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이 마흔인데 10년전 구속 그대로...152km 던지는 원종현의 기적 "온 힘을 쥐어짜고 있어요"
키움의 베테랑 원종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키움의 베테랑 원종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고척]

'155'는 키움 히어로즈 원종현이 어떤 선수인지 말해주는 숫자다.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해온 원종현의 커리어가 이 숫자 하나에 담겨 있다.

스물일곱 살이던 2014년, 원종현은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시속 155km 강속구를 던지며 팀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팀은 LG에 1승 3패로 무릎을 꿇었지만, 원종현은 그 공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야구팬들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2006년 프로 입단 이후 부상과 방출, 수술과 입단 테스트를 거쳐 1군 투수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던 원종현에게는, 야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순간이었다.

이듬해 대장암 발병이라는 더 큰 고난이 찾아왔지만 원종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NC 선수단은 원종현의 쾌유를 빌고 팀과 함께한다는 마음을 모아 선수단 모자에 '155K'라는 상징을 새기며 한마음으로 뭉쳤다. 원종현은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내고 마운드에 복귀했다. 2016년 5월 복귀전에서 시속 152km를 던졌고, 그해 가을 포스트시즌 무대에서는 다시 155km를 뿌리는 기적을 보여줬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 시즌,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원종현은 여전히 마운드에서 150km대 강속구를 던지고 있다. 전성기에 던졌던 155km까지는 아니지만 최고 구속은 152km를 찍었다. 평균 구속도 147.1km로 커리어 최고 수준이다. 이는 서른 살 시즌이던 2017년, 그리고 서른셋과 서른넷이던 2020년과 2021년에 기록한 평균 구속과 같은 수준이다.

147.1km는 스탯티즈 집계가 시작된 2013년 이후 만 39세 이상 투수 평균 구속에서도 역대 최고 수치다. 종전 최고였던 2021년 삼성 오승환(145.7km/h), 2023년 SSG 노경은(145.6km/h), 2015년 삼성 임창용(145.4km/h)을 모두 넘어섰다. 2년 전 팔꿈치 수술 이후 30대 후반 노장의 재기가 가능할지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이를 깨끗이 씻어내고, 원종현은 다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강속구를 던지고 있다.

키움히어로즈 원종현이 100홀드 기념 시상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키움히어로즈키움히어로즈 원종현이 100홀드 기념 시상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키움히어로즈


"지금은 정말 힘을 다 써서 쥐어짜듯 던진다"

후반기를 앞두고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원종현에게 강속구 비결을 묻자, 웃으면서 "힘을 쥐어짜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렸을 때는 가볍게 던지던 구속인데, 지금은 정말 힘을 다 써서 쥐어짜 내듯 던지고 있다"고 답한 원종현은 "그냥 마운드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던지고 어떻게든 타자를 잡아내려는 마음가짐으로 던지다 보니 다행히 공이 좋아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키움 합류 이후 지난 3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원종현에겐 올 시즌 출발도 순탄치는 않았다.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돼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한 것. 원종현은 "컨디션이 생각보다 늦게 올라와서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감독님의 생각에 나 역시 충분히 납득했다"며 "다시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군에서 열심히 했고, 다행히 다시 올라오면서부터 잘됐다"고 돌아봤다.

1군 복귀전은 4월 14일 광주 KIA전이었다. 이날 1이닝 동안 평균 149km의 빠른 공으로 무실점 호투하며 복귀를 신고했고, 내리 4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NC전에서 3실점으로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다음 경기부터 다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시즌 첫 13경기 가운데 12경기에서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안정된 피칭으로 신임을 되찾았고, 어느새 필승조 한 자리를 꿰찼다.

원종현은 구속 외에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 적응을 호투 비결로 꼽았다. ABS 도입 초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원종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핵심은 투구 로케이션의 변화였다. 스리쿼터에 가까운 낮은 팔 각도로 공을 던지는 원종현은 원래 존 낮은 쪽을 공략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이제는 높은 코스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ABS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원종현은 "예전에는 낮은 코스를 잘 던져야 했다면, 요즘은 높은 코스도 잘 이용해야 투수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슬라이더 연습을 많이 하고 높은 쪽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려고 준비한 게 잘 먹힌 것 같다"고 분석했다.

키움의 베테랑 원종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키움의 베테랑 원종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마흔에 써 내려가는 FA 마지막 해의 서사

2022년 겨울 키움과 4년 25억원에 FA 계약을 맺고 이적한 이후, 첫 세 시즌은 아쉽게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계약 첫해였던 2023년에는 20경기 18.2이닝 동안 평균자책 5.79에 그쳤고, 2024년에는 팔꿈치 수술로 3.2이닝 만에 시즌을 접었다. 2025년 마운드로 돌아와 61경기 54.1이닝을 던지며 11홀드 5세이브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 6.13으로 여전히 정상 궤도에는 오르지 못했다. 다만 건강하게 풀시즌을 소화하고 평균 구속도 146km까지 끌어올린 게 올 시즌 반등의 발판이 됐다.

4년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원종현은 키움 합류 이후 최고의 성적을 쓰고 있다. 6월부터는 일본인 투수 가나쿠보 유토와 마무리 보직을 분담하며 셋업맨과 마무리를 오가고 있다. 32경기에 등판해 1승 3패 3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73을 기록 중이다. 팀이 최하위권이다 보니 세이브 기회는 많지 않지만, 드물게 찾아오는 승리 기회마다 벤치가 가장 먼저 믿고 내보내는 투수가 바로 원종현이다.

같은 노장이자 선배인 노경은과 김진성의 활약은 원종현에게 이정표이자 희망이다. SSG 노경은은 지난해 77경기에 등판해 35홀드, 평균자책 2.14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홀드왕에 올랐고, 올해 WBC에는 역대 최고령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아 활약했다. LG 김진성 역시 지난해 78경기에서 6승 33홀드를 수확하며 팀의 통합우승에 힘을 보탰고,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남겼다.

원종현도 선배들처럼 40대에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원종현은 "김진성 선배도 있고 노경은 선배도 있고, 마흔이 돼도 쌩쌩한 선배들이 대단하다"면서도 "나 역시 이제 마흔인데 그 형들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어려움을 이기면서 여기까지 오신 것이라 대단하고 자부심이 있을 것 같다. 힘든 일을 많이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나 역시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또 "예전에 건강 문제도 있었다 보니 아직 남들만큼 많이 먹지는 못한다"면서도 "최대한 잘 먹고 잘 자면서 할 수 있는 걸 하며 선수 생활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키움은 리그에서 가장 선수단 평균 연령이 젊은 팀이다. 평균 26.3세로 대부분의 선수가 20대 초반 신인급이라 마흔 살 원종현과는 삼촌 조카뻘이다. 투수진 최고참으로서 역할에 대해 원종현은 "후배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이라 쉽지는 않다"고 웃으면서도 "경기에 들어가면 경기에 집중하되, 후배들한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으면 해주고, 긴장을 풀어줄 때 풀어주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의 아쉬움을 씻고 4년 계약 마지막 해에 최고의 전반기를 보냈다. 시즌 후 FA 재도전에 욕심을 낼 법도 하지만, 원종현은 고개를 저으며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그것보다는 정말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언젠가부터 먼 앞날을 미리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체득했다. 원종현은 "선수 생활을 할 때가 제일 좋은 시간이다. 섣불리 언제까지 하겠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더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지금까지 숱한 역경도 그렇게 이겨왔다. 앞으로 몇 년 뒤에 원종현이 여전히 마운드에 있고, 150km대 공을 던지더라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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