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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키움을 선언한 하영민(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더게이트=고척]
"거의 고민이라고 할 게 없었죠. 아내와 약간의 상의만 하고 바로 사인했던 것 같아요."
'종신 키움'을 선택하는 데 많은 고민이나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키움 히어로즈의 우완 하영민은 지난 13일 서울 신도림 더링크서울 트리뷰트 포트폴리오 호텔에서 계약기간 8년(2027~2034년), 총액 80억원 규모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 사실상 은퇴까지 키움 한 팀 유니폼만 입는 '원클럽맨' 계약에 사인했다.
역대 투수 비FA 다년계약 중 여섯 번째로 큰 대형 딜의 주인공이 됐지만 하영민은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계약 다음 날 고척에서 만난 그는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대박이다'라는 문자도 받았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날도 지상파 방송과 중앙 일간지를 오가며 여러 건의 인터뷰를 소화한 그는 "계약 제안을 처음 받고 이틀 만에 다시 구단과 만나 계약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진흥고 시절의 하영민(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FA 고민? 그보다 걱정이 더 컸다"
최근 KBO리그 선발투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솟는 중이다. 박세웅은 2022년 10월 5년 90억원에 비FA 다년계약을 맺고 롯데 자이언츠에 남았다. 임찬규는 2023시즌 종료 후 4년 50억원에 LG 트윈스와 손잡았다. 류현진은 2024년 2월 8년 170억원에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며 역대 최고액을 새로 썼고, 시즌 뒤 FA 자격을 얻는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의 몸값은 벌써 200억원까지 거론된다. 하영민 역시 시장에 나갔다면 여러 구단의 러브콜 속에 몸값이 더 뛰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데도 FA가 아닌 잔류를 택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단어는 뜻밖에도 '걱정'이었다. 하영민은 "내가 FA로 나갔을 때 지금 팀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더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어 "8년이라는 시간을 애정 있는 키움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FA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계약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에이전트도 그의 뜻을 존중했다. "내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해주셨다. 원클럽맨으로 은퇴할 수도 있는 기회인 만큼, 내 선택에 많이 맡겨 주셨다."
하영민은 지금 키움 투수 가운데 목동야구장 시절을 기억하는 유일한 선수다. 광주진흥고 시절 가냘픈 체구와 꽃사슴 같은 눈망울에 마치 청춘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에이스였던 그는 2014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넥센(현 키움)에 입단했다. 당시 기자는 드래프트 리뷰에서 하영민에 대해 "고교 투수로는 최고 수준의 제구력과 변화구, 위기관리 능력이 강점"이라고 적었다. 다만 소프트웨어에 비해 하드웨어가 따라주지 않는 게 아쉬웠다. 176cm 67kg로 투수치고는 너무 마르고 왜소한 몸에 패스트볼 구속도 대부분 130km/h 중후반대에 머물렀다.
강속구와 신체조건을 우선하는 최근 야구 트렌드 속에서, 가녀린 몸과 느린 구속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하영민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연구하고 노력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과 싸우며 꾸준히 몸을 키웠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22년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입대 전 평균 140km/h 초반대였던 패스트볼이 2022년 평균 145.8km/h, 2023년에는 148km/h까지 올랐다. 이 시기 각각 41경기, 57경기에 불펜으로 등판하며 키움 마운드의 뒷문을 지켰다.
2024년부터는 풀타임 선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28경기에 등판해 15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리그에서 가장 꾸준하고 안정적인 선발로 활약했다. 2024년부터 2026년 전반기까지 최근 3년간 던진 이닝은 370.2이닝. 박세웅(424.1이닝), 원태인(404.1이닝), 양현종(402.2이닝), 임찬규(389.2이닝), 류현진(385.1이닝), 곽빈(374.0이닝)에 이어 국내 선발투수 중 일곱 번째로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다.
하영민(사진=키움)
"구속 욕심 때문에..." 값진 시행착오
올 시즌은 하영민 커리어에서 큰 도전이자 위기이기도 했다. 지난 시즌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겨우내 재활에 매달렸다. 이 기간 몸무게도 8~9kg을 더 늘리며 더 강한 공을 던지기 위한 준비를 이어갔다. 하영민은 "팀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에 재활 기간에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고 돌아봤다.
재활은 순조롭게 마쳤지만, 시즌 초반 등판에선 제구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구내용이 좋지 않았다. 팔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자 볼 스피드에 욕심을 낸 게 화근이었다. "팔도 금방 괜찮아지고 스피드도 나오게 되면서 욕심을 한번 부려봤는데, 그게 시즌 초반에는 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하영민은 돌아봤다.
