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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빠지는 줄 알았는데... 머리카락 끝 갈라지면 내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

스포츠춘추
경기후 취재진과 만난 함덕주(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더게이트=수원]
마음만은 유영찬과 함께였다.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마무리 투수 유영찬의 이니셜과 등번호를 모자에 새긴 LG 트윈스 좌완 함덕주가 팀의 한 점 차 승리를 지켜냈다.
함덕주는 30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전 9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2023년 7월 27일 수원 KT전 이후 무려 1008일 만에 챙긴 세이브다. LG는 6대 5 재역전승을 거두며 최근 3연패 사슬을 끊어냈고, KT전 시즌 4연패 뒤 소중한 첫 승을 올렸다.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4연속 끝내기 패배 위기에서도 가까스로 탈출했다.
함덕주의 전력투구(사진=LG)
"어려운 상황에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이날 LG는 후반 불펜 운영에 큰 고민을 안고 경기를 시작했다. 마무리 유영찬이 팔꿈치 수술로 전력을 이탈한 가운데, 앞선 2경기에서 필승조 장현식·김진성·우강훈·김영우를 이틀 연속 투입하고도 연장 끝내기 패배를 당한 터였다. 3연투를 금기시하는 LG 투수 운영 원칙상 이날 필승조 4명은 등판할 수 없었다.
함덕주도 경기 전 이런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다. 세이브 상황에서 나갈 투수가 사실상 자신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함덕주는 "필승조 동료들이 쉬는 날이고 불펜에 어린 투수들이 많아 어려운 상황이 오면 내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게 좋은 기회로 다가와 운 좋게 잘 막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출발은 불안했다. 선두타자 최원준과 10구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줬고, 김현수의 빗맞은 땅볼을 유격수 오지환이 잡았다가 놓치면서 무사 1, 2루. 타석엔 전날 끝내기 안타를 때린 장성우가 들어섰다. 지난 2경기 역전패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흔들리던 함덕주를 붙잡은 건 포수 박동원의 한마디였다. 마운드로 올라온 박동원은 "넌 안 쫄잖아, 자신 있게 던져라"며 짧은 응원을 건넸다. 함덕주는 "동원이 형이 공이 좋다고 해준 말이 큰 힘이 됐다"며 "그 믿음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안정을 찾은 함덕주는 장성우와 샘 힐리어드를 연달아 인필드 플라이로 잡아내며 순식간에 아웃카운트 두 개를 채웠다. 이어 김상수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경기를 끝냈다. 살얼음판 리드를 지킨 터프 세이브였다. 함덕주는 "잘 던졌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다"며 "내가 결과를 내기보다 타자가 치게 하려 했던 게 주효했다"고 겸손해했다.
유영찬의 등번호와 이니셜을 써넣은 모자(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3년 만에 거둔 세이브
함덕주에게 2026년은 중요한 해다.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개막 전 수술대에 오르며 시즌을 망친 아픔을 씻고, 3년 만에 처음으로 팀원들과 나란히 전지훈련을 건강하게 소화했다. 2024년 FA 계약 당시 포함된 '3+1년 옵트아웃' 조항에 따라 올해 성적은 시즌 뒤 계약과도 직결된다.
4월 초 한 차례 고비도 있었지만 함덕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함덕주는 "볼넷으로 무너진 게 아니라 맞아서 점수를 준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며 "던질 수 있는 한 열심히 던지고 결과는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구속 욕심도 내려놨다. 함덕주는 "구속에 욕심을 내면 제구가 흔들리더라. 오히려 구속이 잘 나올 때 신나서 던지다 맞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대신 자신의 밸런스와 타이밍에서 던지는 속구와 변화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타자의 약점을 파악하고 장기인 변화구로 승부하는 것, 가장 잘하는 야구로 회귀한 셈이다
유영찬의 부재로 LG 마무리 자리는 여전히 오디션 중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미국 마이너리그에 있는 고우석의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우석에게 연락해 봤느냐는 질문에 함덕주는 "연락은 계속 하지만 그런 얘기는 안 했다"며 "원래도 계속 연락은 주고받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빅리그 데뷔를 목표로 도전 중인 후배에게 자칫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색이었다.
과거 두산 시절 3년간 마무리 경험이 있는 함덕주는 이날로 통산 60세이브를 올렸다. 마무리 욕심은 없을까. 함덕주는 고개를 저으며 "예전엔 좋은 자리에 들어가고 싶어서 욕심도 냈지만, 그러다 보니까 그 욕심에 압박이 생겼다"면서 "그냥 던지라면 던지고, 나가라면 나간다. 물론 상황은 생각하겠지만, 최대한 그런 압박을 안 받으려고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불펜 위기 속에서도 함덕주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봤다. 연패 기간 고전했던 불펜 동료들을 향해 "다들 힘들어했고 더 잘하려 준비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해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결과가) 안 좋았던 선수들이 훈련 과정에서 더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 팀이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함덕주의 모자에 새겨진 글씨 'YC 54'가 눈에 들어왔다. 부상으로 빠진 유영찬의 이니셜과 등번호다. 함덕주는 "누가 쓰자고 했다기보단, 한 명이 쓰니까 다들 따라 쓰더라"면서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서 그렇게 한 것 같다"고 했다. 동료를 생각하고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는 한, LG 불펜이 제 궤도에 올라서는 일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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