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 출범시킨 '숨은 엔진' 정원오…'선수들 방패'서 서울시장 후보로 [박동희 칼럼]
5월 5일 잠실야구장 전광판 뒤 노상에서 '국민 감독' 김인식 전 두산 감독(사진 맨 오른쪽부터)과 야구팬들을 만난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그는 야구장의 VIP석 대신 노상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야구인과 야구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성동구청장 시절 늘 해왔던 그만의 소통 방식이다(사진=더게이트)5월 5일 잠실야구장 전광판 뒤 노상에서 '국민 감독' 김인식 전 두산 감독(사진 맨 오른쪽부터)과 야구팬들을 만난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그는 야구장의 VIP석 대신 노상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야구인과 야구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성동구청장 시절 늘 해왔던 그만의 소통 방식이다(사진=더게이트)

[더게이트]

2000년 겨울, 칼바람은 야구장보다 여의도에서 더 매섭게 불었다. 프로야구단들의 서슬 퍼런 방출 통보 앞에 선수들은 유니폼 대신 투쟁 조끼를 입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선수협 파동’의 서막이었다.

당시 국회는 선수들의 절규를 담아낼 그릇이 되지 못했다. 대다수 정치인이 복잡하고 껄끄러운 스포츠 노동 문제에 눈을 감았다. 홀연히 팔을 걷어붙인 젊은 보좌관이 있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의 이야기다.

당시 정원오는 새천년민주당 임종석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임종석은 당시 선수협 발족에 힘을 보탠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모두가 외면할 때 유일하게 문을 열어준 곳이 임종석 의원실이었다. 하지만 그 동력의 실체는 정원오였다.” 초대 선수협 사무총장을 지낸 나진균 서울시야구협회 부회장의 회상이다. ‘정원오’라는 실무적 엔진이 없었다면, ‘임종석’이라는 정치적 방패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보좌관 정원오, 선수들의 진짜 방패였다"

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기억 속 정원오는 헌신 그 자체였다. 2대 선수협 사무총장을 지낸 권시형은 당시 국회 문체위 전문위원으로서 그 과정을 목격했다. 권시형은 “도와주겠다는 의원은 많았으나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든 건 임종석 의원실뿐이었다”“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의원을 완벽하게 보좌하며 현안을 뚫어낸 정원오 같은 참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부터 8년간 임종석의 곁을 지킨 정원오는 단순한 보좌진 이상이었다. 당시 프로야구 선수들은 기본적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야만의 시절, 정원오는 차가운 정치적 셈법 대신 야구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정의감으로 문제의 핵심에 파고들었다.

정치인의 이름표를 달고 카메라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은 쉽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더그아웃 뒤편에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설 수 있도록 묵묵히 흙을 고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헌신이다.

정원오는 ‘선수협’이라는 위태로운 신생 조직이 구단들의 압박과 여론의 풍파를 견뎌낼 수 있도록 정책적, 정무적 방파제 역할을 자처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정치인 참모의 무용담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프로야구가 누리는 권리와 제도의 근간을 지켜낸 결정적 '호수비'였다.

잠실야구장 VIP석 마다하고, 노상에서 나눈 '야구의 봄'

2000년 선수협 파동 당시 선수들이 팬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장면2000년 선수협 파동 당시 선수들이 팬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장면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잠실야구장에서 정원오를 다시 만났다. 정원오의 자리는 화려한 VIP석도, 쾌적한 경기장 안도 아니었다. 정원오는 야구장 밖 노상,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야구인과 팬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3선 구청장을 지낸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야구를 사랑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만이 묻어났다. 격식 없는 ‘노상 간담회’에서 그는 25년 전 그랬듯 야구 인프라와 관람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경청하며 수첩을 채워 나갔다.

간담회를 마친 정원오는 나지막이 말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지만, 그 기록을 완성하고 즐기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이 행복한 야구장을 만들기 위해 팬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겠습니다.”

2000년의 혹독했던 겨울, 그라운드의 약자들을 지켜냈던 정원오의 우직함이 이제 ‘서울’이라는 거대한 그라운드를 향하고 있다. 잠실 노상에서 보여준 그의 선한 미소와 변치 않는 열정이, 팍팍한 천만 시민의 삶 속에서 시원한 ‘역전 홈런’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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