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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박태준과 김대원의 하이파이브

스포츠춘추
영화 '인터스텔라' 속 2067년 메이저리그 경기 장면. 대기오염으로 황폐해진 지구에선 양키스도 허름한 야구장에서 경기하고, 모래폭풍이 불면 그대로 경기가 중단된다. 올해 KBO리그도 코로나19 사태 속에 이전과는 다른 야구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더게이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엔 야구팬이라면 반가우면서도 씁쓸할 법한 장면이 나온다. 2067년 미래, 환경오염으로 망가진 지구에서도 야구는 계속된다. 대기는 오염되고 흙먼지가 세상을 뒤덮어도 야구 경기가 여전히 열리고 있다. 다만 뉴욕 양키스가 양키스타디움 대신 허름한 경기장에서 야구하고, 모래폭풍이 몰려오면 잠시 경기를 멈추고 대피하는 게 차이다.
기후재난이 야구를 바꾸는 건 비단 영화 속 미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KBO리그만 해도 지난주부터 폭염으로 일정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전국을 뒤덮은 폭염에 그라운드가 활활 타오르고, 구토하는 선수가 나오고, 글러브가 녹아서 선수가 부정투구를 의심받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장시간 뛰기는커녕 가만히 앉아있기도 힘든 지경이 되자 결국 폭염으로 취소되는 경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KBO가 그사이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정작 4일 새 대책을 발표한 바로 그날 관중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KBO는 8월 5일과 6일 예정된 경기를 모두 취소하고, 6일 긴급 실행위원회를 열기로 결단했다.
KBO는 이미 1일과 4일 두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비판을 받았다. 그간 했던 것처럼 문제가 생기면 일단 미봉책을 내고, 다른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대책을 내놓는 식이 반복돼선 안 된다. 땜질식 대응에 그치지 않고,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면서 리그를 무사히 이어갈 근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시 반 고수한 지 오래…경기 시간부터 유동적으로"
KBO가 폭염 대책을 발표했다(사진=삼성)
실행위원회에는 10개 구단 단장들은 물론 프로야구선수협회 관계자도 참석해 대책을 논의한다. 일단 혹서기 기간 전반의 경기 개최 여부, 폭염시 상황별 경기 운영 세칙, 선수단과 관중의 안전 대책이 테이블에 오를 전망. 논의 결과에 따라선 이번 주말 3연전 개최 여부도 다시 판단이 불가피해 보인다.
취소된 경기를 언제 다시 편성할지도 골칫거리다. 이미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에 폭염 취소 경기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취소되는 경기가 더 얹어지면 잔여 일정 조율은 한층 까다로워진다. 특히 다음 달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를 많이 보내면서 동시에 순위 싸움까지 치르는 팀이라면 잔여 경기가 늘어나는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기 일정 외에 리그와 경기 진행 방식을 둘러싼 논의도 예상된다. 먼저 경기 개시 시각을 30분 뒤로 늦추는 방안이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오후 6시 30분 경기를 고수한 지 오래됐는데, 예전에 9시 뉴스 시절 스포츠 뉴스 시간에 맞춰 세팅된 것"이라며 "그동안은 아무리 늦춰달라고 해도 안 됐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경기 시간을 늦추는 것도 방법이다. 여름철엔 개시 시간을 유동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는 개시 시각을 30분 늦춰 치른 바 있다.
경기 중 휴식 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기존 5회 종료 후 클리닝타임에 국한하지 않고 2~3이닝 단위로 짧은 휴식 시간(브레이크타임)을 넣는 방식도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다. 선수뿐 아니라 심판, 관중, 볼보이 등 경기장을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선수들은 공격 시간이나 이닝 중간에 냉풍기라도 쐴 시간이 있지만 심판은 세 시간 넘게 내내 그라운드에 서 있어야 한다. 요즘엔 1회만 지나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며 휴식 시간이 심판들의 건강과 판정 퀄리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 에이전트는 "의외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폭염 속 경기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며 "물론 아주 더운 날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수들은 룰이 정해지고 경기를 하기로 결정되면 나가서 뛰는 걸 마다하진 않는다"고 귀띔했다. 오히려 폭염 속 경기보단 루틴이 깨지는 오후 2시 경기, 그리고 신체적으로 큰 무리가 따르는 더블헤더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크다고. 실제 폭염 속 경기 강행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건 선수들보다는 주로 프런트와 현장 감독들 쪽이다.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장기 대책도 화두
폭염 속에서 매일 경기를 뛰어야 하는 선수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이다(사진=두산)
폭염이 이번 여름 한 철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데는 KBO는 물론 야구계 전반에 어느정도 합의가 이뤄졌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덥고, 내년보다는 후년이 더 더울 가능성이 큰 만큼 구체적이면서도 급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장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돔구장이 지금보다 늘어나면 어려움이 상당 부분 해소되겠지만 완공까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적지 않다. 좀 더 실현 가능한 카드로는 올스타 브레이크 시기를 혹서기로 옮기고 기간 자체를 늘리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 계속 나오는 정규시즌 경기 수 축소 주장도 이번 폭염을 근거로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한 야구업계 종사자는 사견을 전제로 "경기 수를 줄이는 대신 미국프로농구(NBA)의 인시즌 토너먼트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정규시즌 경기 수를 줄이는 대신, 혹서기 기간 10개 구단이 돔구장에 모여 미니 토너먼트 대회를 치르자는 아이디어인데, 물론 현실성은 떨어진다.
'야구는 이래야 한다'는 틀에 얽매여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다른 종목의 경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는 체감온도(WBGT) 30.1도 이상이면 세트 사이 10분 쿨링 브레이크를 허용하고, 32.2도를 넘으면 경기 자체를 중단시키는 새 규정을 도입한다. US오픈도 이미 남자 단식은 3세트와 4세트 사이, 여자·주니어는 2세트와 3세트 사이에 온도 기준 휴식을 두고 있다.
미국프로야구(MLB)는 지난 3월 애리조나 시범뎡기 기간 폭염 예보가 뜨자 6개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경기 10경기의 시작 시각을 오후 6시 이후로 일괄 조정했고, 반대로 한 경기는 오전 11시로 앞당겼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고교야구조차 '2부제'를 지난해보다 확대해 오전 8시, 오후 1시 30분, 오후 4시, 오후 6시 30분에 나눠 플레이볼을 선언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첫 사흘간 예정됐던 봉황대기 낮 경기(오전 11시 30분 시작)를 아예 취소하고, 오전 9시 경기는 8시 30분으로, 오후 5시 경기는 오후 6시로 시작 시각을 조정했다. 야구의 기본적인 골격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달라진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발상을 바꾼 사례들이다.
야구는 그동안 시대와 환경이 바뀔 때마다 빠르게 형태를 바꿔가며 명맥을 이어왔다. 오죽하면 영화 인터스텔라 속 2067년 망가진 세상에서도 야구가 여전히 존재할 정도. 그러고 보면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이겨낸 게 야구다. 이번에도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6일 열리는 회의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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