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반기? 최원준-김현수 형 덕분이죠" 벤치에서 출발해 주전 유격수 탈환, KT 권동진의 반전
KT 위즈 권동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KT 위즈 권동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수원]

지난 3월 28일 서울 잠실야구장. LG 트윈스와의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전광판에 뜬 KT 위즈 선발 라인업에 권동진의 이름은 없었다. 선발 유격수 자리는 열아홉 살 고졸 신인 이강민의 차지였다. 이날 이강민은 역대 2호 '고졸 신인 개막전 3안타' 기록을 썼고, 팀은 11대 7로 대승을 거뒀다. 권동진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벤치를 지켰다.

이튿날에도 경기 후반 대수비로 잠깐 그라운드를 밟는 데 그쳤다. 4월 2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야 겨우 첫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주포지션인 유격수가 아닌 3루수였다. 될성부른 신예 이강민이 공수에서 연일 맹활약하는 사이, 권동진은 5월 중순까지 선발 라인업에 단 다섯 차례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사실 예고된 시련이긴 했다. 심우준이 팀을 떠난 뒤 유격수 후계자를 찾던 KT는 지난해 권동진과 장준원 등을 번갈아 기용하며 '나는 유격수다'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누구도 확실한 주인이 되지 못했다. 그사이 고교 최고 수비수로 꼽히던 신인 이강민이 입단하며 판도가 달라졌다. 이강민은 마무리캠프부터 눈도장을 찍으며 주전 유격수로 낙점됐고, 권동진에겐 유격수와 3루수 백업 역할이 주어졌다.

하지만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를 앞둔 지금, KT 경기에서 매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유격수는 다시 권동진의 차지가 됐다. 권동진은 70경기에서 타율 0.291, 출루율 0.400, OPS 0.833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최고의 전반기를 보냈다. 벤치에서 시작해 5월까지 백업으로 보낸 시간을 통과해 만들어낸 놀라운 반전이다.

벤치로 밀려난 시즌 초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위즈파크에서 만난 권동진은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경쟁이기에 굳이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다. 라인업을 짜는 건 감독님의 영역"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보다는 수비력이 좋은 이강민이 주전 유격수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인정했고, 대신 2루든 3루든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추격의 홈런을 날린 권동진(사진=KT)추격의 홈런을 날린 권동진(사진=KT)


대주자·대수비로 버틴 시간, 기회가 왔다

묵묵히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한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4월 29일 수원 LG전, 대주자로 투입된 권동진은 경기 후반 멀티히트를 몰아쳤고, 끝내기 안타 때 결승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5월 5일 수원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대주자로 출발해 3루 대수비로 나섰고, 8회말 1사 3루에서 결승 2루타를 날렸다. 사흘 뒤인 9일에는 선발로 나서 4타수 4안타를 몰아쳤다.

5월 21일 포항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아리엘 후라도를 상대로 세 타석에서 총 27구를 던지게 하며 괴롭혔고, 2타점 2볼넷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날을 시작으로 5경기 연속 유격수 선발로 나선 권동진은 6월부터 완전히 주전 자리를 되찾아 거의 매일 선발 출전했다. 6월 12일 수원 NC 다이노스전에서는 8회말 동점 적시타를 쳤고, 이튿날에는 8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좌월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강철 감독의 신임도 그렇게 다시 권동진 쪽으로 향했다.

반전의 비결을 묻자 권동진은 올해 새로 팀에 합류한 선배 최원준과 김현수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최원준 형이 우리 팀에 와서 많은 걸 알려준다. 김현수 형도 많이 가르쳐 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타석을 마치고 오면 최원준이 바로 더그아웃에서 피드백을 건넸고, 이를 토대로 연습을 거듭하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LG 트윈스 시절부터 리더십으로 정평이 난 김현수에 대해선 "사소한 부분까지 아낌없이 조언해 주신다. 덕분에 야구를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며 "팀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시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시고 밥도 자주 사주신다. 쓴소리도 아끼지 않으시는데 전혀 무섭지 않고 감사할 뿐"이라며 웃었다.

이강철 감독도 이런 권동진의 활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 감독은 "동진이가 워낙 착한 선수라 그런지 원준이나 현수가 많이 도와주더라. 다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권동진은 지난해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 출전을 앞두고, 위즈티비를 통해 올스타전에 나서는 모든 선수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됐다.

올스타전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한 달 용돈 70만원 전액을 팬들을 위해 쓴 미담도 있다. 당시 팬들은 권동진을 향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라며 애정을 보냈다. 이 감독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중요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주니 이제는 라인업에서 안 쓸 수 없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KT 권동진(사진=KT)KT 권동진(사진=KT)


기술과 멘탈 모두 진화, 하체 타이밍에 눈뜨다

기술적으로 달라진 점을 묻자 권동진은 "하체 움직임에 집중하며 타격하려고 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팔 위주로 스윙을 하다가 밸런스가 무너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골반 힌지를 단단히 잡아둔 채 스윙을 시작하면서 상체 힘을 빼게 됐고, 자연스레 하체의 힘을 실어 공을 때리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유한준 타격코치와 최원준, 김현수의 조언을 수용해 스프링캠프부터 묵묵히 다듬어온 결과다.

수비 역시 정확히 잡고 송구하는 기본을 뼈대로 발전을 이뤘다. 박기혁, 박경수 수비코치의 집중 지도를 받으면서 핸들링과 송구의 안정감을 더했다는 자평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포구에 비해 송구가 다소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지난해 15개에 달하던 유격수 실책도 올 전반기엔 단 4개로 대폭 줄었다.

권동진은 스탯티즈 기준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도 1.22승을 찍으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WAR 0.40승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를 전반기 만에 쌓아 올렸다. 막판 세 경기 무안타로 타율이 0.291까지 살짝 내려앉았지만, 7월 초까지 3할대 타율을 유지하면서 장점인 컨택 능력을 과시했다.

특히 삼진 비율이 지난해 29.4%에서 올해 23.4%로 줄었고, 볼넷 비율은 9.7%에서 13.6%로 향상되는 등 타격 접근법과 선구안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비결을 묻자 또 다시 '최원준'의 이름을 꺼냈다. 권동진은 "그 역시 원준이 형의 조언 덕분"이라며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야 할 타이밍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때를 명확히 인지하게 됐다. 덕분에 볼넷은 늘고 삼진이 줄었다"고 밝혔다.

원광대 시절 야수 최대어로 꼽히며 큰 기대 속에 입단한 권동진이다. 프로 입단 뒤 숱한 시행착오와 성장통을 겪었지만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면서 프로 무대에 적응할 수 있었다"며 "모든 선수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않나.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제 페이스를 지키려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개인 성적 욕심보다는 늘 팀의 승리를 머릿속에 먼저 그린다. 후반기 목표를 묻는 말에도 구체적인 숫자 대신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권동진은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면서 "후반기에는 팀이 더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시즌 첫날 LG전에서 벤치를 지킨 권동진이 후반기 개막전 LG전은 주전 유격수로 맞이한다. 정말이지 야구에선 무슨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는 법. 시즌이 끝났을 때도 같은 자리에 있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권동진은 들뜨거나 마음을 놓을 생각이 없다. 권동진은 "숫자보다는 부상 없이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게 목표"라면서 "그저 하루하루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살고 싶다"고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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