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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케인과 벨링엄(사진=FIFA 월드컵 SNS)[더게이트]
치열한 사투가 끝난 뒤 방송 인터뷰에 응한 해리 케인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경기였다. 마지막에 웃은 쪽은 수적 열세에도 버티고 또 버틴 축구 종가 잉글랜드였다.
잉글랜드는 6일(한국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16강전에서 공동 개최국 멕시코를 3대 2로 제압했다. 후반 초반 수비수 자렐 콴사가 퇴장당해 수적 열세에 몰렸지만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이 승리로 잉글랜드는 3회 연속 월드컵 8강 진출을 달성했다.
이날 킥오프를 앞두고 경기장엔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킥오프했다. 하지만 8만 명의 홈 관중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찬 아스테카 스타디움은 초반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잉글랜드는 전반 15분 라울 히메네스의 날카로운 헤딩슛을 골키퍼 조던 픽포드가 몸을 던져 쳐내며 첫 번째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잉글랜드 대표팀(사진=FIFA 월드컵 SNS)
단 98초 만에 침묵한 8만 관중
초반 탐색전을 이어가던 경기는 전반 36분 순식간에 요동쳤다. 데클런 라이스가 55미터를 혼자 질주하며 역습의 발판을 놓았고, 부카요 사카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에 주드 벨링엄이 몸을 던지는 다이빙 헤더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 멕시코의 첫 실점이 나온 순간이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2분 뒤 벨링엄이 다시 한번 포효했다. 벨링엄은 케인과 정교한 2:1 패스를 주고받으며 페널티 지역 안으로 파고든 뒤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 골을 뽑아냈다. 단 98초 사이에 터진 연속골에 아스테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멕시코 관중의 함성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멕시코도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전반 42분 프리킥 상황에서 잉글랜드 수비진에 맞고 흐른 공을 훌리안 키뇨네스가 기습적인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해 추격골을 터뜨렸다. 전반 추가시간 세사르 몬테스의 결정적인 슈팅을 벨링엄이 다시 한번 육탄방어로 걷어내면서 잉글랜드가 2대 1로 앞선 채 전반을 마쳤다.
후반 들어 잉글랜드는 니코 오라일리의 중거리 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추가 득점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이어 후반 9분 경기 최대 변수가 발생했다. 콴사가 헤수스 가야르도에게 무리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다 다리 높은 곳을 가격했고, 비디오 판독(VAR) 끝에 레드카드를 받았다. 판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양 팀 벤치 선수들이 충돌하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수적 열세에 놓인 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감독은 사카를 빼고 존 스톤스를 투입하며 수비벽을 두텁게 다졌다. 위기 뒤에 곧바로 기회가 왔다. 후반 14분 앤서니 고든이 멕시코 골키퍼 라울 랑헬에게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키커로 나선 케인이 오른쪽 구석으로 강하게 차 넣었다. 케인의 이번 대회 6호 골이자 개인 통산 월드컵 14호 골로, 옛 서독의 전설 게르트 뮐러와 함께 월드컵 통산 득점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10분 뒤 이번에는 케인이 수비 과정에서 브라이언 구티에레스를 걷어차며 페널티킥을 내줬고, 멕시코의 히메네스가 성공시켜 스코어는 3대 2가 됐다. 케인은 경기 후 "내가 먼저 공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다"며 "심판 판정이 아쉬웠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했으니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멕시코가 홈에서 고배를 마셨다(사진=FIFA 월드컵 SNS)
무너진 아스테카 불패 신화
남은 시간은 멕시코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잉글랜드는 케인까지 빼고 모건 로저스를 투입하며 전원 수비로 돌아섰다. 무려 11분이 주어진 추가시간, 그러나 멕시코는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추가시간 막판 히메네스의 결정적인 헤딩슛마저 픽포드의 선방에 막히며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자국에서 대회를 열었던 1986년 이후 40년 만에 8강을 노리던 멕시코의 도전이 안방에서 멈췄다.
경기 후 케인은 목이 완전히 쉰 채로 "엄청난 경기였다"며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결국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기뻐했다. 멀티골의 주인공 벨링엄 역시 "내 잉글랜드 대표팀 커리어 통틀어 가장 최고의 밤"이라며 감격을 전했다.
이날 승리로 잉글랜드는 축구 역사에 남을 대기록의 파괴자가 됐다. 1966년 개장한 아스테카 스타디움에서 멕시코 대표팀은 공식전 89경기 동안 단 2패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월드컵 본선 경기만 놓고 보면 8승 2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잉글랜드는 이 흐름을 끊어낸 최초의 팀이자, 아스테카 역사상 승리를 거둔 세 번째 원정팀으로 기록됐다.
다만 미드필더 조던 헨더슨이 경기 직후 세리머니를 하던 중 광고판에 걸려 넘어지며 팔을 다쳐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게 향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헬 감독은 "부상 부위가 꽤 심각해 보인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잉글랜드는 오는 12일 오전 6시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을 꺾고 올라온 노르웨이와 4강 진출을 두고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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