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 금지" 규정 있는데 '스벅 가야지' '탱크데이' 외쳐도 구경만...심판, 감독, 어른들은 뭐하셨나요?
고교야구 경기장(사진=더게이트 DB)고교야구 경기장(사진=더게이트 DB)

[더게이트]

고교야구 경기장에서 광주일고를 향해 '스벅 가야지' '탱크데이' 등 5·18 조롱 구호를 외친 배재고 야구부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월드컵 32강 탈락으로 '국민 역적'이 된 홍명보 감독 이슈를 순식간에 덮어버릴 만큼 파장이 크다.

물론 배재고 선수들의 행동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모르고 했다는 변명이 통하기 어려운 정황도 여럿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조사 절차에 착수했고, 7월 1일 오후에는 스포츠공정위원회도 열린다. 이틀간 쏟아진 언론 보도와 온라인의 비판이라는 사회적 처벌도 이미 시작됐다. 그런데 선수들에게 비판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덜 다뤄지는 게 있다. 바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배재고 더그아웃의 응원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배재고 더그아웃의 응원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


못 들었나 방치했나, 어른들은 어디서 뭐했나

선수들이 지역 혐오 의도가 담긴 야유를 외치는 동안 배재고 감독과 코치들은 말리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 감독은 3루 베이스 코치 역할을 하느라 들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코치들은 더그아웃 바로 옆에 있었다. 맞은편 더그아웃에서도 들리는 소리가 3루 코치석에서는 들리지 않았다는 해명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선수들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건 이유가 어떻든 감독의 책임이다.

교장의 부재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 배재고 교장이 공개적으로 사과하거나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만약 학교장이 앞장서서 고개를 숙이고 확실한 후속 조치 메시지를 냈다면 학생들에게 쏠리는 비난을 일정 부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대신 돌아온 건 인공지능(AI)으로 편집했다는 의심을 받은 사과문이었고, 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경기를 원활하게 이끌어야 할 심판진의 책임도 따져볼 부분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전국대회 경기 운영 규정 제7장 징계 및 포상 조항에는 지나친 응원에 대한 제재가 명시돼 있다. 상대 투수의 투구를 방해하는 말이나 행위, 상대 팀 야유, 춤추기, 예의에 벗어난 말이나 행위, 국기 문란 노래 등이 해당하며 1차 경고 및 퇴장, 1~3경기 출전 금지 조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심판진은 광주일고 코치가 항의하기 전까지 주의나 경고 조치를 하지 않았다. 코치가 나서지 않았다면 선수들은 모욕적인 야유를 들으며 경기를 끝까지 치렀을지 모른다.

이 규정은 비교적 최근 신설된 조항이다. 2024년 1월 열린 제15차 이사회에서 협회는 "전국대회에 참가한 학생 선수의 부적절한 행동 및 언행과 관련하여 아마추어리즘 고양과 학생 선수로서 지켜야 할 기본을 강조하기 위해 국제연맹 관련 규정에 준하여 지침과 제재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 아마야구 심판위원은 "현장에서 선수들 간 야유와 과도한 트래시 토크가 워낙 심해서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서울 모 고교의 경우 안타 하나만 쳐도 선수단 전원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세리머니와 춤을 반복해서 경기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에 아예 규정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재고 이효준 교장(사진=배재고)배재고 이효준 교장(사진=배재고)


경고 비웃는 선수들…"볼볼볼볼" 하지 말랬더니 "보~오~올"로 바꿔 계속

물론 규정을 만들었다고 현장에서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는 건 아니다. 경험 많은 심판위원들은 과도한 야유 소리가 들리면 바로 제재하지만, 저연차 심판위원들은 경고하는 데 소극적이거나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야구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일부 지도자들은 심판이 선수에게 경고하면 오히려 발끈해 "왜 우리 선수에게 지적하느냐"고 따진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학부모가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한 수도권 구단 스카우트는 "제구가 나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볼볼볼볼' 하고 조롱하다가, 심판이 못 하게 하면 '보~~~오~~~올' 식으로 바꿔 계속한다. '흔들바위, 흔들바위' 하면서 심판 경고를 비웃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스카우트는 "지방 경기에서 응원가를 부르다가 가사를 개사해서 이상한 소리로 바뀌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애인을 비하하는 밈 속 인물 이름이었다. 지도자가 말렸어야 했는데 모르는 건지 아는 건지 그냥 두더라. 결국 나중에는 심판이 막아서 못하게 하는 걸 봤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한 심판위원은 "제때 제지하지 않으면 서로 주고받으면서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몇 해 전에는 야유에 화난 선수가 상대 더그아웃에 공을 던져 맞거나, 경기 후 주먹을 날려 코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걸 방지하는 것도 심판의 역할"이라고 했다.

아마야구계에서 오래 일한 한 야구인은 "상대를 조롱하는 응원은 미국 식으로 말하면 수준 낮은 '부시 리그'에서나 하는 일이다. 일본 고시엔에서 상대를 조롱하며 춤추는 선수를 본 적이 있나. 고시엔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몸에 배어 있다"면서 "우리 현장에서는 야유가 기본이더니 이제는 특정 지역 비하까지 갔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지도자와 심판이 훈계하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서울 고교야구부 학부모는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도입으로 심판이 판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지 않았나. 이제 인간 심판은 매끄러운 경기 운영, 원활한 진행이 주된 역할이라고 본다. 선수들의 잘못된 행동도 규정대로 제재 못한다면, 인간 심판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항의하는 광주일고 코치진(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중계화면)항의하는 광주일고 코치진(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중계화면)


규정대로 제재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규정에 '야유 금지' 조항이 뚜렷이 나와 있는 만큼 심판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한 야구인은 "재량권 문제가 아니라 대회 규정에 엄밀히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규정대로 문제성 응원 소리가 들리면 심판이 나서서 개입해야 한다. 상당수 심판이 그렇게 하고 있긴 하지만 심판부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심판위원은 "협회 차원에서 더 확실하고 분명한 지침을 내려줬으면 한다. 과도한 야유나 이번 같은 사회적 문제가 되는 행위에 대해 무조건 경고 혹은 퇴장이라는 가이드라인을 공지하면 선수들도 하기 어렵고, 심판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광주일고 교장이 6월 30일 협회에 전달한 서한에도 이런 요청이 담겼다. 서한에서 광주일고는 "협회에서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 경기 전, 경기 중, 경기 후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일체의 응원이나 표현을 금지해 달라. 선수들과 지도자는 물론 학부모, 관중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늘 교육해 달라. 이러한 내용을 위반한 선수와 지도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도를 넘은 학생들도 분명 문제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할 어른들이 제때 개입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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