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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곽빈(사진=두산)[더게이트]
올 시즌 두산 베어스는 리그 최강의 마운드를 자랑한다. 팀 평균자책 3.76으로 리그에서 유일하게 3점대를 기록 중이고, 경기당 평균 실점도 4.32점으로 리그 최소다. 경기당 득점 4.62점으로 꼴찌에서 세 번째 수준인 허약한 공격에도, 지키는 야구를 앞세워 정규시즌 4위까지 치고 올라왔고 어느새 3위 LG 트윈스를 1.5경기 차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특히 두산 마운드의 강점은 선발투수진이다. 평균자책 1위 최민석(2.64)과 2위 곽빈(2.66)을 필두로, '장외 평균자책 1위' 웨스 벤자민(2.61)과 지난해 에이스였던 잭 로그(5승 6패, 평균자책 4.02)까지 선발 4인조가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많은 이닝을 소화해주는 덕이다.
곽빈은 퀄리티스타트 13회로 최다 공동 1위, 최민석은 12회로 공동 3위, 벤자민도 10회로 공동 8위다. 과거 강력한 선발 4인조를 앞세워 우승을 거머쥐었던 '판타스틱 4'가 떠오르는 '뉴 판타스틱 4'라 불러도 크게 민망하진 않을 법하다. 다만 그때는 외국인 투수들이 1, 2선발이었다면 지금은 젊은 국내 우완 둘이 1, 2선발이라는 점이 차이다.
두산 '뉴 판타스틱 4' 멤버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리그에서 컷패스트볼(커터)을 가장 많이 던지는 투수들이라는 사실이다.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벤자민의 커터 비율이 29%로 1위, 최민석이 26.1%로 2위다. 곽빈과 잭 로그도 나란히 18.4%로 전체 11위와 12위에 올라 있다. 네 투수의 영향으로 두산 투수진은 올 시즌 커터 구사율 11.6%로 리그 최고를 기록 중이다.
14년 만에 최고치...KBO리그 휩쓰는 '커터 열풍'
두산 최민석이 지난 9일 고척 키움전에 안타를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 두산
이는 대표적인 커터 투수 잭 후랭코프와 조시 린드블럼이 뛰던 2019년(9.1%)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9구단 체제가 출범한 2013년 이후 최근 14년간 단일 팀이 기록한 최고치이기도 하다. 스탯티즈가 이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리그 전체 커터 구사율이 1.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2년 이전 데이터가 없다는 점과 슬라이더·커터 구분의 회색지대를 감안해도 올해 두산이 역대 어느 팀보다 높은 비율로 커터를 구사하는 팀이라고 봐야 한다.
흥미로운 건 두산 외에 다른 구단들도 올해 유독 높은 커터 구사율을 기록 중이란 점이다. 아리엘 후라도와 최원태를 보유한 삼성 라이온즈는 커터 비율 7.9%로 올 시즌 리그 2위, 2013년 이후 팀 기록으로는 5위에 해당한다. 외국인 투수들이 커터를 즐겨 쓰는 롯데 자이언츠도 7.5%로 같은 기간 여섯 번째로 많이 구사했다. KT 위즈가 7.3%로 8위, NC 다이노스가 5.8%로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14년 동안 커터를 가장 많이 던진 상위 10개 팀 가운데 무려 5팀이 올 시즌에 몰려 있는 셈이다.
실제로 리그 전체 커터 구사율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3년 1.7%로 높지 않던 비율이 2024년 3.7%로 올랐고, 지난해에도 3.3%를 기록하더니 올해는 5.8%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찍고 있다. 물론 모수가 크지 않아 몇몇 투수의 존재에 따라 전체 통계가 요동치는 면은 있지만, 커터를 던지는 투수가 늘어나는 흐름 자체는 분명하다.
현역 시절 커터와 투심 등 변형 패스트볼을 즐겨 던졌던 김선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커터의 인기를 인정했다. 김 위원은 "최근 외국인 투수는 물론 국내 젊은 투수들 중에도 커터를 많이 던지는 흐름이 있다. 커터를 새로 익혀서 던지는 투수들도 많고, 본인은 슬라이더라고 던지는 구종이 실제로는 커터인 경우도 꽤 많다"고 설명했다.
커터 인기는 사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시작됐다. 야구 통계 매체 팬그래프에 따르면 2007년 1.9%였던 메이저리그 커터 구사율은 2013년 5.6%를 거쳐 올 시즌 7.9%까지 수직 상승했다. 이런 커터 열풍은 배럴 타구를 억제하고 약한 컨택을 유도하는 효과와 '터널링'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한몫한다. 무엇보다 슬라이더나 스위퍼와 달리 좌우 타자 가리지 않고 던질 수 있는 구종이라는 점도 커터의 장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커터를 던지는 투수들이 크게 늘어난 현상은 국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투수들이 외국인 선수로 국내에 들어오면서 수준 높은 커터를 던지는 투수가 많아졌고, 자연히 국내 투수들도 커터를 배워 던지려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국내의 경우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ABS) 도입 이후 높은 스트라이크존 공략 비율이 높아졌는데, 이 하이존을 공략하는 데 커터가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김선우 위원은 "투수에 따라선 스위퍼나 슬라이더보다 좀 더 던지기 편한 구종이 커터"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최근 유행하는 스위퍼는 기본적으로 팔각도가 낮아야 던지기 수월한 구종이다. 팔이 높은 투수가 던지면 본인의 릴리스 포인트를 잃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커터는 패스트볼과 같은 타점에서 던진다. 또 슬라이더는 손목을 돌리면서 꺾이지만, 커터는 포심처럼 던지면서 손끝을 활용해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유행 타고 국내 이식...ABS 도입도 한몫
웨스 벤자민(사진=두산)
김 위원은 두산 최민석과 곽빈을 예로 들어 커터의 효용을 설명했다. 최민석은 포심 대신 투심을 주무기로 던지는 투수다. 여기에 커터를 보조 구종으로 함께 구사한다. 포심 궤적이 똑바로 간다고 가정하면, 최민석은 좌타자 기준 바깥으로 휘는 공(투심)과 몸쪽으로 휘는 공(커터)을 모두 던지기 때문에 타자가 제대로 맞히기 쉽지 않다.
올해부터 커터를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곽빈은 강력한 포심과 함께 커터를 구사한다. 포심과 커브, 체인지업 등 삼진을 잡는 구종도 있지만 커터처럼 컨택을 유도하고 투구수를 줄이는 구종도 있어서 더 효과적인 피칭이 가능하다. 곽빈의 커터 평균 구속은 147.8km/h로 웬만한 투수의 포심 최고 구속 수준이다. 커터를 던지면서 좌타자 대응력도 좋아졌다. 지난해 좌타자 상대 OPS가 0.751이었지만 올해는 0.582로, 오히려 우타자 상대(0.616)보다 좋은 수치를 내고 있다.
투수가 커터를 잘 구사하면 빠른 카운트에 범타로 타자를 잡아낼 수 있다. 적은 투구수로 타자를 요리하면서 긴 이닝을 던지는 경기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 곽빈은 올 시즌 등판 경기 중 65%에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데뷔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을 찍고 있다. 야구 유행은 빠르게 바뀌게 마련이지만, 당분간 리그에서 커터의 인기는 쉽게 시들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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