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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그랑서울 본사(사진=고려아연)[더게이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무대가 미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영풍·MBK파트너스가 미국 핵심광물 공급망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을 앞세워 현지 정·재계와 접촉하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장외전도 국경을 넘어섰다.
최 회장 측은 미국 정치권과의 협력 관계를 부각하며 현 경영진의 사업 추진 역량을 강조했으며, 영풍·MBK도 미국 현지에서 프로젝트 지원 의지를 밝히며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나의 사업을 두고 양측이 각각 미국 현지에서 사업 주도권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번 움직임은 단순한 해외 홍보전을 넘어 경영권 분쟁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 정부와 현지 투자자들이 참여한 크루서블JV가 고려아연 지분 10.59%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고려아연의 사업 파트너가 향후 경영권 표 대결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프로젝트 주도권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제련소에 겹친 두 개의 목소리
마샤 블랙번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이승호 고려아연 사장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고려아연 제공)프로젝트 크루서블은 미국 테네시주에 약 74억달러를 투자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고려아연은 2027년 착공해 2029년까지 제련소 건설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완공되면 연간 약 110만톤의 원료를 처리해 미국 정부 지정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13종의 비철금속과 반도체용 황산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 정부의 핵심광물 공급망 정책과 맞물리면서 사업의 전략적 가치도 커졌다. 고려아연이 공개한 투자 구조에 따르면 총사업비의 90% 이상을 미국 정부와 현지 전략적 투자자, 정책금융 및 보조금 등으로 조달한다. 고려아연은 제련 기술과 운영 역량을 제공하면서 사업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 측은 최근 미국 연방의회 실무대표단의 온산제련소 방문과 마샤 블랙번 연방 상원의원의 프로젝트 크루서블 사업부지 방문 등을 잇따라 공개했다. 블랙번 의원은 지난 11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위치한 현지 사업부지와 크루서블 징크를 찾아 통합제련소 건설 계획과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논의했다. 현 경영진이 미국 정부 및 정치권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한 행보다.
영풍·MBK도 지난 9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현지 인사들을 초청해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을 열었다. 이들은 행사에서 자신들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으로 소개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과 협력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 측이 추진해온 사업을 영풍·MBK도 미국 현지 활동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양측의 사업 주도권 경쟁 무대로 바뀌었다.
사업 파트너가 쥔 경영권 변수
영풍·MBK파트너스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 초청장 이미지영풍·MBK의 미국 행보가 주목받는 것은 앞서 고려아연과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놓고 충돌한 전력 때문이다. 영풍·MBK는 지난해 말 크루서블JV를 대상으로 한 고려아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라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유상증자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크루서블JV는 고려아연 신주 220만9716주를 취득해 지분 10.59%를 확보했다. 이후 제출한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서는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가 아닌 ‘경영참여’로 명시했다. 이사회 구성과 회사 경영에 관한 사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크루서블JV 지분을 현 경영진에 가까운 전략적 지분으로 분류하고 있다. 다만 법적 보유 주체는 최 회장 측이 아닌 별도 합작법인인 만큼 의결권 행사를 현 경영진의 고정표로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정부와 현지 투자자들이 참여한 크루서블JV의 의사결정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가 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영풍·MBK는 미국 제련소 사업의 전략적 가치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경영권 방어 목적의 유상증자 방식과 불투명한 의사결정 절차를 문제 삼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신주 발행을 저지하려 했던 영풍·MBK가 회사와 협의하지 않은 채 미국에서 프로젝트 지원 행사를 연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충돌도 사업 추진 여부보다 누가 프로젝트의 대표성과 주도권을 가질 것이냐는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MBK, 홈플러스 위기 속 방미 행보 ‘눈총’
홈플러스 강서 본사(사진=홈플러스)이런 가운데 MBK의 미국 행보를 둘러싼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MBK가 대주주인 홈플러스는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즉시항고했으며, 자금난으로 대형마트 영업도 전면 임시 중단한 상태다. 이처럼 홈플러스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미국 활동에 나선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해외를 넘나들며 타 기업의 경영권 분쟁 여론전에 골몰하는 행태는 대주주로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며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소모적인 경영권 분쟁을 멈추고 홈플러스 사태의 온전한 해결과 민생 보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꼬집었다.
영풍·MBK의 리셉션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에 대한 지원 의지를 현지에 설명하기 위한 행사였지만 시점상 홈플러스 사태와 대비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홈플러스 정상화와 임직원·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 보호를 요구받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고려아연 최대주주 그룹으로서 대규모 핵심광물 사업 지원을 강조한 꼴이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이제 단순한 해외 성장사업을 넘어 경영권 분쟁의 표심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다만 미국 정부와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현지 여론전에 더 적극적이냐보다 수년간 이어질 제련소 건설과 운영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느냐다. 프로젝트의 연속성에 대한 신뢰를 누가 확보하느냐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새로운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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