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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이동욱 감독과 이택근 단장(사진=롯데)[더게이트]
"롯데에 와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데이터가) 너무 잘돼 있습니다."
이택근 롯데 자이언츠 신임 단장이 구단의 데이터 분석 인프라를 직접 살펴본 뒤 내놓은 평가다. 의외의 이야기다. 그동안 야구계에서 롯데는 데이터 야구와 담을 쌓은 팀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특히 최근 3년 동안은 구단이 아무리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안팎의 불만도 적지 않았다. 야구계에서 일하는 한 데이터 분석 전문가는 "롯데의 데이터 파트가 최근 3년간 완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걸로 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단장의 눈에 비친 롯데는 달랐다. 인력과 장비는 충분했고, 인프라도 다른 구단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 단장은 지난달 31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이동욱 감독 취임식에서 "저는 선수 때부터 데이터를 좋아했고 관심도 많았다. 해설하면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부분을 많이 봤다"며 "들어와서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잘돼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데이터나 장비가 아니었다. 이미 가진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특히 구성원들과 현장 수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단장도 "결국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현장에 녹이고 공급하느냐, 선수들이 어떻게 이해하도록 하느냐인 것 같다. 그 부분은 프런트에서 고민하고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첨단 장비는 있는데…현장에서 힘 못 쓴 데이터 야구
이택근 롯데 단장(사진=롯데)사실 롯데가 데이터 야구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2019년 김종인 대표이사 시절 통계 분석 전문가를 영입하고 연구개발(R&D)팀을 꾸렸다. 성민규 단장 체제에서는 투구 동작을 초고속으로 촬영하는 엣지트로닉 카메라 등 첨단 장비를 대거 도입했다. 박준혁 단장 부임 이후에도 꾸준히 최신 장비를 들여왔다.
대표적인 장비가 '트라젝트 아크(Trajekt Arc)'다. 투수의 투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구종과 궤적을 재현하는 첨단 피칭머신이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각광받는 장비로, 롯데는 대여료가 억대에 달하는 이 장비를 국내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한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투수의 공도 비슷하게 재현해서 미리 익히고 준비할 수 있다.
다만 데이터가 실제 경기 준비와 운영에 얼마나 반영됐느냐를 따져보면, 이 면에서 롯데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한 롯데 출신 야구인은 경기 전 미팅에서 상대 분석 자료나 각종 데이터를 설명해도 코치나 선수들이 그냥 듣기만 하고 끝날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상황에 따라 변수가 끊임없이 생긴다. 전달받은 정보를 스스로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응용하지 못하면 데이터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데이터 전달 방식과 현장의 활용 방식 모두 이상적인 '데이터 야구'와는 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최근 3년 동안은 현장 수장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해 데이터 활용이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앞의 야구인은 "프런트나 코치진에서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브리핑을 해도 반응이 없고 잘 보지를 않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열심히 준비해서 설득해보려고 해도 반응이 없으면 데이터 바탕으로 뭘 해보려고 해도 의욕이 생기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롯데의 모든 지도자와 선수가 데이터에 무관심했던 건 아니다. 첨단 장비와 분석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들도 있었고, 젊은 선수들은 새 장비를 활용한 훈련에 열심이었다. '트라젝트 아크를 롯데 선수들이 거의 쓰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하자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다. 선수들이 굉장히 열심히 활용하고 시간 날 때마다 트라젝트로 훈련한다. 활용도로 치면 같은 기계를 도입한 다른 팀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데이터 야구는 많은 숫자를 모아 선수에게 건네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상대 투수나 타자의 약점을 아는 것과 그 약점을 공략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분석팀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훈련을 설계하고 선수의 역할을 정하고 경기 중 결정을 내리는 건 현장이다.
