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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사진=MLB.com)[더게이트]
자그마한 당근 몇 개를 내밀긴 했는데, 독을 잔뜩 바른 당근이라서 문제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단주들이 선수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FA 계약 상한선 설정, 초장기 메가딜 봉쇄, 연봉 이연지급 전면 금지가 골자다.
MLB 사무국은 25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단체협약(CBA) 협상 테이블에서 기존 샐러리캡 도입 요구에 더해 이 같은 '3대 개악'을 담은 대규모 개편안을 선수노조(MLBPA)에 제출했다. 만약 구단주들이 내놓은 조건들을 그대로 밀어붙인다면, 2027년 메이저리그 시즌은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춰 설 가능성이 크다.
연봉 상한제 도입을 둘러싼 MLB와 선수노조의 대립이 커지고 있다(사진=MLB.com)
새 조항 도입하면 25년 전 A로드 계약도 불가능
구단주들의 새 제안에 따르면 2027년 이후 타 구단으로 이적하는 FA는 최장 5년, 2억 200만 달러(약 3030억원)를 초과하는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이 상한선은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00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체결한 2억 5200만 달러(약 3780억원)보다도 5000만 달러(약 750억원)나 낮다. 오타니 쇼헤이가 기록한 7억 달러(약 1조 500억원) 규모의 메가딜은 사실상 역사 속 유물이 된다.
대신 기존 소속팀에 남는 FA에게는 별도의 '간판선수 조항'이 적용된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래리 버드 룰'을 본뜬 이 조항은 잔류 FA에 한해 최장 6년, 2억 6500만 달러(약 3975억원)까지 계약을 허용한다. 다른 팀으로 떠나는 선수와 비교하면 기간은 1년, 금액은 6300만 달러(약 945억원)가 차이 난다. 팀을 옮기면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도록 설계했다. 선수들의 자유로운 팀 이동과 그에 따른 몸값 상승을 막으려는 구단주들의 꼼수다.
연봉 이연지급 계약도 전면 금지된다. 오타니가 LA 다저스와 맺은 계약처럼 총액의 97% 지급을 은퇴 후로 미뤄 사치세를 우회하던 관행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최장 12년, 5억 달러(약 7500억원)짜리 계약이 이론상 가능하지만 이는 서비스타임이 전혀 없는 신인이 소속팀과 맺는 연장 계약에만 해당한다. 서비스타임이 쌓일수록 상한선이 줄어드는 구조여서, 사실상 빅리그에 갓 올라온 선수에게만 적용되는 조항이다.
물론 당근 비슷한 것도 함께 내밀긴 했다. 구단주들은 2027년부터 서비스타임 2년 이상 선수의 최저 연봉을 현행 78만 달러(약 11억 7000만원)에서 100만 달러(약 15억원)로 올리겠다고 제안했다. 사무국은 역대 최대 폭인 28% 인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비스타임 1년 미만 선수가 한 시즌을 풀로 소화하면 연봉 90만 달러(약 13억 5000만원)에 사전중재 보너스 풀 10만 달러(약 1억 5000만원)를 더해 100만 달러(약 15억원)를 받는다.
선수노조가 먼저 요구했던 조기 FA 자격도 수용했다. 현재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비스타임 6년을 채워야 하지만, 개편안에서는 만 30세 이상이면 5년만 채워도 FA로 풀린다. 1976년 FA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류 기간이 6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2027시즌 이후 오프시즌부터 적용되며 자렌 듀란, 어니 클레멘트, 비니 파스콴티노 등 현재 빅리그 로스터 기준 354명이 혜택 대상으로 추산된다. 오랜 숙원이던 퀄리파잉 오퍼 제도 폐지도 포함됐다.
MLB 사무국 대변인 글렌 캐플린은 "역대 최대 폭의 최저 연봉 인상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50년간 이어져온 FA 제도에 두 가지 획기적 변화를 수용했다"고 이번 협상안을 자평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10탈삼진을 기록한 오타니(사진=LA 다저스 SNS)
"한 선수가 더 받으면 다른 선수가 그만큼 덜 받는 구조"
선수노조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브루스 마이어 선수노조 임시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샐러리캡 체제에서는 리그 전체 선수단이 받는 총액이 미리 정해진다. 한 선수가 더 받으면 다른 선수가 그만큼 덜 받는 구조"라며 제로섬 게임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선수들은 전에도 무너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노조는 사무국이 제안한 수익 분배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사무국은 리그 수익의 50대 50 분배를 내걸었지만, 노조는 올해 선수 지분이 이미 리그 수익의 약 55%에 달한다고 맞선다. 샐러리캡이 도입되면 그 차이만큼 선수 몫이 고스란히 깎이는 구조다. 마이어 임시 사무총장은 "사무국이 팬을 위해 샐러리캡을 원한다고 믿기 어렵다"며 "구단주들의 이익과 구단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고, 그 수익은 선수들과 공유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함께 발표한 성명에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선수 보상을 삭감하고, 샐러리캡으로 기본권을 없애고, 아마추어 입단 제도를 파괴하는 일련의 제안을 내놓은 뒤, 이제는 그 진짜 의도를 호도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이번 제안들을 "개선처럼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거의 가치가 없거나 전무한 것들"로 규정했다.
'악마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도 가세했다. 25년 전 로드리게스의 2억 5200만 달러 계약을 직접 이끌어냈던 보라스는 "멋진 가구 몇 점을 주는 대신 천장 높이가 120cm밖에 안 되는 방으로 이사 오라는 격"이라고 쏘아붙인 뒤 "1990년대식 낡은 연봉 구조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노사는 올스타브레이크 이전에 최소 한 차례 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예정이다. 마이어 임시 사무총장은 이날 협상이 "그간보다 조금 더 활발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한 달여 협상에서 가장 큰 성과가 고작 '조금 더 활발해진 분위기'라면 사실상 협상 진척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행 단협은 12월 1일 자정 만료된다. 기한 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구단주 주도의 직장폐쇄가 단행되고, FA 시장이 동결되며, 2027시즌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파행이 불가피하다. 리그 연간 수익이 120억 달러(약 18조원)를 넘어선 황금기에 찾아온 공멸 위기. 1994년 파업으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메이저리그는 똑같은 파멸의 갈림길에 다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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