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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역사에 남을 코미디 장면. 트럼프의 평화상 수상(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더게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아부하려고 급조했다는 의심을 샀던 국제축구연맹(FIFA) 평화상이 1년도 안 돼 폐지될 위기다. FIFA 안팎에서 폐지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폐지가 확정되면 트럼프는 이 상의 초대이자 마지막 수상자로 남는다.
FIFA는 16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평의회에서 FIFA 평화상의 존폐를 공식 안건으로 올렸다. 상의 존립 필요성과 선정 절차 전반을 축구사회책임위원회에 넘겨 재검토한 뒤, 오는 12월 평의회에서 최종 결론을 짓기로 했다. 매년 시상하겠다며 요란하게 출발한 상이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수상자 하나만 배출한 뒤 존재 가치를 심사받는 처지가 됐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연말. FIFA는 11월 5일 'FIFA 평화상-축구는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를 신설했다. 분열된 세상에서 평화에 헌신한 인물을 매년 기린다는 명분이었다. 인판티노 회장은 당시 "갈등을 끝내고 평화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이들의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인 12월 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첫 수상자가 공개됐다. 주인공은 세계에서 평화와 가장 반대편에 선 인물인 트럼프였다. 인판티노 회장은 트럼프에게 황금빛 트로피와 메달을 직접 전달했다. 평소 노벨평화상에 어린아이처럼 집착하던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려 맞춤형 상을 만들어 바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상은 태생부터 규정과 상식을 벗어난 귀태에 속했다. FIFA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평의회는 수상자 선정에 대한 사전 승인권조차 행사하지 못했다. 심사위원단 구성도, 경쟁 후보도, 평가 기준도 철저히 가려졌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6월 "시상 과정에 관여한 FIFA 직원은 10명도 되지 않았고, 평의회 위원들조차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수상 사실을 알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인판티노 회장은 시상식에서 "당신은 첫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며 "나와 전 세계 축구계의 지지를 믿어도 좋다"고 추켜세웠다. 200여 회원국을 대표하는 축구계 수장이 제멋대로 미국 대통령에게 정치적 지지를 공언한 셈이다.
명분은 석 달도 못 가 무색해졌다. 자칭 평화상 수상자 트럼프는 올해 2월 28일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양국 간 무력 충돌은 교전과 협상을 거듭하며 10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전세계 경제와 평화는 위기로 내몰렸다.
"이런 상 왜 만들었나"…12월 운명의 날연맹 내부에서도 FIFA 평화상이 정당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데비 휴이트 잉글랜드축구협회 회장 겸 FIFA 부회장은 15일 "애초에 이런 상이 왜 있어야 했는지, 어떤 절차로 결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쏟아졌다"며 "사회책임위원회에서 이 문제들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평의회 위원들 사이에서 상의 완전 폐지나 정치인 원천 배제 요구가 거세다고 보도했다. FIFA가 특정 정치인과 밀착하면서 국제기구로서의 중립성을 스스로 팽개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기 수상자 선정 결과에 따라 자칫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평화상의 명운은 하비에르 사네티가 부위원장으로 있는 22인 축구사회책임위원회가 쥐었다. 상을 완전히 없애거나, 정치인을 빼고 축구를 통해 사회에 공헌한 체육계 인사로 대상을 한정하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다. 가디언은 한 평의회 위원을 인용해 축구인 대상으로 상을 개편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고 전했다.
평화상 파문은 인판티노 회장의 독재적 FIFA 운영 논란과도 맞물려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이번 평의회에서 월드컵 사업 지분을 민간 투자자에게 넘기려던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 구상을 회원국 반발에 부딪혀 백지화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유럽축구연맹(UEFA)은 관련 문건 전면 공개를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평화상 역시 정식 절차와 정치적 중립 의무를 무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FIFA 정관 제4조 2항은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페어스퀘어와 노르웨이축구협회가 윤리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하며 반발한 이유다.
FIFA 평화상의 존폐는 오는 12월 16일 카타르 도하 평의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폐지안이 통과되면 1년 만에 이 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규정을 고쳐 축구인을 위한 상으로 탈바꿈하더라도 트럼프가 초대 수상자였다는 꼬리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가 있는 법이다. 이 상의 수상자나 시상자를 가리켜서 하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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