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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딸의 마운드 방문에 오열하는 벌랜더(사진=MLB.com)[더게이트]
바늘로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던 43세 노장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통산 266승, 사이영상 세 차례, 21년 동안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마운드를 지배한 전설도 어린 딸의 포옹 앞에서는 무너져 내렸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영원한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는 27일(한국시각)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이날 경기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벌랜더의 현역 마지막 등판이었다.
감동적인 장면이 6회초에 펼쳐졌다. 5회까지 2실점으로 잘 던진 벌랜더가 6회 선두타자 브랜든 로우를 포수 뜬공으로 처리한 직후였다. 투구수는 91개. 이때 디트로이트의 A.J. 힌치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걸어 나오면서 1루 관중석 쪽을 가리켰다.
더그아웃 옆 문이 열리자 아버지의 이름과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은 일곱 살 딸 제너비브가 뛰어나왔다. 아이는 마운드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힌치 감독이 벌랜더의 아내이자 모델인 케이트 업튼과 며칠 전부터 짜놓은 은퇴 선물이었다.
처음에는 미소를 지으며 딸을 바라보던 벌랜더의 어깨가 점점 가늘게 떨렸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허리를 굽혀 딸을 껴안은 벌랜더는 온몸을 떨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코메리카파크를 가득 채운 관중은 기립 박수와 함께 벌랜더의 이니셜인 "J-V!"를 연호했다. 동료 선수들도 마운드로 몰려나와 전설의 마지막 퇴장을 축하했다.
벌랜더는 딸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더그아웃 앞 워닝트랙에서는 아내 업튼과 한 살배기 아들 벨라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온 가족과 포옹을 나눈 벌랜더는 모자를 벗어 홈 관중에게 인사한 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구원 투수 타일러 킨리가 마운드에 오르기까지 경기는 약 5분 30초 동안 멈춰 섰다.
부상 딛고 던진 91구…'벌괴신'의 마지막 역투
관중들의 기립 박수(사진=MLB.com)이날 경기는 현역 시절 내내 벌랜더를 정의한 '의지'와 '투혼'의 집약체였다. 올 시즌 벌랜더는 엉덩이 통증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전하며 1경기 등판에 그쳤다. 시즌 중에 은퇴 의사를 공식화한 벌랜더는 팬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재활했고 이날 마운드에 섰다.
벌랜더는 최고 95마일(약 153km/h) 속구에 여전히 예리한 변화구를 섞어 피츠버그 타선을 요리했다. 1회초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정리했고, 2회에는 2005년 자신의 데뷔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스무 살 신인 코너 그리핀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실점하지 않았다.
4회 로에게 솔로 홈런, 5회 닉 곤잘레스에게 1점 홈런을 맞았지만 버텨냈다. 5회 2사 1, 2루 위기에서는 라이언 오헌의 우전 안타 때 잭 맥킨스트리의 환상적인 3루 송구로 선행 주자를 잡아내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6회 교체되기까지 5.1이닝 5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 91구를 던진 혼신의 역투였다.
이로써 벌랜더는 빅리그 통산 557선발 266승 159패, 평균자책 3.33, 통산 탈삼진 3560개(역대 8위)로 위대한 커리어를 마감했다. 벌랜더의 266승은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후 투수 가운데 최다승 기록이다.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 사이영상을 모두 품에 안은 역대 단 두 명 중 한 명이자 세 차례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전설도 남겼다. 300승 고지를 밟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벌랜더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감독이 교체하러 올라오기 전까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때 단 한 가지를 떠올린다면, 마운드에 설 때마다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던졌다는 점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딸이 마운드에 올라온 순간엔 "바위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는 소감도 전했다.
정든 야구장을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소회도 털어놨다. 벌랜더는 "야구장으로 출근할 때 딸을 보며 분노가 아닌 사랑으로 동기부여를 얻는 법을 배웠고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며 "이제는 가족과 함께 잃어버린 시간을 채워나갈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날 디트로이트는 9회말 터진 에두아르도 발렌시아의 끝내기 투런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해 4대 3,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뒀다. 팀의 승리와 함께 전설의 21년 여정도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투수, 벌랜더의 21년 커리어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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