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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KT 위즈 안현민(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더게이트=수원]
"저는 하던 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한국시리즈처럼 큰 경기를 앞둔 베테랑 선수들은 흔히 '평소대로', '하던 대로'를 강조한다. 중요한 경기라고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부담을 갖거나 평소 안 하던 무리한 플레이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 마련. 시즌 내내 잘해온 자신들의 야구를 차분하게 펼치는 쪽이 큰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게 되어 있다.
KT 위즈의 '케릴라' 안현민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안현민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저도 당연히 그렇다"면서도 "지금 제 상태로는 하던 대로 해서는 좋은 성적이 안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를 앞둔 지난해 신인왕의 냉정한 자기 진단이다.
지난달 30일 한국시리즈 대비 세 번째 평가전을 앞두고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난 안현민은 아직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자신감 넘치고 패기 있는 모습과 달리 이날은 다소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말 한마디에도 신중함이 묻어났다.
안현민은 "나름대로 잘 준비하고 있고, 연습경기를 하면서 준비가 돼 간다는 생각은 든다"면서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되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오늘 경기를 해도 완벽하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며 "일단 가진 것으로 첫 경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리그를 뒤흔든 '케릴라', 2년 차에 찾아온 부상
1회 홈런을 치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안현민(사진=KT)안현민은 지난해 KBO리그에 혜성처럼 등장해 충격을 안겼다. 타율 0.334, 22홈런, 80타점, 출루율 0.448, 장타율 0.570은 풀타임 첫해 신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장타력과 선구안, 빠른 발에 강한 어깨까지 갖춘 안현민은 상대 팀 투수와 팬들에게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신인왕과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휩쓸었다.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국가대표 4번 타자까지 맡았다.
자연히 신인왕 수상 이듬해인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은 활약을 기대하는 시선이 많았다. 출발은 기대했던 대로였다. 개막 후 14경기에서 타율 0.365, 3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4월 15일 NC 다이노스전에서 베이스를 돌다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쳤다. 이튿날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안현민은 6월 16일에야 돌아왔다.
하필 가장 좋은 흐름을 타던 시점에 찾아온 부상이었다. 안현민은 "다치기 전부터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가 컸고, 준비도 잘 됐다고 느끼던 와중이었다"며 "시즌을 치르면서도 올해는 느낌이 좋겠다 싶었는데 그때 다쳐서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복귀를 준비할 때만 해도 자신 있었다. 몸 상태와 타격감이 올라오고 있었고, 부상 전의 성적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돌아온 1군 무대는 생각같지 않았다.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수비와 주루에서 예전만큼 마음껏 움직이기 어려웠고, 타격에서도 지난해 같은 파괴력이 나오지 않았다.
안현민은 "확실히 2군에서 경기하는 것과 1군에서 하는 건 달랐다. 생각했던 만큼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며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졌고, 그렇다고 그 기간이 끝났다고 완벽하게 회복된 것도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7월 타율 0.222로 고전한 안현민은 8월 타율 0.322, OPS 1.067로 반등을 시작, 94경기 타율 0.298, 14홈런, 63타점, 출루율 0.441, 장타율 0.506의 최종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다른 평범한 선수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적. 그러나 신인왕 시즌 이상의 활약을 기대했던 안현민으로선 이 정도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다. 안현민은 "한 시즌 자체가 되게 흐리멍덩하게 흘러갔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소득 없이 끝난 시즌은 아니다. 안현민은 복귀 후 지난해 아쉬웠던 부분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점들을 하나씩 시험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다듬어갔다. 안현민은 "기록 자체는 저도 만족하지 못한다"면서도 "내년에 대한 그림이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그래도 정리할 수 있었던 시즌"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한국시리즈도 그 과정에 포함된다. 안현민은 "내년 시즌으로 가는 길 안에 한국시리즈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안에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팀 우승에 힘을 보태는 것은 물론, 내년 시즌과 미래로 가는 과정으로도 한국시리즈를 바라보는 안현민이다.
첫 한국시리즈, 긴장보다 걱정이 크다
투수들에게 납량특집 같은 공포를 선사하는 안현민(사진=KT)한국시리즈는 물론 포스트시즌 자체가 처음이지만, 안현민에게 큰 경기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올해 3월 WBC에서 국가대표로 뛰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큰 경기 경험이 문제되진 않는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심정을 묻자 안현민은 "긴장되는 건 없다"면서도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안현민은 "지금은 모든 선수가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시기"라며 "저 역시 긴장보다는 어떤 식으로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걱정을 떨쳐낼 만큼 감이 올라오지 않아 신경 쓰고 있다"며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타격감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얻은 긴 휴식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아쉬운 시즌이었던 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타격을 가다듬을 시간은 필요했지만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고. 안현민은 "좋은 흐름으로 시즌을 마친 게 아니어서 저를 돌아보고 제 야구를 되짚는 시간은 좋았다"면서도 "근데 좀 긴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선배님들은 많이 해보셔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이라 길게 느껴진다"며 "적당한 기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경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기간이 길어지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고 털어놨다.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면서도 하루빨리 실전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다.
머리는 짧게, 생각은 비우고…'케릴라'는 언제 깨어날까
2점 홈런을 날린 안현민(사진=KT)최근 안현민은 헤어스타일도 바꿨다. 곱슬곱슬하게 펌을 한 머리를 남겨둔 채 옆머리만 짧게 밀어 멀리서 보면 마치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같은 모습이 됐다. 원래는 머리를 더 기를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고.
안현민은 "시즌이 끝났을 때 펌을 한 번 했는데 머리가 생각보다 길어서 뻗치는 게 많았다"며 "분위기 전환 같은 건 아니고, 어느 순간 머리가 짜증 나서 갑자기 잘랐다"고 말하며 웃었다. 동료들 반응을 묻자 "흔한 머리는 아니다 보니 신기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머리는 시원하게 정리했지만 머릿속은 아직 복잡하다. 안현민은 한국시리즈가 시작되면 타석에서의 집중도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현민은 "연습경기와 한국시리즈는 집중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성적도 바뀔 수 있다"며 "일단은 비우는 걸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최대한 비우고 1차전에 들어가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평가전에서 KT는 23세 이하(U-23) 한국야구 대표팀을 11대 2로 꺾었다. 3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안현민은 1회 선취점을 만드는 적시타를 때렸다. 경기 전 걱정했던 모습과 달리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방망이가 시원하게 돌아갔다. KT는 세 차례 평가전을 모두 이기며 한국시리즈를 앞둔 실전 점검을 마쳤다.
안현민도 이제 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나섰다. 말은 부자 몸조심하듯 해도 막상 만원 관중의 함성 속에 타석에 들어서면 작년 신인왕의 본능이 꿈틀대며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리그를 파괴하고 다녔던 '케릴라'가 '평소처럼' 투수들을 깨부술지 모른다. 평소엔 점잖아 보여도, 한순간에 헐크로 변하는 배너 박사처럼. 평화로울 땐 착한 시민이지만 지구가 위험해지면 각성하는 슈퍼히어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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