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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박찬호(사진=팀61 제공)[더게이트=삼성동]
다소 촌스러운 초록과 노랑 유니폼, 낡고 노후한 홈구장, 그리고 영화 '머니볼'이 남긴 '가난한 구단' 이미지. 대부분의 한국 야구 팬에게 '애슬레틱스'는 딱 그 정도로만 각인된 이름이었다. 애슬레틱스 구단 역시 한국과 별다른 접점이 없긴 마찬가지. 녹색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기억도, 구단이 한국과 아시아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선 역사도 없었다.
그런 애슬레틱스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손을 맞잡았다.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구단 투자자로 애슬레틱스 지분을 사들이면서 성사된 파트너십이다. 박찬호가 주도한 투자 컨소시엄 팀61은 27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애슬레틱스와 7000만 달러(약 1015억원) 규모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박찬호는 구단 수석고문을 맡아 한국 시장을 겨냥한 스카우트와 마케팅 업무에도 조언을 건넬 예정이다.
존 피셔와 켄 정(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공주에도 가고, 경복궁도 봤다"
이날 행사에는 존 피셔 구단주와 마크 바데인 사장이 참석해 한국과 한국 야구를 향한 립서비스 발언을 쏟아냈다. 피셔 구단주는 "국립중앙박물관도 가봤고 여러 기업인도 만났다. 잠실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도 봤다"며 "가장 뜻깊었던 건 박찬호의 고향 공주를 찾아 부모님을 만난 일이었다"고 말했다. 경복궁 방문과 백제 유물 관람 등 이번 방한 일정도 소개하며 "이번 방문에서 한국이 우리에게 준 의미가 정말 컸다"고 전했다.
구단 경영진의 '친한' 행보 이면에는 정교한 비즈니스 계산이 깔려 있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새 연고지 이전을 앞두고 신규 팬덤과 투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다른 서부지구 구단들의 움직임도 무관치 않다. LA 다저스는 일본 시장을 적극 공략한 데 이어 김혜성을 영입하며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정후)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송성문) 역시 한국 선수 영입을 통해 아시아 시장에 눈을 돌린 상태다.
여기엔 달라진 한국 야구의 위상도 한몫한다. 박찬호가 1994년 홀로 태평양을 건넜을 당시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박찬호 한 명뿐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정후, 김혜성, 송성문, 김하성 등 여러 한국 선수가 동시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비고 있다. KBO리그는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넘겼고, 올해도 전반기에만 763만 3775명이 입장해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다. 한국의 1인당 메이저리그 시청률이 미국보다 높은 세계 2위를 기록한 시즌도 있었다.
이날 팀61 투자자로 참석한 배우 켄 정이 출연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보여준 K컬처의 영향력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야구든 문화든 경제든, 이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가볍게 볼 수 없는 시장이 된 셈이다. 박찬호도 이날 많은 한국 관광객과 한국 기업이 이미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있다는 점을 소개하며, 한국과 라스베이거스가 앞으로 더 활발하게 교류하고 사업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호는 이번 투자가 단순한 지분 참여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국 유망주들이 미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의 교류가 늘어나길 바라는 뜻도 밝혔다.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를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드러냈다. 오타니 쇼헤이의 입단이 다저스의 일본 시장 공략에 힘을 실어줬듯,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려면 한국인 선수라는 간판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야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구단 투자에도 더욱 힘이 실린다.
박찬호(사진=팀61 제공)
애슬레틱스 유니폼 입은 한국 선수,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정후, 김혜성, 송성문, 김하성, 고우석 등이 각자의 팀에서 활약 중이지만 애슬레틱스 소속 선수는 아직 없다. 애슬레틱스는 그동안 몇 차례 한국 유망주 영입을 시도했지만 결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024시즌 MVP 김도영은 고교 시절 애슬레틱스로부터 100만 달러 규모의 계약금을 제안받았지만 국내 잔류를 택해 KIA 타이거즈에 1차 지명됐다.
지난해에는 박석민 전 두산 베어스 코치의 아들이자 강속구 투수인 박준현이 애슬레틱스로부터 총액 약 200만 달러(약 29억원) 규모의 제안을 받았지만, 역시 KBO리그 잔류를 택해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내야수 박효준도 2023년 애슬레틱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A 라스베가스 에비에이터스에서 뛴 적이 있지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다. 고교 유망주는 물론 포스팅을 통해 이적할 수 있는 김도영, 안현민 같은 선수의 영입 계획이 있는지, 2024년 서울 시리즈에서 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큰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애슬레틱스도 방한 경기나 유소년 교류, 국내 프로팀과의 평가전을 계획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애슬레틱스 구단은 일단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바데인 사장은 "당연히 한국에서도 경기를 진행하고 싶고, 라스베이거스로 한국 팀을 초대하고 싶다. 두 가지 다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며 "이 자리에 우리 구단 스카우트도 참석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재를 확보해 글로벌 무대에서 뛸 수 있게 하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야구에서 다음 메이저리그 진출 후보로는 안우진, 김도영, 안현민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김도영은 고교 시절 애슬레틱스가 이미 눈독을 들였던 선수라는 점에서, 돌고 돌아 다시 인연이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애슬레틱스 고위층은 이날 오전 허구연 KBO 총재와도 만나 환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남을 계기로 한국 방문 경기나 KBO 구단 초청 같은 실질적인 이벤트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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