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익 270조 전망에 흔들린 ‘10년 약속’…SK하이닉스, 자사주 성과급 놓고 격돌 [더게이트 포커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정문(사진=SK하이닉스)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정문(사진=SK하이닉스)

[더게이트]

SK하이닉스 노사가 10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한 성과급 제도가 1년 만에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사측이 초과이익분배금(PS)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노조는 지난해 합의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전임직 노조와 기술사무직 노조는 지난 21일 각각 사측과 집중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지난 14일 열린 3차 본교섭에서 성과급을 비롯한 주요 안건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별도의 실무 협의에 나선 것이다. 노사는 조만간 4차 본교섭을 열고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갈등의 본질은 단순한 지급 방식의 차이를 넘어선다. 영업이익 10%라는 기준을 지키더라도 주식으로 지급되면 직원이 체감하는 보상의 실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여기에 최태원 SK그룹 회장까지 이해관계자를 앞세워 제도 손질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이번 교섭은 ‘10년 약속’의 유지 여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됐다.

상한 폐지 뒤 불어난 성과급 재원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사진=SK하이닉스)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9월 PS 상한을 폐지하고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PS의 80%는 해당 연도에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20%는 이후 2년에 걸쳐 매년 10%씩 지급하는 구조다. 새 기준을 향후 10년간 유지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해당 합의안은 노조 대의원 투표에서 95.4%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실적과 보상의 연계 기준을 명확히 해 성과급을 둘러싼 반복적인 갈등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사측 역시 경영 성과와 구성원 보상의 연계를 투명한 기준으로 정립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AI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으로 영업이익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KB증권은 지난 5월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을 270조940억원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대로라면 영업이익의 10%인 약 27조원이 PS 재원으로 책정된다.

직원 수를 약 3만5000명으로 가정해 단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지급액은 7억~8억원에 달한다. 개인별 지급액은 기준급 등 보상 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제도 설계 당시 예상하지 못한 규모로 PS가 불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성과 보상이라는 합의의 취지가 대규모 현금 유출에 따른 투자 여력과 주주환원 부담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진 배경이다.

최태원 ‘이해관계자론’과 자사주 카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대한상공회의소)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대한상공회의소)

최 회장은 지난 15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구성원의 행복이 목적이지만 단서가 하나 붙어 있다. 스테이크홀더(이해관계자)가 같이 행복해야 한다는 전제다”라며 구성원 보상과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성과급 제도가 주주 등 이해관계자에게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를 지속하기 어렵고 제도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누구도 회사가 이처럼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제도 도입 이후 달라진 경영 환경도 언급했다.

다만 즉각적인 제도 개편을 주문한 것은 아니다. 성과급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는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한 입장도 함께 밝혔다. 그럼에도 그룹 회장이 성과급의 지속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향후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4일 열린 3차 본교섭에서 PS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의 발언과 이번 교섭안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현금 중심의 보상 체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지급 방식 보완 vs 10년 약속 훼손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 중인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사진=청와대)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 중인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사진=청와대)

SK하이닉스가 성과급에 자사주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직원이 PS의 최대 50%를 자사주로 선택할 수 있는 주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선택한 주식을 1년 동안 보유하면 매입 금액의 15%를 현금으로 추가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존 프로그램은 참여 여부와 비율을 직원이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번 교섭안과 차이가 있다. 새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진 방안은 PS의 일정 부분을 자사주로 지급하는 구조다. 구체적인 비율과 처분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직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면 기존 제도와는 성격이 달라진다.

노조는 사측 제안이 지난해 어렵게 도출한 합의의 취지와 방향을 훼손한다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업이익 10%라는 산식뿐 아니라 현금을 전제로 한 지급 방식도 10년 합의에 포함된다는 논리다. 단순히 산정 기준을 유지한 채 지급 수단만 보완하는 것이라고 해도 노조 입장에서는 주가 변동 위험과 선택권 제한을 단순한 형식 변경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측 간 대립 양상을 두고 외부의 관심도 뜨겁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 배분이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성과급이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전영현·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결국 쟁점은 성과급 규모가 지나치게 크냐는 데만 있지 않다. 예상보다 많은 이익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10년간 유지하기로 한 합의의 지급 방식을 1년 만에 바꿀 수 있느냐는 문제다. 경영진의 이해관계자 논리와 노조의 합의 준수 요구가 맞서는 이번 교섭에서 10년 합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보상과 주주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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