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김정수 이후 30년 만! 타이거즈에 '의리의리'한 좌완 광속구 '마무의리' 탄생하나
KIA 이의리(사진=KIA)KIA 이의리(사진=KIA)

[더게이트]

KIA 타이거즈 역사에 30년간 없었던 좌완 강속구 마무리가 등장했다. 파이어볼러 이의리가 불펜으로 보직을 바꾼 뒤 연일 위력적인 피칭으로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해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가을까치' 김정수 이후 명맥이 끊겼던 좌완 클로저의 등장이다.

이의리는 18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팀이 앞선 8회말 2사 1, 2루에 등판해 1.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3번째 세이브를 따냈다. 대타 한지윤을 상대로 강속구로 카운트를 잡고 커브로 삼진을 잡은 이의리는 9회말에도 강백호-노시환 등 강타자들을 차례로 잡고 승리를 지켰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지금의 이의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의리는 선발로 나선 전반기 10경기에서 평균자책 9.42에 그쳤다. 35.1이닝 동안 볼넷을 33개나 내줄 만큼 제구가 극심하게 흔들렸고, 패스트볼 구속도 140km/h대 중후반에 머물며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즌 도중 일본으로 단기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7월부터 불펜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7월 16일 SSG 랜더스전에서 호투를 펼쳤고 이달 11일 삼성전에서는 구자욱, 최형우, 르윈 디아즈로 이어지는 강타선을 단 8구 만에 삼자범퇴로 잡고 데뷔 첫 세이브를 따냈다. 첫 세이브 이후 16일 두산전, 18일 한화전까지 세이브를 따내며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시선도 조금씩 믿음으로 바뀌고 있다.

볼넷은 급감, 구속은 6km/h 상승KIA 이의리(사진=KIA)KIA 이의리(사진=KIA)


투구 데이터로 살펴보면 선발 이의리와 불펜 이의리는 완전히 다른 투수처럼 보인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제구다. 선발 10경기에서는 35.1이닝 동안 볼넷 33개로 9이닝당 8.4개꼴로 볼넷을 내줬다. 이닝마다 볼넷 하나씩을 헌납한 셈. 반면 불펜으로 이동한 뒤에는 10경기 12.1이닝에서 볼넷이 단 4개, 9이닝당 2.9개로 급감했다.

짧은 이닝 전력투구를 하면서 구속도 향상됐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선발 시절 148.2km/h에서 불펜 전환 뒤 153.1km/h로 4.9km/h 상승했다. 슬라이더도 135.6km/h에서 138.1km/h로 2.5km/h 빨라졌다. 4월 17일 두산전 150.2km/h였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8월 15일 두산전 158km/h, 16일 두산전 153.4km/h, 18일 한화전 153.8km/h까지 꾸준히 150km/h대 중후반을 찍고 있다.

이의리는 선발 시절 평균 57.9%였던 패스트볼 구사율을 불펜 전환 뒤 70.3%로 끌어올렸다. 반면 체인지업은 10.5%에서 3.5%로, 커브는 4.8%에서 3.5%로 줄였고 슬라이더도 26.5%에서 20.0%로 낮아졌다. 짧은 이닝을 책임지는 불펜 역할을 맡으면서 가장 강한 무기인 패스트볼 비중을 극대화하고 나머지 구종을 쳐낸 결과다. 패스트볼의 K-Loc+(로케이션 지표)가 97.5로 전 구종 중 가장 안정적인 반면 체인지업, 커브 등의 제구력은 떨어지는 점도 고려했을 법하다.

KIA는 올 시즌 내내 뒷문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KIA 역대 최다세이브 마무리 정해영이 시즌 초반 난조 속에 자리를 잃었고, 이후 셋업맨 성영탁을 마무리로 투입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정해영이 시즌 뒤 상무 입대를 앞둔 점을 감안하면 당장 다음 시즌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대안이 절실한 가운데 기적처럼 이의리가 등장했다.

30년 만의 좌완 마무리, 까치 다음은 의리?KIA 이의리(사진=KIA)KIA 이의리(사진=KIA)


이의리의 존재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역사에서도 이례적이다. 타이거즈는 해태 시절부터 우완 투수들이 주로 뒷문을 지킨 팀이다. 역대 최다 세이브 정해영(150세이브)을 비롯해 선동열(132세이브), 임창용(86세이브), 윤석민(86세이브), 한기주(71세이브), 유동훈(59세이브), 이강철(53세이브), 문경찬(34세이브) 등 굵직한 마무리들은 모두 정통파 우완이거나 잠수함 투수였다.

반면 좌완 마무리 투수는 1996년 김정수가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김정수는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난 1996년 대체 마무리 역할을 맡아 통산 32세이브 중 18세이브를 거뒀다. 그외 신동수(11세이브), 심동섭(10세이브) 외에는 타이거즈 좌완 투수 중 통산 두 자릿수 세이브를 거둔 사례조차 없다.

흥미롭게도 김정수와 이의리는 닮은 구석이 있다. 김정수는 데뷔 때부터 무시무시한 강속구로 공포감을 주는 투수였지만 제구 문제를 늘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는 놀라운 담력으로 팀 우승에 수없이 기여했다. 이의리도 입단 당시 기대치에 비해 선발로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무리를 맡으면서 잠재력이 폭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출발은 좋다. 앞으로 타이거즈 역사에 없었던 좌완 마무리로 이의리가 새로운 길을 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지금의 마무리 경험을 자산삼아 다시 선발로 돌아가 대성할 수도, 아니면 이대로 마무리로 커리어를 쌓아갈 수도 있다. 타이거즈 팬들의 심장이 다시 이의리의 피칭을 보며 뛰기 시작했다. n이 아닌 p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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