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라이언도 했는데 왜 못해?"…던질수록 강해지는 '텍사스 상남자' 에이스 "5·6차전 출격 준비" [KS2]
르윈 디아즈와 크리스 페덱(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르윈 디아즈와 크리스 페덱(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수원]

"놀란 라이언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나(Why not me)?"

삼성 라이온즈 에이스 크리스 페덱이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호투가 최근 열흘 새 세 번째 선발 등판에서 나왔다는 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일이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4구를 던진 뒤 사흘 쉬고 4차전에서 99구를 던진 페덱은 다시 나흘만 쉬고 나온 한국시리즈에서 102구로 7이닝을 책임졌다. 등판할 때마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지며 한계를 뛰어넘는 투혼을 보여줬다.

페덱은 4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 정규시즌 1위 KT 위즈를 상대로 7이닝 8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삼성은 연장 12회까지 4시간 21분의 혈투 끝에 3대 2로 이겨 시리즈 전적을 1승 1패로 맞췄다. 페덱은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한 역투로 데일리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돼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요즘 프로야구에서 선발투수가 사흘만 쉬고 다시 등판하는 광경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4일 휴식 후 등판도 가능하면 피하는 추세다. 물론 한 경기 승패가 절실한 가을야구에서는 예외가 적용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흘 쉬고 선발 등판한 투수가 다시 나흘을 쉬고 마운드에 오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안 쓰는 표현이지만 과거 '용병'이라 불렸던 외국인 선수에게 이런 헌신을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페덱은 팀을 위해 기꺼이 강행군을 받아들였다.

경기 전 상대 팀 이강철 KT 감독도 페덱의 몸 상태에 관심을 보였다. 이 감독은 "던질수록 더 좋아지는 투수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는데 오늘 페덱이 어떨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페덱이 바로 그 '던질수록 더 강해지는' 투수였다. 지난달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4.2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던 페덱은 30일 4차전에서 5.1이닝 1실점으로 살아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7이닝을 던지면서 단 1점만 내줬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페덱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공을 던져본 건 처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몸 상태가 아주 좋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좋은 상태"라며 미소를 보였다. 그러더니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의 이름을 꺼냈다.

"옛날에는 놀란 라이언 같은 대투수들도 짧은 휴식 간격으로 등판했다. 그들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나."

강인한 텍사스 사나이 "우리에겐 얼음이 있다"크리스 페덱(사진=삼성)크리스 페덱(사진=삼성)

놀란 라이언은 메이저리그에서 27시즌을 뛰며 통산 324승과 역대 최다인 5714탈삼진을 기록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다.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이자 일곱 차례나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완투형 투수의 대명사, 워크호스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페덱과 같은 텍사스 출신이기도 하다.

텍사스 남자들은 원래 그렇게 강인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페덱은 웃으며 답했다. "라이언이 텍사스 출신이라서 이름을 꺼냈다. 나도 텍사스를 대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세대가 달라 직접 뛰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자랐다. 내 롤모델이었다."

페덱은 라이언과 로저 클레멘스 등 과거 메이저리그의 대투수들이 짧은 휴식 간격으로 등판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때는 2, 3일만 쉬고 다시 선발로 나서는 일도 흔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지금과는 투수 운용 방식도, 선수들의 몸 관리도 많이 달라졌다. 페덱 역시 이를 모르진 않는다. 다만 큰 경기를 앞두고 휴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얽매이거나 핑계로 삼지 않을 뿐이다.

라커룸에서는 동료들에게 "우리에겐 얼음이 있다"며 농담을 건넨다고 했다. "몸이 아프거나 뻐근하면 얼음찜질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식으로 농담한다." 30도 폭염에도 카우보이 복장으로 야구장에 출퇴근하는 상남자다운 소리다.

말은 농담처럼 해도 몸 관리는 철저하다. 페덱은 짧은 휴식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영양 섭취와 회복에 신경을 썼고, 구단 트레이닝 파트의 도움도 받았다. 페덱은 "포스트시즌은 선수들이 한 시즌 내내 노력해서 얻어낸 기회다. 이런 무대에서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휴식이 짧으면 몸이 뻐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그러면 힘든 것도 잊고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7회 등판까지 직접 자청 "투수코치와 눈 마주쳐"크리스 페덱(사진=삼성)크리스 페덱(사진=삼성)

페덱의 이날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1회말 선두타자 최원준에게 2루타를 맞았고, 2사 후 샘 힐리어드에게 볼넷을 내줬다. 김현수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 실점은 막았지만 첫 이닝에만 25구를 던졌다. 과연 경기 전 박진만 감독이 기대한 대로 6이닝 100구를 던질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질 법한 상황이었다.

2회초 삼성 타선이 선취점을 뽑아주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최형우의 2루타에 이어 르윈 디아즈가 적시 3루타를 터뜨렸다. 페덱은 "전광판에 우리 팀이 앞서 있는 걸 보니 부담이 많이 줄었다. 타석에 누가 들어오든 포수를 믿고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4회말 허경민에게 적시타를 맞아 1대 1 동점을 허용했지만 추가 실점은 없었다. 가장 큰 고비는 6회말. 1사 후 힐리어드에게 안타, 김현수에게 2루타를 맞아 2, 3루 위기에 몰렸다. 안타 하나면 역전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페덱은 류현인과 허경민을 연달아 1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6회까지 1점만 주고 던졌으니 충분히 제 몫을 했다. 짧은 휴식과 투구 수를 고려하면 교체돼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덱은 오히려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르겠다고 자청했다. “(최일언) 투수 코치와 눈이 마주쳤는데 다가와서 7회에도 던질 힘이 남아 있는지 물었다. 다음 타순에 우타자 두 명이 있어서 내가 처리하고 싶다고 했다. 7회에도 던질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코칭스태프는 페덱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페덱은 7회말 한승택과 장준원을 연속 땅볼로 처리했다. 최원준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김민혁을 다시 1루수 땅볼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그렇게 102구로 7이닝을 책임졌다. 이번 가을 세 차례 선발 등판 가운데 가장 긴 이닝이자 가장 많은 투구 수였다. 경기는 연장 12회 승부 끝에 삼성이 웃었다.

페덱은 “12이닝이나 치른 끝에 이기니 정말 기분이 좋다. 대구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 훨씬 편안해질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이어 "우리 팀뿐 아니라 KT 투수들도 정말 잘 던졌다. (옆에 앉은 르윈 디아즈를 가리키며) 디아즈도 대단한 활약을 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 거둔 승리"라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페덱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한국시리즈 2차전까지 마친 삼성은 앞으로 최소 세 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페덱은 벌써 다음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5차전이나 6차전에 등판할 가능성이 있어 거기에 맞춰 몸을 준비하겠다. 놀랍게도 몸 상태가 좋고 정신적으로도 잘 준비돼 있다.”

열흘 사이 세 차례 선발 등판. 사흘 휴식에 이어 나흘 휴식이라는 강행군을 치르고도 다음 등판을 이야기하는 페덱의 모습에서 텍사스 출신 대투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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