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큰일 날 텐데..." 1078일 만에 돌아온 고우석의 두근두근 복귀전, 1점차 지키고 140세이브
돌아온 고우석(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돌아온 고우석(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잠실]

익숙하지만 한동안 잊혔던 등장곡이 잠실 하늘에 크게 울려 퍼졌다. 하드록 밴드 드라우닝 풀의 '솔저스(Soldiers)'가 터져 나오자 1루 쪽 LG 트윈스 응원석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큰 환호와 비명 소리를 배경으로 등번호 19번을 단 투수가 성큼성큼 마운드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1078일 만에 KBO리그 마운드에 오른 LG 트윈스 고우석이었다.

고우석은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홈경기에서 팀이 4대 3으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약 3년 만의 복귀전에서 1점 차 세이브 상황에 등판한 고우석은 1이닝을 피안타 없이 볼넷 하나만 내주고 삼진 2개를 잡아내며 무실점, 개인 통산 140번째 세이브로 장식했다.

출발은 매끄럽지 않았다. 선두 타자 르윈 디아즈에게 던진 공 네 개가 볼이 되면서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거의 3년 만에 오른 잠실 마운드가 낯선 것은 아닐까. 1점 차 리드가 부담스러운 건 아닐까.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존이 어색한 건 아닌가. 온갖 복잡한 생각이 보는 이들의 뇌리를 스쳐갔을 법한 장면이었다.

LG 벤치가 즉각 움직였다.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대화를 나누고 내려간 뒤 고우석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대타 양우현을 상대로는 날카롭게 꺾이는 컷패스트볼만 세 개를 연달아 던져 3구 삼진을 잡아냈다. 이어 류지혁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강민호를 2루수 뜬공으로 잡아내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삼성 타자들은 고우석의 공을 배트에 제대로 맞히지 못했고, 헛스윙한 뒤 쓰러지듯 밸런스를 잃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위력적인 공을 뿌린 고우석이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고우석은 "결과가 잘 나와 다행이다. 밸런스를 잡으려 애썼지만 첫 타자를 상대할 때는 영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며 "앞 타자에게 볼 4개를 연속으로 던져서 다음 타자가 적극적으로 치지 않을 것 같았다. 포수에게 가운데로 앉아달라고 요구했는데 마침 마운드에 올라온 코치님과 구종을 바꾸자는 생각이 맞아떨어졌다"고 돌아봤다.

"방출 직전 등판에서 투구 감각 살아나는 것 느껴"마무리로 등판한 고우석(사진=LG)마무리로 등판한 고우석(사진=LG)

지난 2024년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맺고 미국 무대에 진출한 고우석은 빅리그 4경기를 경험한 뒤 지난달 29일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DFA 처리됐다. 다른 빅리그 구단의 영입 제안이 없자 FA 자격을 얻어 친정팀 LG로 돌아오는 쪽을 택했다. 지난 1일 귀국한 고우석은 2일 LG와 계약 기간 1년, 연봉 5억원에 도장을 찍었고 3일자로 1군 엔트리에 등록했다.

고우석은 "미국에서 방출되기 직전 주간에 등판한 두 경기에서 투구 감각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개인 피칭 코치와 상의하던 중 방출 통보를 받았다"며 "(방출은) 미국에서는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찾았던 투구 밸런스가 오늘 경기 중간중간 나오면서 덕을 봤다"고 설명했다.

등록 첫날인 3일 고우석은 잠실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을 지켜보다가 일찍 귀가해 휴식을 취했다. 아직 시차 적응을 마치지 못한 고우석을 위한 염경엽 감독의 배려였다. 이날 경기에서 LG는 2년 차 신예 박시원의 5이닝 무실점 호투와 마무리 손주영의 3연투 투혼에 힘입어 두산을 1대 0으로 꺾고 3연전을 쓸어 담았다.

고우석은 "어제 이기면 팀 전체의 기세가 크게 오를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흘러갔다. 신인 투수가 어려운 경기를 잡아내고 선수들이 뭉치는 모습을 보면서 내일은 내가 마운드에 나가 막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3년 만의 복귀전을 마무리 투수로 장식했지만, 고우석은 "이제 뒷문은 손주영이 닫아야 한다"면서 겸허한 태도를 보였다. LG 코칭스태프 역시 올 시즌 마무리 보직은 계속 손주영에게 맡긴다는 구상이다. 고우석은 "내 몫은 (보직에 상관 없이)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팬들의 환호 속에 마운드에 섰던 순간의 솔직한 마음도 털어놨다. 고우석은 "점수 차가 넉넉했다면 환호성을 온전히 즐겼겠지만, 1점 차라 '여기서 지면 정말 큰일 난다'는 걱정이 앞서더라"며 웃었다. 이어 "내가 1점을 잘 지켰다기보다 앞선 이닝에서 경기를 잘 풀어준 야수들이 있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40세이브 기록에 대해서는 "원래 기록을 생각하며 야구를 해오지 않았다. 기록을 보면 기분은 좋지만 딱 그 정도인 것 같다"며 "잘 쌓아가고 있구나 하는 정도지, 오승환 선배처럼 많은 세이브를 기록할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기록 이외의 무언가로 팬들에게 기억에 남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