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양말까지 흠뻑 젖는다" 폭염과의 전쟁, 선수·팬만 문제? 심판들도 죽어난다
KBO리그 심판진(사진=두산)KBO리그 심판진(사진=두산)

[더게이트]

최근 KBO리그에서 폭염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주로 선수와 관중의 안전에 집중돼 있다. 오후 2시부터 운동장에 나와서 훈련하는 선수들의 건강, 뙤약볕 아래 야구장을 찾은 팬들의 온열질환을 염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논의 뒤편에 상대적으로 잊힌 그라운드의 조연이 있으니, 바로 KBO리그 심판진이다.

"선수들은 공수교대 때 코끼리 냉풍기 바람이라도 쐰다. 팬들도 미니 선풍기를 틀거나 쿨링팩을 붙이거나 복도로 잠시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심판들은 서너시간 동안 한 순간도 그라운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야구 관계자의 말이다. "심판이 그라운드의 '악당' 취급을 받는 게 사실이지만, 알고보면 현장에서 가장 무방비로 폭염에 노출된 이들이다."

심판진은 플레이볼 선언 순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그라운드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공격과 수비를 교대하며 물을 마시고 숨을 돌릴 여유가 있는 선수와 달리, 심판진은 초 공격과 말 공격을 가리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킨다. 폭염이 심한 날 지열이 70도 이상 치솟는 상황에서도 피할 곳은 없다.

"경기 전 하늘색이던 심판복이 1회만 지나면 진한 파란색으로 변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홀딱 젖는다. 양말까지 젖는다고 보면 된다. 그 상태로 옷을 갈아 입거나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서너 시간을 버텨야 한다." 심판진과 자주 교류하는 한 야구인은 현장의 고충을 이렇게 전했다.

화장실도 못 가는 3시간… 편의시설도 열악KBO리그 심판진(사진=두산)KBO리그 심판진(사진=두산)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화장실조차 가기 어렵다. 이닝 중간에 물을 마시고 땀을 닦는 수준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마저도 양 팀 수비진에게 빨리 나오라고 독려하거나, 다음 이닝을 준비해야 하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5회 클리닝타임이 사실상 심판이 재정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경기장 편의시설도 열악하다. 일례로 잠실야구장의 경우 비좁고 낡은 심판 대기실 옆에 작은 샤워시설이 마련돼 있는 정도다. 경기를 앞두고 대기하거나, 경기후 휴식을 취할 만큼 쾌적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장시간 고온 노출은 심판 판정 정확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체온이 높아지면 충동 조절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기능은 저하되고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 땀과 갈증, 심박수 증가 같은 신체 신호가 뇌의 주의를 빼앗으면서 판정에 써야 할 에너지가 더위를 버티는 데 소진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거 국외 연구에서는 실제 판정 정확도 하락이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몬머스대 경제학과 에릭 페셀마이어 교수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경기 1만 8907건의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분석한 결과, 섭씨 35도(화씨 95도) 초과 구간에서 판정 정확도가 85.9%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 도입과 비디오판독 확대로 과거보다 판정 부담이 줄었다고 해도 어려움은 여전하다.

그라운드 위 쓰러지는 심판들… 쿨링 브레이크가 숨통 틀까KBO리그 심판진(사진=두산)KBO리그 심판진(사진=두산)


폭염은 심판의 건강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한다. 2017년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선 김풍기 주심이 열사병 증세로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경기 중 교체됐다. 지난해 6월 시애틀 매리너스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에서는 5회 종료 후 주심이 경기장을 떠나 결국 심판 3명 체제로 남은 경기를 치렀다. 2025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61세 유소년 야구 심판 미첼 허긴스가 소프트볼 대회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목숨을 잃는 비극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6일 열린 KBO 폭염 대응 긴급 실행위원회에서 '쿨링 브레이크'를 마련한 건 다행한 일이다. 이날 회의에선 3회와 7회 종료 후 이닝 교대 시간을 4분으로 늘려 쿨링 브레이크로 고정 운영하기로 했다. 5회 종료 후 클리닝타임도 필요시 최대 6분까지 늘어난다. 선수단과 관중은 물론, 심판진에게도 잠시 숨을 쉴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폭염의 피해는 사회 취약계층에게 먼저, 더 크게 타격을 준다. 야구장의 시선도 주로 선수와 팬들에게 쏠려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엔 심판뿐 아니라 볼보이, 판매원, 안내 요원들이 서 있다. 야구장에 갈 때마다 안내원들이 출입구 앞에서 손풍기 하나 없이 대여섯 시간씩 서서 버티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야구를 보면" 보이지 않는 그라운드의 또 다른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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