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불멸의 4할 타자' 백인천, 영원히 잠들다...심정지 뒤 맥박 돌아왔지만 하루 만에 타계
백인천 전 감독(사진=삼성)백인천 전 감독(사진=삼성)

[더게이트]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이자 LG 트윈스 창단 첫 우승을 이끈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오전 6시 41분 별세했다. 향년 83세.

백 전 감독은 14일 오전 6시쯤 충남 천안 자택 인근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현장 의료진으로부터 사망 판단을 들은 지인과 구급 요원들은 장례 절차를 밟기 위해 평소 정기 검진을 받던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별세 소식이 언론을 통해 먼저 전해졌다.

맥박 되살아나며 이어진 사투…하루 만에 타계롯데 암흑기의 얼굴이 된 백인천 감독(사진=롯데)롯데 암흑기의 얼굴이 된 백인천 감독(사진=롯데)


병원 이동 도중 멈췄던 맥박이 미세하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별세 보도가 정정됐고 백 전 감독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응급실에서 사투를 이어갔다. 가족들은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고, 백 전 감독은 호흡기를 낀 채 하루를 버티다 15일 오전 6시 41분 숨을 거뒀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백 전 감독은 한국전쟁 때 피란길에 올라 경동중·경동고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다진 탄탄한 하체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거물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1961년 실업야구 농협에 입단한 뒤, 이듬해 자유계약으로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즈(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했다.

이후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현 세이부 라이온즈), 롯데 오리온즈(현 지바 롯데 마린스), 긴테쓰 버팔로스를 거치며 1981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다. 1975년 다이헤이요 시절에는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일본 통산 성적은 1969경기 1831안타 209홈런 212도루로 통산 200홈런-200도루를 달성했다.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고국에 돌아왔다. 당시 한국 나이 41세로 원년 최고령 선수였던 백 전 감독은 그해 타율 0.412(72경기 250타수 103안타)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세운 장타율 0.740은 2015년 NC 에릭 테임즈가 넘어서기 전까지 33년간 유지됐고, 출루율 0.502 역시 2001년 롯데 펠릭스 호세가 경신하기 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1983년 MBC를 떠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타격코치 겸 선수로 뛰다 1984시즌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1985년 청보 핀토스 타격 인스트럭터를 끝으로 한동안 야구계를 떠나 사업을 하며 야인으로 지냈다.

1990년 LG 트윈스 초대 사령탑을 맡으며 현장에 복귀한 백 전 감독은 창단 첫해 팀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5년에는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에 올랐다. 삼성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이승엽, 정경배, 최익성, 신동주 등 신예 타자들을 발굴해 타선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다만 삼성 시절 계약 기간은 두 차례 뇌출혈로 쓰러지며 채우지 못했다.

고단했던 말년과 영면백인천 전 감독(사진=삼성)백인천 전 감독(사진=삼성)


2002년 6월에는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해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했지만, 두 시즌 동안 163경기 41승 119패 3무(승률 0.256)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감독 커리어에 오점을 남겼다. 결국 2003년 8월 5일 경질되며 프로야구 현장을 완전히 떠났다.

지도자 은퇴 후에는 은퇴선수협의회 회장 등을 맡았으나 개인사는 순탄치 않았다. 세 차례 뇌졸중과 이혼, 사기 피해 등이 겹치며 고단하고 고독한 말년을 보냈다. 2021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에는 충남 천안에서 요양보호사의 간병을 받으며 투병해왔다. 여기에 마지막 떠나는 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 2층 전통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오전 8시다. 불멸의 4할 타자는 그렇게 영원한 잠에 들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