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사태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그 입 다물라...'혐오의 세상' 만든 건 바로 당신들 아닌가요?
배재고 정문 앞은 난리통이 됐다(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배재고 정문 앞은 난리통이 됐다(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더게이트]

광주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구호를 외쳐 파문을 빚은 배재고 사태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6개월 전국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뒤, 보수 정치권과 외부 세력이 이슈에 올라타면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정치적 찬반 싸움으로 둔갑하는 모양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혐오와 조롱 문화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진다.

배재고는 지난달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일부 선수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구호를 외쳐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과문을 냈지만 오히려 여론에 불을 질렀고, 협회 공정위는 야구부에 6개월 전국대회 출전 정지 철퇴를 내렸다. 조사 결과 2학년 A군이 "스타벅스 가야지"를 선창하자 다른 학생들이 따라 외쳤고, B군은 "탱크데이"를 외친 것으로 파악됐다. 두 학생은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됐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6개월 출전 정지가 숫자로만 보면 중징계처럼 보이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듯 야구 인생을 끝내는 사형선고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주말리그 일정은 끝났고, 배재고에 남은 전국대회는 봉황대기 하나뿐이다. 전국대회 가산점을 얻을 기회나 프로 스카우트에게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일부 줄어들겠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혐오성 발언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이 정도 대가는 과하다고 하기 어렵다. 선수 개개인에게 낙인을 찍는 것도, 프로 진출이나 대학 진학을 원천 차단하는 징계도 아니다.

행정 징계를 받은 배재고가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다. 피해자인 광주일고 학생들과 광주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최우선이다. 진심 어린 반성과 지속적인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여지가 생기고, 불붙은 여론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길도 열린다. 그래야 배재고 선수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이라는 '사회적 형벌'도 감경의 여지가 생긴다.

배재고 더그아웃의 응원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배재고 더그아웃의 응원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


서두른 사과, 진짜 해결인가

그러나 실제 벌어지는 상황은 이와 정반대로 흐르는 듯하다. 배재고는 광주일고가 채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과 방문을 시도했다가 한 차례 거부당했다. 이후 교육감들이 나서서 다시 만남을 성사시켰고 광주일고 교장이 받아들였다. 이에 배재고 야구부원 36명 전원과 학부모, 교직원 등 80여 명이 6일 오후 3시 광주일고를 찾아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국립 5·18 민주묘지를 합동 참배하며,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교육감이 동행할 예정이다.

이게 진정한 문제의 해결인지는 의문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정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반성해 사과의 뜻을 모은 것인지, 광주일고 학생들이 진심으로 사과를 받아줄 준비가 돼 동의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어른들이 주도해 빨리 사과하고 악수하는 그림을 만들어서 상황을 끝내려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교사가 억지로 때린 학생과 맞은 학생의 손을 잡고 화해시키는 옛 교실 광경이 연상된다. 광주일고로서는 계속되는 사과 요구를 받지 않으면 오히려 속 좁은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 됐을 법하다. 진정한 반성과 용서보다는 빠른 봉합과 사태 종결을 원한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여기에 '정치'를 묻히는 외부 세력이다. 일부 강경 보수 시민단체는 징계가 과도하다며 협회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협회장과 스포츠공정위원회 인사들을 강요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 단체도 있다. 시의원 출신 정치인도 협회 인사들을 상대로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5·18 조롱이라는 본질은 쏙 빠진 채 "미성년자 선수들의 미래를 망치는 불공정 징계"라는 적반하장 논리가 전면에 나왔다.

학교 정문 앞은 난장판이 됐다. 시민들이 보낸 근조 화환에 맞불을 놓듯 "스타벅스 커피 한잔할 자유", "표현의 자유 위축 반대"라는 사태 본질과 무관한 정치 문구를 단 응원 화환이 들이닥쳤다. 배재고 정문이 정치 세 대결의 무대로 변질되면서 야구부와 무관한 일반 학생들까지 고통을 겪는 분위기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수 있었던 사태에 외부 어른들이 계속 땔감을 던지면서 불을 붙이는 중이다.

항의하는 광주일고 코치진(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중계화면)항의하는 광주일고 코치진(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중계화면)


정치권 개입이 망치는 스포츠 현장

최악 중의 최악은 정치권의 개입이다. 그나마 여권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스타벅스 탱크데이 당시 맹공을 퍼부었다가 역풍을 맞았던 경험 탓인지 상대적으로 정제된 메시지를 내는 분위기다. 반면 보수 정치권은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며 가해자들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동조하지 않은 선수들도 많은데 전체에 6개월 출전 정지를 내린 것은 과도하다"고 했다. 주진우 의원은 "연좌제"를 꺼냈고, 양향자 최고위원은 징계 재고를 촉구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협회의 징계를 "명백히 과도하고 폭력적"이라고 규정했고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형평성 문제를 들이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징계를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홍석준 전 의원은 "학생들을 징계하면 공산주의 국가"라는 극단적인 언사까지 동원했다. 말로는 잘못 자체를 감싸지는 않겠다는 전제를 달지만, 결론은 하나같이 징계를 취소하라는 요구로 향한다.

