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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인권 성평등 정책 후퇴가 스포츠계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IOC의 인권 성평등 전담 상설위원회 폐지 소식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더게이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권과 성평등을 전담하던 상설 위원회를 폐지한다. 앞으로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 실무그룹을 꾸려 그때그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이지만, 올림픽의 핵심 가치인 인권과 평등을 다루는 상설 조직을 없앤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IOC는 17일(한국시간) 기존 31개 위원회 가운데 12개를 폐지하고 19개만 남기는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성평등·다양성·포용성 위원회'와 'IOC 인권 자문위원회'가 폐지 대상에 포함됐다. 지속가능성·유산, 올림픽 교육, 기술 혁신 등을 담당하던 위원회도 사라진다.
이번 개편은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조직 혁신 계획의 하나다. IOC는 15개월간의 검토와 협의 끝에 상설 위원회보다 특정 과제를 다루는 실무그룹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올해 2월부터 일부 위원회의 활동을 중단하고 새로운 운영 방식을 검토해 왔다.
개편 이후에도 IOC 내부의 인권 및 성평등 관련 실무 부서는 유지된다. 다만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책을 검토하고 자문하던 상설 위원회는 사라진다. 관련 현안이 발생하면 전문가들로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과제가 끝나면 해산하는 방식이다.
2022년 인권 강화 약속했는데…4년 만에 상설 자문기구 폐지이번 결정은 IOC가 4년 전 내걸었던 인권 보호 강화 방침과 대조된다. IOC는 2022년 9월 '인권 전략 프레임워크'를 승인하고 올림픽 운영과 의사결정에 국제 인권 기준을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2018년 설립된 인권 자문위원회를 개편해 새로운 위원 9명의 구성을 발표했다. 품질레 음람보응쿠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IOC는 인권 자문위원회를 인권 정책 이행의 핵심 기구로 소개했다. 위원회는 IOC 위원장과 집행위원회에 인권 관련 정책을 권고하고, 올림픽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 위험을 검토하는 역할을 맡았다. 외부 독립 전문가들이 참여해 IOC의 인권 전략 이행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주요 임무였다.
IOC가 인권 전략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지 4년 만에 상설 자문 체계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현안별로 구성되는 임시 조직이 외부 전문가의 독립적인 자문과 지속적인 정책 점검 기능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인권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뿐 아니라 장기적인 위험 요소를 꾸준히 살펴보는 기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은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 체제에서 추진한 여성 선수 출전 자격 정책과 맞물려 논란을 키울 수 있다.
IOC는 지난 3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여성부 출전 자격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여성부 출전 선수에게 남성의 성 발달과 관련된 SRY 유전자 검사를 원칙적으로 한 차례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부 출전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일부 성 발달 차이(DSD)가 있는 선수들도 영향을 받는다. IOC는 여성 스포츠의 공정성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성평등과 인권이 직결된 규정을 검토하면서 기존 전담 위원회가 아닌 별도의 전문가 실무그룹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미국 AP통신에 따르면 IOC는 여성부 출전 자격 정책을 검토한 전문가 그룹의 구성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상설 위원회까지 폐지하기로 하면서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둘러싼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IOC의 불투명한 정책 결정 방식을 비판해 왔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이 참여하는 스포츠인권연대는 2025년 9월 여성부 출전 자격을 검토하기 위해 구성된 실무그룹의 명단과 활동 계획이 공개되지 않는 점을 문제 삼았다.
당시 스티브 콕번 국제앰네스티 기업·인권 책임자는 "안전과 평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비밀리에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들은 여성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할 때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검토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3월 유전자 검사 의무화 규정이 발표됐을 때도 반발이 이어졌다. 마리나 페라리 프랑스 체육장관은 해당 조치를 "후퇴"라고 비판했다. 여성 선수만 검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 평등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윤리·재정 위원회는 유지…인권·성평등은 임시 조직으로IOC는 이번 조직 개편에서도 선수위원회, 윤리위원회, 재정위원회, 법률위원회 등은 유지하기로 했다. 미래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대회 준비를 담당하는 위원회도 남는다. 반면 인권과 성평등, 지속가능성 등을 담당하던 상설 위원회는 폐지한다.
기존 위원회는 최대 3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스위스 로잔에서 매년 정기회의를 열었다. 12개 위원회가 사라지면 회의와 조직 운영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미국 AP통신 역시 이번 개편을 조직 간소화와 비용 절감 조치로 설명했다.
IOC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개편의 핵심 명분은 비용 절감보다 효율성과 유연성이다. IOC는 발표문에서 "이번 전환은 주제별 전문성을 활용하는 데 더 큰 유연성을 제공하고, 목적에 집중한 협력을 통해 구체적인 기회와 과제에 대응하는 IOC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설 위원회와 임시 실무그룹 사이에는 역할의 차이가 있다. 상설 위원회는 특정 사건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정책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장기적인 위험을 점검할 수 있다. 반면 임시 실무그룹은 IOC가 특정 사안을 과제로 선정했을 때 구성된다. 어떤 문제를 다룰지, 누구를 전문가로 참여시킬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IOC 집행부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인권은 개별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다뤄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선수의 권리와 안전, 차별 방지, 표현의 자유 등은 올림픽 개최와 운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과제다. IOC가 인권 자문위원회를 설립하고 외부 독립 전문가들을 참여시켰던 것도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IOC는 2022년 인권 전략을 발표하면서 평등과 차별 금지, 안전과 복지, 노동권, 표현의 자유, 사생활 보호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인권과 성평등을 전담하던 상설 위원회는 폐지 대상에 올랐다. IOC는 앞으로도 관련 업무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인권 현안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고 임시 실무그룹의 구성과 권고 내용을 얼마나 공개할지에 대해서는 이번 발표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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