"스피드를 내려고 원래 폼이 아니라 팔을 살짝 올려서 수직 무브먼트를 살려 던지려다 보니 거기서 미스가 났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원래 폼으로 돌아왔고, 그러면서 변화구 퀄리티를 살려서 던지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영민의 말이다.
다행히 원래 폼으로 돌아온 뒤에도 볼 스피드는 떨어지지 않고 유지됐다. 제구력과 변화구라는 장점을 살리면서 구속까지 살아나니 다시 하영민다운 피칭이 가능해졌다. 시즌 초반 겪은 시행착오는 8년 계약 후반에 나이가 들고 스피드가 떨어졌을 때 돌파구를 찾는 데 힌트가 될 법하다. 하영민도 "그때 느꼈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8년 동안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영민이 남몰래 마음고생한 데는 아내와 첫 아이의 건강 문제도 있었다. 하영민의 아들은 2026년 5월 초 예정보다 일찍 이른둥이로 태어나 서울 구로구 고려대 구로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는 "제일 걱정됐던 건 아들이 예정보다 일찍 나오게 된 거였다. 아내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힘들어해서 그쪽에 더 신경이 쓰였다"라고 털어놨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을 되찾아 6월 말 집으로 돌아왔고, 13일 계약식에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2세가 태어난 해에 대형 계약까지 성공했으니, 그야말로 복덩이가 따로 없다.
종신 키움을 선언한 하영민(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자부심? 어떻게 살아남을까만 계속 생각한다"
하영민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신하는 투수다. 커리어 초반 왜소한 몸과 느린 공으로 버텨야 했던 만큼, 체인지업과 포크볼, 커터 등 다양한 구종을 프로 무대에서 계속 장착하고 또 덜어내며 자신만의 무기고를 만들어왔다. 올해는 스위퍼를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그는 "25년 말부터 조금씩 던지기 시작했고, 26년에 완전히 장착했다"며 "이제는 던지고 싶을 때 던질 수 있는 진짜 내 구종이 됐다"고 했다.
사람들은 "하영민은 손 감각이 좋아 변화구를 쉽게 익힌다"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노력의 산물이다. 하영민은 "캐치볼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스위퍼만 던졌던 때도 있다"며 "직접 던지면서 공 각이 어떻게 휘는지 직접 보고, 내가 생각하는 각에 더 근접하게 되면 그때부터 믿고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된다. 직접 던져보고 눈으로 확인해서 몸에 익히려고 한다"고 밝혔다.
작고 왜소했던 19살 신인에서 출발해 노력으로 이룬 8년 80억 대형 계약 성과.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지만 하영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굳이 내가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나 스스로 칭찬하고 채찍질을 할 뿐"이라며 "자부심을 부릴 여유가 없다. 계속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할 뿐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큰 계약에 만족하거나 현실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영민의 앞으로 8년을 기대해봐도 좋은 이유다.
목동과 넥센 시절을 기억하는 올드 키움 팬들에게 하영민은 애틋한 존재다. 아끼던 선수들과 이별에 익숙한 키움 팬들에게, 종신 키움을 선언한 원클럽맨의 존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영민도 각종 방송·지면 인터뷰 때마다 팬들을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수줍어하며 "내가 팬분들께 애교를 부리거나 하진 못하는 스타일이다. 정말로 감사한 마음에서 팬들 얘기를 하는 건데, 팬들도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반기를 앞둔 현재 키움은 승률 0.346으로 리그 10위, 4년 연속 최하위 위기에 놓여 있다. 베테랑으로서 큰 계약을 맺은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법하다. 하영민은 "지금은 우리 팀이 많이 주춤하고 있고 하위권에 있는 게 사실이다. 선수들이 똘똘 뭉쳐야 되고 하나가 된 팀이 되어야 조금 더 많은 승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뿐만 아니라 형들도, 어린 친구들도 서로 물어보면서 소통하고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고 희망적인 면을 말했다.
"더 많은 이닝도 던지고 싶고, 10승도 하고 싶다"고 목표를 밝힌 하영민은 그보다 더 중요한 목표로 키움을 다시 강팀으로 만드는 것을 꼽았다. 그는 "팀이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게 우선이다. 가을 야구도 가야 되고, 한국시리즈도 갔으면 좋겠다"며 "좋은 퍼포먼스를 펼쳐서 우승도 해보고 싶다. 그래야 팬들과 같이 웃으면서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 가장 큰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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