시사평론가 김민하는 유튜브 '이슈전파사'에서 이 같은 행태를 "금지되어야 할 혐오 표현을 선택 가능한 논쟁거리로 둔갑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5·18 비하와 조롱은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할 수 없는 명백한 혐오이자 폭력인데, 보수 정치인들이 이를 표현의 자유 문제로 몰고 가며 정쟁으로 소비하는 행태가 "극우 정치의 영역을 넓혀주는 야비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사실 배재고 선수들의 앞길을 실제로 가로막는 건 6개월 출전 정지 같은 행정 징계가 아니다. 야구 팬들과 시민들의 싸늘한 여론이 진짜 '징계'로 작용한다. 한 프로팀 스카우트는 "다른 팀은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우리 팀은 선뜻 지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규정상으로는 문제없어도 사회적 평판이 규정보다 강하게 작용한다는 얘기다. 대학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배재고가 할 일은 행정 징계가 과하니 줄여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여론 징계'를 감경받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가해자 감싸기에 나서는 행동이 거기에 한 톨이라도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배재고-광주일고 경기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배재고-광주일고 경기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


본질을 잃어버린 가해자 중심의 논리

배재고 선수들 걱정에 목소리를 높이는 보수 정치권과 세력은 지금의 '대 혐오의 시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보수 정당 소속 지역의회 의장이 5·18을 왜곡·비하하는 인쇄물을 배포하고, 원내대표가 5·18 기념식 불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더러워서 안 간다"는 망언을 내뱉고, 전직 당 대변인이 유튜브에서 5·18을 '폭동'으로 규정한 계엄군 수기를 옹호하는 일이 한 두번인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선을 그어도 다시 되풀이돼 왔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는 사회적으로 '광주를 폄훼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고, 혐오가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말로는 광주 혐오와 5·18 비하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은근히 가해자를 편드는 말과 행위 뒤에는 이를 이용해 특정 성향 세력의 지지를 얻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들이 만든 혐오의 공기가 결국 10대들의 일상 공간과 스포츠 현장까지 스며들었고 배재고 사태로 이어졌다. 이런 세상을 만든 당사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관용을 외치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 여성과 장애인 등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정치로 세력을 불려온 정치인이 이 문제에 말을 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배재고 사태에 목소리를 낼 자격이 없다.

가해자인 배재고 선수들이 대학에 못 가고 프로에 못 가면 어쩌냐는 걱정은 쏟아지는데, 마운드에서 직접 조롱을 들었던 광주일고 선수들에 대한 걱정은 보이지 않는 것도 기막힌 일이다. 가해자 걱정에 잠 못 드는 보수 정치인 중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이들을 위로하는 문장 한 줄 쓴 이는 없었다. 야구선수 동료로부터 조롱당한 것도 상처인데, 뒤이어 쏟아진 2차 가해와 여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광주일고 야구부 학생들은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어른들은 가해자가 불쌍하다며 빨리 용서하라고 피해자들을 닦달하고 오히려 괴롭힌다.

이처럼 정치 세력들의 찬반 행태, 정치인들의 참전은 사태 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떡 부치듯 후딱 사과하고 사과받고 끝내려는 무늬만 교육자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배재고 선수들에겐 진정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되돌아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뒤에 봉사활동을 하든 어떤 노력을 하든, 잘못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달라졌다는 걸 대중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프로팀이 지명해도 팬들의 비판을 줄일 수 있고, 응원은 못 해도 비난은 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과연 어른들, 정치인들이 하는 행동이 거기에 도움이 되는가. 진정한 반성보다는 당장 대입과 프로 진출에 방해되는 이 상황을 대충 해결하고 지나가게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해도 정치 세력을 등에 업고 목소리를 높이면 무마할 수 있다는 신호만 주는 건 아닌가. 가해자 걱정하는 이들이 피해자인 광주일고 선수들의 아픔이 덜어지는 데는 어떤 도움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지금처럼 문제를 정치화하고, 가해자들이 받는 징계를 실제보다 과장하며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하는 움직임은 사태 해결과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넘어 해롭기까지 하다. 이번 사태 이후로 혐오가 사라지긴커녕 더 큰 혐오와 조롱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그런 면에서 진짜 나쁜 건 어린 학생들이 아니다. 이런 사회와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태를 이용하고 더 나쁘게 만드는 어른들과 정치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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