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154km' 빅리거 고우석의 강렬한 MLB 데뷔전...편한 길 마다하고 도전 또 도전해 꿈을 이루다
빅리거 고우석(사진=MLB.com)빅리거 고우석(사진=MLB.com)

[더게이트]

"평생 후회했을 게 분명했다. 마이너리그 계약이었지만, 일단 버텨서 꿈을 이뤄보자고 결심했다."

빅리그 문이 열릴 만하면 부상이 찾아왔고, 잘 던지다가 크게 무너지거나 소속팀에서 방출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나중엔 아무리 잘 던져도 콜업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시간이 길었다. 굳게 닫힌 것처럼 보인 메이저리그의 문, 그래도 고우석은 포기하지 않고 두드렸다. 2년 8개월의 도전 끝에, 고우석이 마침내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고우석은 10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타깃필드에서 열린 2026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홈경기에 팀의 네 번째 투수로 등판해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팀이 2대 4로 뒤진 9회초 마운드에 오른 고우석은 1이닝 동안 18개의 공을 던지며 1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95.7마일(약 154km/h)까지 찍혔다. 미네소타는 이날 2대 5로 패했다.

첫 삼진의 순간(사진=MLB.com)첫 삼진의 순간(사진=MLB.com)


베일리에게 솔로포 허용,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출발은 산뜻했다. 첫 타자 대니얼 슈니먼을 상대로 4구째 스플리터로 1루 땅볼을 유도하며 데뷔 첫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러나 후속 타자 패트릭 베일리에게 던진 몸쪽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몰리며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내줬다. 지난 5월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다 트레이드된 베일리는 고우석의 처남 이정후와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이기도 하다.

실점 이후에도 고우석은 흔들리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정교한 타자이자 삼진 잡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스티븐 콴을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 끝에 낙차 큰 스플리터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이어 호주 대표팀 소속으로 지난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과 맞붙었던 특급 유망주 트래비스 바자나를 1루 땅볼로 돌려세우며 데뷔전을 마무리했다.

1이닝은 짧은 시간이지만 마운드에 선 고우석의 머릿속엔 지난 2년 8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법하다. 2023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 진출을 타진한 고우석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하며 미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스프링 트레이닝 경쟁에서 밀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마이너리그로 강등됐고, 2024년 5월 4일 루이스 아라에스 트레이드에 엮여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다.

마이애미에서도 빅리그의 벽은 높았다. 산하 트리플 A와 더블A를 전전하던 고우석은 2025시즌을 앞두고 오른쪽 검지 골절이라는 악재까지 겹쳤고, 결국 그해 6월 방출 대기(DFA) 처분을 받았다. KBO리그 복귀설도 나왔지만 메이저리그의 꿈을 이어가는 쪽을 선택한 고우석은 그해 12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다시 맺었다. 하지만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조차 받지 못한 채 또 한 번 기약 없는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고우석은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보낸 첫 2년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미국 야구를 정말 많이 배웠고 선수로서도 성장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올해 돌아오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 게 분명했다. 마이너리그 계약이었지만, 일단 버텨서 꿈을 이뤄보자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올시즌 초반엔 최대 고비를 맞았다. 지난 4월엔 트리플A에서 치른 첫 2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 20.25로 크게 무너지며 더블A로 강등당한 것. 비슷한 시기 마무리 유영찬의 시즌아웃 부상으로 비상이 걸린 친정 LG가 고우석에게 복귀를 타진했고, 차명석 단장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차례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만 포기하고 편안한 국내 무대를 택할 법한 순간이었지만, 고우석은 LG 복귀 대신 도전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

미국에 남은 고우석은 실력으로 반전을 만들었다. 더블A에서 구위를 회복한 뒤 다시 트리플A로 승격했고, 올 시즌 두 리그를 합쳐 41이닝 동안 평균자책 1.96, WHIP 0.823을 기록했다. 9이닝당 탈삼진은 11.8개에 달했고 볼넷은 2.8개만 내줬다. 트리플A 성적만 떼어보면 27.2이닝 동안 평균자책 2.60, 탈삼진 32개를 기록했고 홈런은 단 한 개도 내주지 않았다.

고우석은 호투 비결에 대해 "한국에서 쓰던 구종에 새 구종을 하나 더 얹었다. 원래는 속구, 슬라이더, 커브가 전부였는데 미국에 온 뒤 스플리터를 새로 장착했다"며 "마이너리그에서 던지면 던질수록 타자들을 상대하는 자신감이 붙었다. 스트라이크존을 공격적으로 공략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자는 게 내 마음가짐이었다"고 말했다.

빅리거 고우석(사진=MLB.com)빅리거 고우석(사진=MLB.com)


7월이 되며 열린 기회의 문...미네소타 이적과 함께 빅리그 승격

호투에도 좀처럼 열리지 않던 빅리그 기회는 7월이 되면서 극적으로 해결됐다. 고우석의 마이너리그 계약에는 특정 시점까지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선수 쪽에서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옵트아웃 조항이 딸려 있었고, 고우석은 지난 1일 이 조항을 전격 발동했다. 디트로이트는 48시간 안에 자체 40인 로스터에 즉시 등록하거나 트레이드, 방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네소타에 현금을 받고 고우석을 넘겼다.

고우석의 계약엔 상위 리그 이동 조항이 포함돼 있어 미네소타는 영입과 함께 즉각 40인 로스터 등록을 결정했다. 미네소타는 지난달 24일 오스틴 보스를 방출 대기 처분하며 비워둔 40인 로스터 한 자리를 고우석에게 배정했고, 코디 로리슨을 트리플A로 내리며 곧바로 26인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등록했다.

제레미 졸 미네소타 단장은 "이런 조항이 항상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상황과 기회가 맞아야 하는데, 이번엔 고우석의 성적과 우리 팀 상황을 봤을 때 한번 데려와 볼 만한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영입 배경을 밝혔다. 이어 "지난 몇 년간 눈여겨봐 온 선수다. 디트로이트 산하 더블A와 트리플A에서 올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데렉 셸턴 미네소타 감독 역시 "그의 공을 몇 년간 좋게 봐왔다. WBC 한국 대표팀에서도 던졌고, 영입 기회가 생겼을 때 잡은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등판으로 고우석은 1994년 박찬호 이후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에 나선 30번째 한국인 선수가 됐다. 투수로는 16번째이며, 2021년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양현종 이후 5년 만에 탄생한 한국인 투수 빅리거이기도 하다. 마이애미 시절 몸담았던 더블A 펜사콜라 블루 와후스 구단은 자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우석이 이 구단 출신으로는 160번째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가 됐다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공교롭게도 고우석은 KBO리그 시절 몸담았던 친정팀과 같은 이름의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렀다. 길었던 기다림과 도전의 시간을 뒤로하고, 고우석은 이제 메이저리그의 꿈을 이뤘다. 그의 승격 소식에 한국 야구팬들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를 보내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고우석의 도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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