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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배재고(사진=배재고 홈페이지)[더게이트]
전국대회 경기 도중 상대팀 광주일고를 향해 5·18민주화운동을 비하하며 “스타벅스 가야지” 등의 구호를 외친 배재고 사태를 스포츠 영역의 혐오표현 규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내 혐오표현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다.
홍 교수는 30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10년 넘게 혐오표현 연구를 해오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아왔다"며 일관되게 강조해온 해법으로 핀포인트 규제, 자율 규제, 영역별 대응을 꼽았다. "섣불리 규제를 도입했다가는 부작용만 크고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한 홍 교수는 "제한된 영역에서 핀포인트로 규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최근 발생한 배재고 사태 역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에서 배재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구호를 반복해 외쳐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으로 번진 바 있다. 배재고는 사과문을 냈지만 '일부 학생'이라는 해명이 단체 구호 영상과 배치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서울시교육청 차원의 조사와 징계 절차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홍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2016년부터 혐오표현 실태조사와 규제방안 연구를 이끌어온 학자다. 2019년에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펴내 혐오표현이 표현의 자유 문제를 넘어 사회적 약자에게 가하는 실질적 해악이라는 점을 짚은 바 있다. 평소 프로야구 팬으로 알려진 그는 스포츠 분야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종종 의견을 내왔다.
배재고 홈페이지에 실린 배재학당 당훈.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사진=배재고 홈페이지)
"스포츠는 공연성·전파력 크고 흥분하기 쉬운 영역"
홍 교수는 스포츠 영역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선수 보호와 안전, 관중 간 물리적 충돌 방지, 그리고 스포츠의 기본 정신인 공정·평등·참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관중이나 선수가 특정 선수를 인종차별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직접적인 위해이자 노동권 침해"라며 "흥분된 상황에서 혐오 선동이 일어나면 관중끼리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혐오와 차별은 스포츠의 기본 정신인 '공정, 평등, 참여'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가 소개한 각국 사례는 저마다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영국은 1991년 제정한 축구법으로 인종차별적 구호를 금지하며, 위반 시 벌금형은 물론 "축구팬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중형 중의 중형, '축구장 출입금지 명령'"이 내려진다. 공공질서법을 통해 경기장 안팎의 혐오표현도 엄격히 규제한다.
스페인은 2007년 제정한 '폭력, 인종차별, 제노포비아 및 스포츠 불관용 반대법'으로 인종·장애·연령·성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모욕·비하 행위를 금지한다. 홍 교수는 이 법의 핵심으로 구단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짚었다. "영국도 연대책임을 묻는 명시적 법은 없지만, 늘 연대책임을 진다"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 선수가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토트넘과 상대 구단이 난리가 나서 성명을 발표하고 엄정 대응하는 이유가 바로 이 연대 책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미국은 포괄적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홍 교수의 진단이다. 대신 고용·교육·스포츠 등 특정 영역에서의 제한적 규제가 널리 행해진다. 그는 "운동 경기장에서 혐오표현을 금지한다고 해서 공원에서 하는 것까지 막는 건 아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례로 LA 다저스의 팬 행동강령에는 "인종, 민족, 성별, 종교, 장애, 연령,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모욕적인 언사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2017년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발생한 인종차별 사건 이후 차별적 언어에 대처하는 표준 지침을 마련해 퇴장과 영구 출입 금지 등의 조치를 도입했다고 홍 교수는 전했다.
홍 교수는 "한국 현실에서는 늘 위에서 아래로 정책이 추진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체육회나 야구협회의 지침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당장 사건이 터진 고등학교나 개별 구단 자체 규정부터 경쟁적으로 만들어나가면 된다"고 제안했다. 다만 "협회 차원의 대책 수립도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문제를 금지와 처벌만으로 풀어선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홍 교수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번 북중미 월드컵 멕시코전을 앞두고 주장 손흥민이 "우리는 함께 뛴다. 우리는 혐오에 맞선다"는 문구가 담긴 깃발을 교환했던 사례를 들며 "이번 사건이 터진 고교 야구에서부터 이런 캠페인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이어 "차제에 모든 스포츠 경기 내 혐오·차별 반대 캠페인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혐오차별 문제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쏟아부어야 겨우 효과가 날까 말까 한 문제"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형사처벌 입법 여부만 가지고 다툴 게 아니라, 곳곳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재고 더그아웃의 응원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
"5·18 모욕에만 한정해선 안 돼…포괄적 대응 필요"
홍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번 사안을 5·18 모욕 문제로만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혐오와 차별은 늘 표적을 옮겨 다닌다"며 "특정 표적에만 한정된 정책보다는, 다저스 구단의 규정처럼 사유를 포괄적으로 정해 혐오·차별 전반에 대응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잘못한 선수와 학교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게 홍 교수의 진단이다.
한편 배재고 사태는 사과문 이후에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광주일고는 30일 오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공식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서한에는 사태 경위 파악과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징계 처분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배재학당 총동문회도 별도 사과문을 내고 입장을 밝혔다. 협회가 배재고의 2회전 경기 전까지 공정위를 열어 징계 여부 등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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