특히 감독은 선수단의 훈련 방향과 경기 운영을 결정하는 자리다. 감독이 데이터에 관심이 없으면 분석팀이 좋은 자료를 만들어도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되기 어렵다. 반대로 감독이 분석 결과를 검토하고 코치들과 의견을 나누면 데이터팀도 현장에 필요한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데이터가 만능은 아니지만, 충분한 데이터를 알고 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하는 것과 전혀 없이 감으로만 결정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데이터는 확신을"…이동욱 감독이 꺼낸 '스마트한 야구'
이동욱 감독(사진=롯데)이런 점에서 롯데의 새 단장과 감독에게 기대를 걸 만하다. 이택근 단장은 선수 시절부터 데이터에 관심이 많았고,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기록과 분석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좋은 업계 평가를 들었다. 단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구단의 데이터 분석 환경부터 살펴보고 현장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동욱 감독 역시 데이터 활용에 밝은 지도자로 꼽힌다. NC 다이노스 코치 시절부터 데이터를 선수 지도에 활용했고, 감독이 된 뒤에는 구단 데이터 분석 파트와 협력해 선수 구성과 라인업, 경기 운영에 분석 결과를 반영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2020년에는 NC를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감독은 데이터에 관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자기 생각을 설명한다. 활용 방법뿐 아니라 분석 결과를 선수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 취임식에서 이 감독이 제시한 팀의 방향도 '스마트한 야구'였다. 가장 먼저 꺼낸 말이 데이터다. "첫 번째, 데이터는 확신을, 준비는 철저함을 만든다." 이 감독은 스마트한 야구가 복잡한 숫자나 모니터 속 그래프에 갇히는 야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데이터와 분석은 선수를 구속하는 틀이 아니라 개개인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무기라는 설명이다.
이 감독은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경기 전 상대보다 한발 앞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선수단 모두가 '우리는 오늘 이길 확률이 높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정교한 전략과 데이터가 있어도 실제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건 선수들이란 점을 잊지 않았다. 볼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야구 지능,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본기와 루틴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감독이 데이터 야구의 완성을 위해 내세운 말은 '신뢰'였다. "스마트한 야구의 진짜 완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에 있다.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데이터팀이 아무리 훌륭한 분석을 내놓아도 선수단이 마음을 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동안 롯데가 데이터 활용에서 겪은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단장 혼자도, 감독 혼자도 아니다…함께 만드는 라인업
이동욱 감독과 이택근 단장(사진=롯데)이 감독은 데이터를 실제 경기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선발 라인업부터 여러 파트가 머리를 맞댄다. 이 감독은 "라인업은 저 혼자 짜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팀, 코칭스태프, 트레이닝 파트가 협업해서 구성할 예정이다. 한쪽으로 치우쳐서 짤 생각은 없다"며 "상대 선발투수도 봐야 하고, 우리 선발투수와의 매치업도 봐야 한다. 144경기 동안 라인업이 매일 달라질 수도 있다. 내년 시즌을 보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경기력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데이터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투타에서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그 가능성을 모아 시너지를 내야 한다. 지금은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경기력으로 연결할지 코치들, 데이터팀, 트레이닝 파트와 긴밀히 소통하고 보고를 받고 있다. 그런 조합이 잘 맞으면 내년에 기대할 선수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택근 단장도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선수 영입을 이야기하면서도 감독과 데이터팀, 구단 내 여러 부서의 협의를 강조했다. 이 단장은 "좋은 선수가 있으면 요청할 생각이다. 다만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저는 단장의 역할이 현장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의 생각도 존중해야 하고, 데이터팀을 비롯한 여러 부서의 판단도 맞아야 선수 영입이 이뤄진다. 이동욱 감독님과 충분히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동문이자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롯데에 부임한 뒤에도 데이터와 야구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눈다. 이 단장은 이 감독과 어떤 대화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주로 데이터에 관한 부분이나 야구 이야기를 나눴다. 롯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현장 활용에 적극적인 단장과 감독이 한 팀에서 만났다. 한동안 데이터 야구가 뒷전으로 밀렸던 롯데로서는 기존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할 기회다. 물론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성적이 저절로 좋아지는 건 아니다. 선수들이 이해하고 훈련과 경기에서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이 감독이 취임사 첫머리에 데이터를, 마지막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롯데에 데이터와 장비는 이미 있었다. 이제 이택근 단장과 이동욱 감독은 그것을 선수들의 경기력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서 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수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힘든 훈련이라도 왜 하는지 소통하고, 선수가 납득해 자기 주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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