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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배재고-광주일고 경기 장면(사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방송 화면)[더게이트]
배재고와 광주일고가 다시 마주 섰다. 5·18 민주화운동 조롱 구호 논란이 불거진 지 8일 만이다.
배재고 야구부원 36명 전원과 이효준 교장, 교직원, 학부모 등 86명은 6일 오후 3시 광주제일고등학교(이하 광주일고)를 찾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도중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구호를 외쳐 5·18 폄훼 논란을 빚은 데 따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배재고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전국대회 출전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배재고 주장의 자필 사과문(사진=서울시교육청)
"광주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셨을 텐데"
광주일고 강당에 선 배재고 야구부 주장이 자필 사과문을 펼쳐 들었다. 주장은 "저희가 광주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셨을 텐데, 귀한 시간 마련해 주신 광주일고에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광주일고 선수들과 학부모님, 광주 시민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모든 선수가 진심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야구를 떠나서 인성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다시 배우게 됐다"고 했다. "같은 선수로서 정말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권오영 감독도 고개를 숙였다. "학생들을 잘 이끌고 가르쳐야 할 지도자로서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승패에만 집중하느라 잘못된 응원 소리를 제때 파악하고 제지하지 못했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과오를 인정하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가 이어지는 동안 일부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들이 눈물을 쏟아냈다.
30여 분의 만남을 마친 두 학교 선수단은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동해 함께 참배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교육감도 동행했다. 5·18 기념재단은 배재고 선수단에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5·18 역사 교과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광주일고는 대승적으로 사과를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라"며 배재고 학생들을 다독인 이규연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화해하고 싶어 한다고 느껴져 사과 방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이번 화해를 계기로 학생들이 새롭게 출발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징계 선처도 요청할 예정이다. 광주일고와 광주일고 총동창회는 7일 오후 3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여기에는 배재고 야구부 징계에 대한 선처 요청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논란의 중심이었던 두 학교 간 갈등은 일단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물론 외부에서는 이번 사과가 징계 감경을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시각, 광주일고 학생들이 거절할 수 없도록 어른들이 인위적으로 사과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보는 삐딱한 시각도 있지만 일단 당사자들 간에는 사과와 용서와 화해로 정리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배재고는 8일까지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심이 청구되면 이미 청룡기 대회에서 몰수패를 당해 실질적인 불이익을 당했다는 점, 그간 받은 사회적 비난이 징계와 같은 효과를 갖는다는 점, 사과와 참배 방문 등의 노력이 참작 요인이 될 수 있다. 감경 여부는 체육회가 결정한다.
다만 행정적 징계가 감경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협회가 내린 6개월 출전 금지 징계엔 달력에 끝나는 날짜가 있지만, 여론의 징계는 그렇지 않다. 사태 이후 일각에서 "어린 선수들의 인생을 끝내는 과도한 징계"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배재고 선수들의 앞길을 실제로 가로막을 장벽은 행정 징계가 아닌 '여론'이다.
복수의 프로 구단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상당수 구단은 현재의 들끓는 비판 여론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A구단 관계자는 "우리 구단의 경우 모기업에서 원치 않을 것 같다. 여론이 이렇게 부정적인 상황에서 지명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B구단 스카우트는 "여론 신경 안 쓰는 구단이 딱 두 군데 있으니까 뽑는 구단이 있긴 하겠지만, 예상 순위보다는 한참 뒤로 밀리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C구단 관계자는 "전체 1순위감인 최대어급이 배재고에 있다면 모를까, 굳이 여론 비판을 감수하느니 가급적 다른 선수를 우선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취재에 응한 한 대학야구 관계자는 입시에서 성적 외에 여론을 어느 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의 부정적인 여론이 계속되면 원하는 대학 진학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배재고(사진=배재고 홈페이지)
사과는 시작일 뿐
결국 배재고 학교와 학생들에겐 행정 징계 감경보다 '여론 징계'를 감경받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A구단 관계자는 "아직 드래프트까지 두 달 넘게 시간이 남아 있다. 그 기간에 배재고 선수들과 학교가 어떤 태도와 모습을 보여주고, 야구 팬과 국민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나"고 했다.
이 점에서 배재고가 일부 정치인과 외부 세력의 부추김에 귀를 막고 사과의 길을 택한 것은 다행이다. '표현의 자유'니 '배재고가 뭘 잘못했습니까' 따위 일그러진 목소리를 뒷배로 삼지 않고, 사과하고 고개를 숙인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이제부터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반성과 사과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노력한다고 여론이 누그러지고 돌아설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심을 다한 노력을 이어간다면, 야구 팬들 중에도 '그만큼 혼났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나올 지 모른다. 프로 구단이 지명했을 때 박수까지는 바랄 수 없어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과는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배재고가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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