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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사기당했는데, 혼자 유럽 여행 가면 패륜일까요?”

스포츠춘추
우규민(사진=KT)[더게이트=수원]
"원래는 이맘때면 휴식을 취하면서 따뜻한 방에서 야구를 봤는데...한국시리즈를 하게 되다니 신기합니다."
KT 위즈 베테랑 투수 우규민에게 올가을은 낯선 계절이다. 예년 같으면 일찍 시즌을 마치고 집에서 남들이 하는 가을야구를 지켜볼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쌀쌀한 날씨 속에 공을 던지고, 동료들과 합숙하며 한국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2003년 프로에 입단한 지 24년 만에 처음 겪는 기분 좋은 경험이다.
우규민은 30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3세 이하(U-23) 야구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내가 이 추운 날인데도 공을 던지고 있구나 싶어 설렌다"며 웃었다. 훈련 초반엔 여유가 있었지만 경기 날짜가 다가올 수록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는 우규민은 "선수들도 저도 조금씩 긴장하면서 더 집중력 있게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LG도 삼성도 KT도…24년 동안 닿지 않은 무대
우규민(사진=KT)올해로 프로 데뷔 24년을 맞는 우규민은 그동안 이상할 정도로 한국시리즈와 인연이 없었다. 우규민은 2003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19순위로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LG는 바로 전해인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그러나 우규민이 합류한 해부터 2012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었다.
우규민의 첫 가을야구는 데뷔 11년 차인 2013년에야 찾아왔다. 그해 LG는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고 우규민도 1경기에 선발 등판해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했다. 2014년에는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2016년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해 플레이오프까지 올랐다. 하지만 세 번 모두 한국시리즈까지는 가지 못했다.
2016시즌 뒤 FA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삼성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정규시즌 정상에 오른 '왕조'였지만, 우규민이 합류할 무렵엔 침체기에 들어선 뒤였다. 우규민은 삼성에서 다섯 번째 시즌인 2021년에야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고, 등판은 한 경기에 그쳤다.
2023시즌을 마친 뒤엔 FA로 KT에 둥지를 틀었다. KT는 2021년 통합우승, 2023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룬 신흥 강팀. 하지만 우규민이 합류한 2024년엔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지난해엔 정규시즌 6위로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은 마침내 올해 끝났다. KT는 정규시즌 90승을 거두며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우규민도 51경기에 나서 1승 5홀드 평균자책 3.35로 불펜에서 제 몫을 했다. 통산 21시즌 908경기 88승 89패 91세이브 124홀드 평균자책 3.85로 숫자만 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한국시리즈만은 처음이다.
"형, 시간 진짜 안 가"…처음 겪는 행복한 기다림
우규민(사진=KT)정규시즌 1위가 확정된 지난 5일, 우규민은 동료들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삼성과 두산의 경기 결과로 KT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결정되자 후배 고영표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어 화제가 됐다. 오랜 세월 쌓인 설움과 응어리가 눈녹듯이 사라지며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을 거다. 한국시리즈를 여러번 경험한 동료, 후배들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뜨거웠던 감정은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면서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신기한 건 24년도 참고 기다렸는데,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는 것. 우규민은 은퇴한 후배 오재일(해설위원)과 통화한 얘기를 들려주며 "재일이가 저더러 '형, 시간 진짜 안 가'라고 하던데 그 말이 정말 와닿았다"면서 "처음엔 기분 좋게 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다 보니 진짜 시간이 안 가더라"며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이 기다림이 싫지 않다. KT 선수단은 이번 주 화요일부터 합숙에 들어가 이틀 훈련, 하루 휴식 일정을 반복하고 있다. 함께 땀 흘리고, 다른 팀의 포스트시즌을 지켜보고, 5차전까지 가기를 기도하고,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우규민에겐 처음이다. 우규민은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훈련하고 야구 보는 게 야구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분위기도 조금씩 몸으로 느끼고 있다. 27일 상무와의 첫 평가전은 무관중으로 치렀지만, 28일부터 팬들이 관중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30일 마지막 평가전엔 7946명이 찾아 응원단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우규민은 "관중 없을 때 던졌는데 집중이 하나도 안 되더라. 우리끼리 연습경기하는 것 같고 라이브 배팅하는 느낌이었다"면서 "관중분들이 들어와 응원하니 열기가 확실히 느껴지고, 선수들도 한층 올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친정 삼성과 만나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요"
우규민(사진=KT)KT의 한국시리즈 상대는 삼성과 KIA 타이거즈의 플레이오프 승자다. 삼성은 우규민이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시즌을 뛴 옛 소속팀이다. 우규민은 "삼성이 올라와서 만나면 기분이 좀 이상할 것 같다"고 했다. 삼성에서 함께 뛴 김상수와도 같은 얘기를 나눴다. 우규민은 "우리가 우승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쪽이 우승하면 좀 배 아플 것 같다"며 웃었다.
강민호 등 옛 동료들에게 연락은 아직 아끼고 있다. 플레이오프에 집중하도록 지켜보겠다는 생각이다. 우규민은 "삼성이 올라오면 그때 카톡을 한 번 하겠다"며 "다들 나이가 있으니 안 다치고, 삼성이든 KIA든 잘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갔으면 좋겠다. 피 터지게 싸워서 연장전까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1위 팀의 솔직한 바람을 전했다.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정된 뒤 우규민에겐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오랜 세월 큰 무대와 인연이 없던 그의 사정을 아는 동료와 지인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꼭 우승해서 반지를 끼라는 응원도 많았다. 우규민은 "너무 고맙다. 진짜 오래 버텼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 순간을 그려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엔 웃음부터 나왔다. 우규민은 "매년 했던 상상"이라며 "우리 팀이 마지막에 다 같이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좋고 그냥 웃음이 난다"고 했다. 끝으로 "아직 우승한 건 아니지만 좋은 경기로 장식하고 싶다"며 "시리즈를 잘 치러서 우승만 하면 정말 금상첨화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진출만으로도 후배 고영표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던 41세 베테랑이다. 지금은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정말 우승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또 아무나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쏟을지 모른다. 이번에는 투수조 막내가 마흔한 살 대선배를 품에 안고 달래는 광경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24년을 기다린 순간인데, 뭐 그 정도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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