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정치 세력 야구장 오면 어쩌나" 초긴장 속에 열린 배재고 복귀전, 불상사 없이 끝났다 [목동 현장]
배재고 선수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배재고 선수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목동]

"목동야구장에 이렇게 많은 취재진은 넥센 히어로즈 시절 이후 처음 보는 것 같다."

1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관계자의 말이다. 보통 전국대회 결승전이 열려도 서너 군데 매체만 찾아오던 목동구장에 이날은 지상파 3사와 보도채널, 종편, 일간지, 스포츠 매체까지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5·18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으로 큰 파문을 빚었던 배재고 야구부의 사태 이후 첫 경기다보니 관심이 집중된 탓이다.

배재고에게 이날 경기는 만감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지난 6월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광주제일고와의 1회전 도중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장소가 바로 이곳 목동이었다. 스포츠 공정위원회로부터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재심을 거쳐 1개월로 감경된 배재고는 공교롭게도 같은 장소에서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인천고와의 1회전으로 복귀전을 치렀다.

긴장감 감돈 목동, 전광판엔 '지역비하 OUT'배재고 응원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배재고 응원단(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배재고 선수단은 경기 시작 약 한 시간 전쯤 경기장에 도착했다. 학교 자체 징계로 직무가 정지된 권오영 감독 대신 팀에서 가장 오래 일한 이장환 코치가 임시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문제의 구호를 선창한 선수 2명은 중징계로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 구호를 따라 외친 10여 명은 경징계를 소화한 뒤 그라운드를 밟았다.

경기장 분위기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협회 관계자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 협회 관계자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단체나 세력이 오는 건 아닌가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일부 유튜버가 나타나 방송하는 모습이 눈에 띄긴 했지만, 문제될 만한 행동은 없었다. 경기전 전광판에는 '상대조롱 OUT', '지역비하 OUT', '역사조롱 OUT', '혐오표현 OUT'이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배재고의 더그아웃이 있는 3루 쪽 관중석에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배재학당 총동창회 현수막이 걸렸다.

상대 팀 인천고 계기범 감독도 "어쩌다 보니 관심이 집중된 경기가 됐다"며 이날 경기에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배재고 학부모와 동문들은 혹시라도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해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사전에 방침을 정하고 경기장을 찾았다. 그럼에도 응원석에서는 "기죽지 마", "배재고 파이팅"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고, 득점 때는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라는 교가가 울려 퍼졌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선수단은 그라운드에 모여 짧은 미팅을 한 뒤 파이팅 구호를 외쳤다. 배재고 코치진과 선수들은 관중석을 향해 일렬로 서서 모자를 벗고 허리를 90도 숙였다. 취재진과 만난 이장환 코치는 "사태 이후 지도자들도, 선수들도 반성을 많이 했다. 한 달의 징계 기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겠다"고 말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1회전서 마감한 2026년배재고 주장 고현석(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배재고 주장 고현석(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경기는 역전과 동점을 거듭하는 타격전 끝에 인천고의 8대 5로 승리로 끝났다. 3회까지는 2대 1로 앞서갔지만 4회초 강동찬에게 3점 홈런을 맞고 역전당했다. 2대 5로 끌려가던 7회말 5대 5 동점을 만드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8회초 다시 3점을 내주며 승기를 넘겨줬다.

8회에 올라온 인천고 투수 김동후는 140km/h 초반대 힘있는 속구로 2이닝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반면 배재고 3학년 좌완 에이스 김시후는 4.1이닝 4실점, 2학년 에이스 고도현은 3.2이닝 4실점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한 경기 만에 탈락한 배재고는 이로써 2026년의 모든 공식 경기 일정을 마감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주장 고현석은 신중하게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골라가며 입을 열었다. 고현석은 "저희가 많이 잘못한 만큼 정말 많이 반성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기는 것만이 저희가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져서 아쉽다. 친구들한테도 많이 미안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도 죄송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전 3학년 동료들에게 해준 말을 묻자 고현석은 "야구 오래 한 친구들에겐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후회하지 말자고 했다"고 전했다. 더그아웃 응원에 대해서도 "조심하자고 얘기했고 상대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기려고 온 거니까, 경기력이든 응원이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통해 배운 점으로는 "아직 20년도 안 산 사람이지만,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이렇게까지 커지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친구들에게도 많이 말해줬다"라고 말했다.

사과르 위해 광주를 방문했을 당시 느낌 점도 담담하게 털어놨다. 고현석은 "사과를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몰라서 최대한 진심을 보여드리려 했다. 광주제일고 교장 선생님과 선수들, 부모님들께서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다"며 "광주일고 선수들과 광주 시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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