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잡을까, 더 기다릴까…MLB 직장폐쇄 임박에 KBO 구단들, 외국인 선수 계약 '딜레마'
외국인 선수 계약을 둘러싼 눈치게임이 시작된다.외국인 선수 계약을 둘러싼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더게이트]

지금 바로 외국인 선수와 계약하자니 12월에 더 좋은 선수가 나올 것 같다. 기다리자니 그나마 괜찮은 선수마저 놓칠 것 같다. 큰 세일을 코앞에 두고 장바구니 결제 버튼 앞에서 망설이는 소비자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직장폐쇄 가능성이 커지면서 KBO리그 구단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메이저리그는 29일(한국시간) 밀워키 브루어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2026시즌의 막을 내렸다. 월드시리즈 종료와 함께 스토브리그 문도 열렸다. 닷새 뒤부터는 자유계약선수(FA)들이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FA 시장 한가운데 커다란 시한폭탄이 하나 놓여 있다. 현지 시간으로 12월 1일 만료되는 현행 노사단체협약(CBA)이다.

쟁점은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이다. 구단주들은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선수노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틴다. 양쪽의 간극이 워낙 커서 2021년 이후 5년 만에 직장폐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직장폐쇄가 시작되면 FA 계약도, 트레이드도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메이저리그 시장에 셔터가 내려가는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현지에선 이 시한폭탄이 오히려 11월 FA 시장을 뜨겁게 달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셔터가 내려가고 제도가 바뀌기 전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할 이유가 구단에도 선수에게도 충분해서다. 5년 전에도 그랬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는 직장폐쇄 직전 코리 시거와 마커스 세미언에게 총액 5억 달러(7250억원)를 쏟아부었다. 텍사스를 신호탄으로 다른 구단들의 대형 계약이 줄지어 이어졌다. 이번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거란 예상이 현지 매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셔터 내려가면 '한국행 틈새' 열린다SSG가 아빌라와 재계약했다(사진=SSG)SSG가 아빌라와 재계약했다(사진=SSG)

태평양 건너 노사분규는 KBO리그에도 마냥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다. 한국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를 찾을 때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곳이 미국 시장이고, 그중에서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내리거나 빅리그 진입을 노리는 선수들이 주요 영입 대상이기 때문. 미국 구단들이 이들과 어떤 계약을 맺느냐에 따라 한국 구단들의 장바구니 목록이 달라진다.

일단 직장폐쇄가 시작되면 메이저리그 구단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는 사실상 데려오기 어려워진다. 평소에는 선수와 계약에 합의한 뒤 원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주거나, 방출된 선수와 계약하면 됐지만 직장폐쇄 기간에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선수 사이의 거래가 중단된다. 이때 해외 구단과 계약할 수 있는 건 소속팀 없는 FA뿐이다.

한국 구단들이 파고들 틈새가 바로 여기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원하는 선수들이 직장폐쇄에 발이 묶여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직장폐쇄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끝난 뒤에도 새 노사협약에 따라 시장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 구단이 좋은 조건을 내밀면 평소보다 귀가 솔깃해질 수 있다. 예년 같으면 한국행은 생각하지 않았을 선수도 설득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오래 맡아온 한 지방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 관계자는 "만약 직장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미계약 상태인 선수는 입지가 애매해질 수 있다"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끝나도 바로 취업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우리 입장에선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다른 해에 비하면 외국인 시장에 좀 더 괜찮은 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 선수 영입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구단이 나올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선수가 보인다고 덥석 계약했다가 12월 이후 더 뛰어난 선수가 시장에 나오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메이저리그 계약을 노리느라 한국 구단엔 눈길도 주지 않던 선수가 생각을 바꿀 수도 있어서다.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올 기회가 와도 먼저 계약을 끝낸 구단은 구경만 해야 한다.

물론 기다림에도 기회비용이 따른다. 만약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직장폐쇄 전에 대형 선수는 물론 중소형 선수까지 쓸어 담기 시작하면 한국 구단이 노릴 만한 선수까지 일찌감치 미국 구단과 계약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외국인 선수 계약을 미룬 채 시장을 관망하던 구단들의 선택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직장폐쇄가 아예 벌어지지 않거나 예상보다 일찍 끝나도 난감하다. 미국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상당수 선수는 한국행을 고려할 이유가 없어진다. 관심을 가졌던 선수는 이미 다른 구단과 계약했고, 시장에 나오길 기대했던 선수들은 미국에 눌러앉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더 좋은 선수를 기다리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선수마저 놓치는 리스크다.

장기전을 택했다고 마냥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21년 12월 시작된 직장폐쇄는 이듬해 3월까지 99일 동안 이어졌다. 이번에는 언제 타결될지 아무도 모른다. 5년 전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런데 KBO리그 구단들은 1월 말부터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는 만큼 그 전에 외국인 선수 구성을 끝내야 한다.

선수들도 계산기 톡톡…한국행 택했다가 빅리그 놓칠라라일리 톰슨(사진=NC)라일리 톰슨(사진=NC)

머리가 아픈 건 구단만이 아니다. 선수들도 지금 한국과 계약할지, 미국에서 좀 더 버틸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한국 구단의 손을 빨리 잡으면 내년 시즌 소속팀과 수입이 확정된다. 직장폐쇄가 길어져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일찌감치 한국행을 택한 선수가 승자가 된다. 메이저리그 보장계약을 자신할 수 없는 선수에겐 매력적인 선택지다.

반대로 한국과 계약했는데 직장폐쇄가 극적으로 벌어지지 않거나, 예상보다 일찍 끝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는 기회가 '가지 않은 길'이 되기 때문. 미국 현지 시장 상황이 잘 풀려서 비슷한 레벨의 선수들이 좋은 조건에 빅리그 계약을 맺는 상황이 펼쳐지면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남아서 계속 버티는 것도 도박이다. 직장폐쇄가 길어지면 몇 달 동안 미계약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사이 한국 구단들이 다른 선수와 계약을 끝내면 뒤늦게 한국행을 원해도 갈 곳이 없다. 메이저리그 대박을 노리다 자칫 한국이나 아시아 무대에서 받을 수 있었던 계약마저 날릴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선 이미 기량이 검증된 선수라면 일찌감치 붙잡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 16일 외국인 투수 페드로 아빌라와 최대 2년 재계약에 합의한 SSG 랜더스가 좋은 예다. 아빌라는 올 시즌 중반 대체 외국인 투수로 합류해 14경기에서 9승 2패, 평균자책 1.44를 기록한 '괴물 투수'다. SSG와 아빌라는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본격화하기 전에 재계약을 끝냈다.

NC 다이노스도 외국인 1선발 라일리 톰슨과 재계약을 고려하고 있다. 라일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NC 선발진의 기둥 노릇을 했다. 변수는 점점 커지는 미국 구단들의 관심이다. NC 관계자는 라일리를 향한 미국의 관심이 예년보다 커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재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구단에 이렇게 확실한 재계약 대상자가 있는 건 아니다. 기존 외국인 선수의 기량에 확신이 없거나 새 얼굴을 찾아야 하는 구단은 계산이 훨씬 복잡하다. 지금 시장에 나온 선수와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선수를 견줘보고, 직장폐쇄가 얼마나 이어질지까지 내다보며 결단해야 한다. 예년과는 차원이 다른 불확실성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미국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1월 초 정도까지 상황을 주시하면서 잘 판단해야 한다"며 "직장폐쇄로 무조건 갈 거라고 예상은 하는데,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 현재로선 판단하기가 참 어려워서 머리가 복잡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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