의 일이 아니다. 빅리그 전역에서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 자이언츠에서는 2024년에도 유격수 닉 아메드가 프라이드 모자에 성경 구절을 적었다. 라이벌 LA 다저스에서는 클레이턴 커쇼가 2025년 같은 행동을 한 데 이어, 올해는 블레이크 트레이넨과 알렉스 콜이 프라이드 모자 착용을 거부했다.

2022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 선수 다섯 명이 프라이드 나이트 유니폼 착용을 거부했는데, 탬파베이의 홈구장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겨냥한 미국 최대 규모의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올랜도 펄스 클럽에서 가장 가까운 메이저리그 구장이다. 보수 성향 매체들은 이들을 영웅시하는 기사를 쏟아내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성소수자 스포츠 전문 매체 아웃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켄 슐츠는 프라이드 나이트에 대해 "단 하룻밤이지만 스포츠 세계와 게이 커뮤니티 사이의 역사적 거리가 좁혀지는 날"이라며 참여를 거부한 이들을 향해 "역사 속에서 이 시대의 악당이 될 것이다. 트레이넨이 야구 역사에서 기억된다면 포스트시즌 활약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스펜서 스트라이더는 구단 주최 프라이드 행사에 참석해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성소수자 팬들의 존재가 스포츠 안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같은 리그 안에서도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블레이크 트레이넨(사진=MLB.com)블레이크 트레이넨(사진=MLB.com)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연대한 샌프란시스코의 30년 역사

샌프란시스코는 1994년 미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에이즈 인식 행사 '언틸 데어즈 어 큐어(Until There's a Cure)'를 열고, 2015년 동성결혼 지지 법정의견서 서명, 2021년 MLB 최초 유니폼 프라이드 색상 도입 등 30년 넘게 연대의 최전선에 섰던 구단이다. 이날도 그라운드에서는 동성 커플들의 결혼 갱신식이 열렸다.

하지만 마운드 위의 투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거부를 표현했다. 구단이 '환영한다'고 외치는 동안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며 엇박자를 낸 날, 샌프란시스코는 시카고 컵스에 1대 5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선발 루프는 4.2이닝만 던지고 내려갔다. 경기 후 SNS와 커뮤니티의 자이언츠 팬들은 투수들을 향해 "공이나 똑바로 던지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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