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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버스터 포지 사장(사진=MLB.com)[더게이트]
구단의 오랜 정체성을 흔드는 혐오 논란에는 "야구 질문만 받겠다"며 피해갔고, 모두가 불안하게 바라보는 감독 리더십 논란에는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성적 부진과 온갖 잡음 속에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가장 흔들리는 리더십은 포지 사장 그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기자회견이었다.
버스터 포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운영부문 사장은 2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 더그아웃에서 약 30명의 취재진 앞에 앉았다. 선수들이 프라이드 나이트 모자에 성경 구절을 써넣으며 성소수자 혐오 논란을 일으킨 지 12일, 베테랑 타자가 감독의 교체 지시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지 사흘 만이었다. 해명을 기다리던 팬들이 기대할 만한 자리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프라이드 나이트 모자(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NS)
험악해진 기자회견 분위기
포지 사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프라이드 나이트' 관련 논란에 일절 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주제에 강한 감정과 서로 다른 시각이 있다는 걸 안다. 모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시 꺼내지 않겠다"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의견과 '지구가 평평하다'는 의견을 동일선상에 놓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이후 어떤 각도로 질문이 나와도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야구 질문만 받겠다."
기자회견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현장 취재진이 꼬치꼬치 따지면서 파고들자 구단 홍보 담당자가 직접 끼어들어 "프라이드 관련 질문이 계속되면 기자회견을 끝내겠다"고 경고하는 장면도 나왔다. 구단은 래리 바에르 최고경영자(CEO)도, 그렉 존슨 구단주도 취재진 앞에 세우지 않았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가 하루 전 공개된 서한에서 "프라이드 나이트 관련 자이언츠 구단과 선수들의 소통이 부적절하고 명확하지 않았다"고 구단을 직접 비판한 터였다. 공화당 강경 우파 조시 홀리 상원의원이 "MLB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선수들을 차별한다"고 항의하자, 법무부까지 조사에 나선 상황에서 나온 비판. 선수 처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책임의 화살을 구단으로 돌리는 방식은, 메이저리그가 정치적 압박을 비켜가는 동시에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리그의 사회적 책임도 희석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포지 사장은 이 비판에 반박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는 포지 사장의 말은 얼핏 중립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구단이 어떤 구단인지를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이언츠는 1994년 미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에이즈 인식 행사를 열고, 2021년 MLB 최초로 무지개 로고를 유니폼에 새긴 구단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30년 넘게 연대해온 구단이 '양측 모두 존중한다'며 발을 빼는 것은 사실상 그 역사를 스스로 지우는 행위이자 반대자들의 편에 서는 행위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라파엘 데버스(사진=MLB.com)
"오해였다"는 데버스, 그래도 언론 탓
중심타자 라파엘 데버스의 기자회견도 논란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22일 마이애미 원정에서 9회 토니 비텔로 감독의 대주자 교체 지시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교체되자 헬멧을 내동댕이치며 분노했던 데버스가 이날 오랜만에 취재진 앞에 섰다.
해명은 단순했다. 이틀 전 햄스트링 불편감을 팀에 보고한 상태에서 감독의 교체 지시가 부상 때문인 줄 오해했다는 것이다. 데버스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며 "감독을 무시하려던 게 아니었다. 경기 후 사무실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고 했다. 비텔로 감독도 "비행기 안에서 사과를 받았고 우리는 괜찮다"며 선을 그었다. 포지 사장은 "조만간 데버스와 직접 이야기할 것"이라면서도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 한 번의 실수로 데버스가 좋은 동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감쌌다.
데버스는 "언론이 다 부풀리는 것"이라며 "내가 언론과 잘 얘기하지 않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한 달 넘게 취재진을 피해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를 기자들 탓으로 돌린 셈이다. ESPN의 버스터 올니 기자는 "선수들에게는 늘 경기에서 긴박감을 요구하면서, 포지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 전까지 데버스와 이 사안에 대해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버스터 포지 사장(사진=MLB.com)
진짜 리더십 위기는 비텔로가 아닌 포지
올 시즌 비텔로 감독의 첫해는 순탄치 않다. 대학 감독 출신으로 프로 경험이 전무한 채 부임한 첫 시즌, 개막 초에는 신선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팀 성적이 부진해지자 좋게 보였던 것까지 죄다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각종 인터뷰에서 설화가 되풀이되더니 이제는 베테랑 선수의 항명 논란까지 터졌다. 비텔로의 권위가 선수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지적도 나오는 중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비텔로를 향하지 않는다. 프로 경험 없는 대학 감독을 전격 발탁한 사람이 포지 사장이다. 2억 달러(약 2900억원) 넘는 잔여 계약을 안고 데버스를 데려온 것도 포지 사장이다. 비텔로 감독의 권위가 흔들린다면, 포지 사장의 자리가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비텔로에 대한 질문에 포지 사장이 "그는 클럽하우스를 장악하고 있다. 선수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엄호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포지 사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야구는 실력에 따라 자리가 결정되는 세계"라고 했다. 31승 46패, 지구 선두 LA 다저스에 17.5게임 뒤처진 지금, 그 원칙은 자신의 자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지 한 언론인은 SNS에 "이번 사태는 오랫동안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악의 임기 중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홍보 참사와 핵심 팬층에 대한 배신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포지 사장을 직격했다. 데버스의 계약이 "앞으로 56년이나 남아 있다"는 과장된 표현까지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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