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 오늘 꼭 이겨줘"...대표팀 갈 때마다 손 잡아준 장훈, 국민감독이 떠올린 50년 인연
2012년 한일 레전드매치를 위해 방한했을 당시 장훈(왼쪽). 가운데는 김성근 전 감독, 오른쪽이 김인식 전 감독이다(사진=KIA)2012년 한일 레전드매치를 위해 방한했을 당시 장훈(왼쪽). 가운데는 김성근 전 감독, 오른쪽이 김인식 전 감독이다(사진=KIA)

[더게이트]

"늘 한국이 자기 모국이란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일본을 찾을 때마다 손을 꼭 잡고 격려해주시곤 했다."

한일 야구계의 큰 별이 졌다. '안타 제조기'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선생이 지난 9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장훈은 일본프로야구의 영원한 전설이다.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해 신인왕을 차지한 뒤, 23시즌 동안 2752경기에 출전해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타율 0.319를 남겼다. 30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이다. 타격왕 7회, 출루율왕 9회, 최다안타 3회, 베스트나인 16회를 차지했고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은퇴 뒤에는 야구 해설가로 TBS '선데이모닝' 등에서 활동했다.

고인과 생전 오랜 인연으로 교류해온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도 애도의 뜻을 전했다. 김 전 감독은 11일 더게이트와 통화에서 "장훈 선배는 늘 한국이 자기 모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며 "일본 원정 때마다 야구장에 찾아와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곤 했다"고 돌아봤다.

중학생 김인식이 만난 '재일동포 야구 영웅'프로야구 출범 초기 OB 베어스를 방문한 장훈(사진=두산)프로야구 출범 초기 OB 베어스를 방문한 장훈(사진=두산)

두 사람의 인연은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감독은 "장훈 선배를 처음 본 건 중학생 때다. 2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올 때마다 야구교실을 열곤 했는데, 학생으로서 찾아가 말씀을 듣곤 했다"고 말했다. 장훈은 도에이 입단 2년차이던 1960년 12월 30일, 대한연식야구협회 초청으로 어머니와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약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며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타격 강습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만나 친분을 쌓은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90년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시절이었다. 김 전 감독은 "정식으로 인사하고 알고 지낸 건 쌍방울 감독 시절부터다. 그때부터 자주 연락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왕래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국가대표 감독을 자주 맡아 '국민감독' 호칭을 얻은 김 전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때마다 장훈은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일본에 가면 대표팀 훈련지에 찾아와서 식사도 하고 술자리도 가졌다"며 "'김 감독, 오늘 꼭 이겨줘. 우리 술 한잔합시다'라며 격려해주셔서 고마웠다"고 떠올렸다.

도쿄돔에서 열린 1991년, 1995년 한일 슈퍼게임에서도 장훈은 대표팀을 찾아왔다. 이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전과 2009년 WBC 아시아 라운드 역시 도쿄돔에서 열려 한국 대표팀이 일본 원정에 나설 때마다 마주할 자리가 마련됐다. 생전 인터뷰에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털어놓았던 장훈에게 한국은 그만큼 특별한 곳이었다.

김 전 감독은 장훈의 성격에 대해 "실제 성격도 화끈하고 호탕하셨다"면서 "일본 방송에서도 아침마다 쓴소리를 많이 하지 않았나. 방송에서 보는 모습 그대로 남자다운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장훈은 TBS 방송에서 크게 호통치는 모습으로 야구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직설적인 화법이 때로는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엄격한 야구관을 늘 소신 있게 고수했다.

장훈의 한국 사랑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초기의 물심양면 지원으로도 이어졌다. 김 전 감독은 "한국 야구가 태동할 때부터 많은 도움을 줬고 대표팀도 아낌없이 지원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재일동포 선수들을 모아서 팀을 꾸려 오기도 하고, 여럿이 한국을 방문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장훈 선배가 아니었다면 그 선수들이 다함께 한국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훈은 1982년 KBO리그 출범 이전부터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 고 이호헌 전 KBO 사무차장과 머리를 맞대고 구단 수와 운영 체계를 정비하며 리그의 기틀을 다졌다. 일본 프로야구 심판을 초빙해 한국 심판진 교육을 주선하기도 했다. 도에이 시절 함께 뛴 백인천을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에게 천거해 일본 프로야구 입단을 도운 인물도 장훈이었다. 백인천은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KBO리그 원년 4할 타자로 족적을 남겼다.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와의 인연도 두터웠다. 이 코치가 일본 무대 적응에 애를 먹던 시절 곁에서 많은 조언과 격려를 보냈다. 장훈의 별세 소식에 이 코치는 SNS를 통해 "일본에서 뛰던 시절, 강한 마음을 가지라던 선배님의 격려와 후배를 아껴주신 따뜻함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남겼다.

잠실에서의 마지막 만남2018년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을 당시 기념사진. 사진 아래쪽이 김인식 전 감독과 장훈 선생이다. 한영관 전 리틀야구연맹 회장과 탤런트 정한용 등도 함께 자리했다(사진=김인식 전 감독 제공)2018년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을 당시 기념사진. 사진 아래쪽이 김인식 전 감독과 장훈 선생이다. 한영관 전 리틀야구연맹 회장과 탤런트 정한용 등도 함께 자리했다(사진=김인식 전 감독 제공)

김 전 감독과 장훈의 마지막 만남은 2018년 5월이었다. 김 전 감독은 "그날 연락이 닿아 '한국에 왔는데 만나자'고 하더라. 다른 지인들과 함께 잠실에서 만나고 사진도 찍었다"며 "그날 자리에선 가을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또 보자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는 한국을 찾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몇 년간 장훈과 한국, 한국 야구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2024년 12월 우익매체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는 일본으로 귀화한 사실을 스스로 공개해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그는 "한때 한국 정부가 재일 한국인을 홀대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20년 넘게 KBO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으며 프로리그 기틀을 닦았지만, 한국시리즈나 올스타전 같은 공식 행사에 단 한 번도 초청받지 못했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로 한국 야구에 서운함을 느꼈는지는 야구인들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한다.

건강 악화 소식은 건너 들었다. 김 전 감독은 "몸이 편치 않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는데,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백인천에 이어 어우홍 전 대표팀 감독, 장훈까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김 전 감독은 "요즘 야구계 원로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 KBO 원로 자문위원단에 나가봐도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며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씁쓸해했다.

장훈의 별세 소식에 일본은 야구계는 물론 온 열도가 추모 물결로 들썩이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야구 팬층이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세대로 재편된 가운데, 야구 원로들의 이름이 낯설어진 탓이다. 김 전 감독은 "이제 장훈 선배를 기억하는 사람도 몇 명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말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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