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명품 조연, 현실 정치의 숨은 주연이 되다…사비 털어 1,300km 달린 '진짜 배우' 이기영 [박동희 칼럼]
1박 2일 동안 1,300km를 달려 11명의 후보를 지원한 이기영 배우(사진=더게이트)1박 2일 동안 1,300km를 달려 11명의 후보를 지원한 이기영 배우(사진=더게이트)

[더게이트=경남, 창원, 부산, 울산]

5월 17일 새벽 4시 30분. 서울은 아직 어두웠다. 승합차 한 대가 강변북로를 빠져나갔다. 차 안에는 배우 이기영이 있었다. 임무영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별위원회 위원이 동승했다. 다른 차엔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탔다.

목적지는 경남 산청. 거리는 멀었다. 네 시간 이상이 걸렸다. 아침 9시, 일행은 산청에 도착했다.

거기서 최호림 산청군수 후보를 만났다. 이종혁 군의원 후보도 자리를 함께했다. 대화가 오갔다. 이기영은 오래 듣고, 짧게 답했다. 군 단위 선거에서 무명에 가까운 후보들이다. 그래도 이기영은 진지했다. 이기영은 호소했다. 지나가는 군민에게 “산청의 발전을 위해 최호림에게 집중해주십시오”라고.

아침은 거른 채였다. 일행은 다시 차에 올랐다. 이번엔 경남 하동이었다.

-산청에서 하동 그리고 창원으로-

경남 하동공설시장에서 제윤경 후보와 함께 분식집에서 순대와 어묵을 먹고 있는 이기영 배우(사진 맨 오른쪽)경남 하동공설시장에서 제윤경 후보와 함께 분식집에서 순대와 어묵을 먹고 있는 이기영 배우(사진 맨 오른쪽)

오전 10시 30분, 하동에 닿았다. 제윤경 하동군수 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장 하동공설시장으로 향했다. 좌판 사이를 걸었다. 상인들은 단박에 알아봤다. "어, 그 배우 아니에요?"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기영은 일일이 잡아줬다. 상인들의 고충을 들었다. 듣기만 한 것이 아니다. 메모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시장에서 서둘러 해결했다. 그 와중에도 군민에게 제윤경을 홍보했다.

"지난 총선 때도 험지 중의 험지 하동에서 출마한 사람입니다. 낙선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도전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바 없는 하동에 또 출마했습니다. 낙선의 두려움보다 고향 하동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윤경 후보가 당선된다면 하동을 바라보는 중앙 정부의 시선이 바뀔 겁니다. 그리고 지원 규모가 확 달라질 겁니다.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또 호소합니다. 정체된 하동이 아닌 변화하고 발전하는 하동을 선택해주십시오.“

오후 1시 30분, 이번엔 창원이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를 만났다. 격려의 자리였다. 이기영은 김경수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캠프를 찾아온 시민들에게 차례차례 인사를 건넸다.

오후 3시. 이기영과 김경수는 함께 창원 장미공원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이 이기영을 알아봤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이기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한 명씩, 한 명씩 응했다.
한 시민이 말했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를 직접 봐 놀랐다." 또 다른 시민은 이렇게 덧붙였다. "원체 중후한 역할을 많이 맡은 배우라 그런지, 이기영 씨가 지지하는 김 후보에 대해 어쩐지 믿음이 가고, 신뢰가 간다."

배우의 신뢰가 후보의 신뢰로 옮겨붙는 순간이었다.

-18일 새벽, 부산에서 다시 시작-

하정우 부산 북구 갑 후보(사진 왼쪽부터), 문영남 북구 제1선거구 시의원 후보가 부산 시민, 이기영 배우와 함께 기념촬영하는 장면(사진=더게이트)하정우 부산 북구 갑 후보(사진 왼쪽부터), 문영남 북구 제1선거구 시의원 후보가 부산 시민, 이기영 배우와 함께 기념촬영하는 장면(사진=더게이트)

오후 5시. 창원시장 송순호 후보 캠프에 들렀다. 송순호는 외부 일정으로 자릴 비웠다. 그래도 이기영은 그냥 가지 않았다. 캠프 관계자들을 한 명씩 격려했다. 안진걸TV에 출연해 송 후보가 이끌어갈 창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밤이 깊었다. 일행은 부산으로 차를 돌렸다. 그날 늦은 밤 부산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정 때문이었다.

5월 18일 새벽 6시. 이기영은 일어났다. 오전 7시, 부산 동래역. 탁영일 동래구청장 후보가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였다. 해병대 출신의 탁영일은 이기영을 반갑게 맞았다. 이기영은 지하철로 출근하는 동래구민들을 향해 외쳤다. "탁영일 후보를 한번 봐주십시오."

오전 8시 30분. 부산 연제구청장 후보 이정식 캠프였다. 이정식은 진보당 후보와 단일화를 앞두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이정식이 말했다. "단일화 대신 독자 후보로 구청장 선거에 임하라는 지지자들의 간곡한 요구에도 당의 방침에 따라 단일화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겠습니다."

이기영이 답했다. "‘선당후사’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건 거의 처음인 듯합니다." 한마디로 이정식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약속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후로도 이 후보님 편에 서겠습니다."

후보가 고개를 떨궜다. 그 짧은 한마디에 캠프 분위기가 달라졌다.

-구포시장의 밀면, 그리고 울산-

1박 2일 동안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피로가 겹친 건 이기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기영은 안진걸의 어깨를 마사지하며 후배의 건강을 염려했다. 이들이 이렇게 헌신하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이들이 누가 아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사진=더게이트)1박 2일 동안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피로가 겹친 건 이기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기영은 안진걸의 어깨를 마사지하며 후배의 건강을 염려했다. 이들이 이렇게 헌신하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이들이 누가 아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사진=더게이트)

구포시장으로 향했다. 늦은 점심으로 밀면 한 그릇을 비웠다. 허겁지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오후 1시. 구포시장에서 하정우 북구 갑 민주당 보궐선거 후보, 문영남 북구 시의원 후보와 합류했다.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어떤 이는 손을 잡았고, 어떤 이는 사진을 청했다. 이기영은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본인이 먼저 시민의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함께 사진 찍어요." 촬영 버튼을 직접 눌렀다.

부산 일정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울산이었다.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 전태진 울산 남구 갑 국회의원 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즉시 거리 인사로 들어갔다.

모든 일정이 끝난 시각은 18일 오후 8시. 시계를 본 이기영은 한마디 했다. "다음 날 경기도, 서울에서 도와줘야 할 후보들이 많아요." 그리고 서울행 승합차에 올랐다.

묻고 싶었다, 왜 이러느냐고.
"어떻게 이런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인상 한번 쓰지 않으십니까."
이기영이 답했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 왜 인상을 쓰겠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이렇게 전국의 시민들을 만나고, 그 시민분들과 호흡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다시 물었다. 배우 생활할 때는 어땠느냐고. 답이 짧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짜증을 내겠어요."

영화 '달콤한 인생'의 그 살벌한 킬러는 어디로 갔나. '말아톤'의 무뚝뚝한 코치는 또 어디로 갔나. 카메라 앞에서 그토록 강렬했던 사내가, 시장에서는 한없이 작아져 있었다. 아니 작아진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있었다.

-신세지지 않는 동행-

부산의 한 식당에서 사인을 요청하는 식당 주인을 위해 정성스럽게 사인하는 이기영. 정치판은 계산이 빠르다. 떡고물이 어디 있는지부터 본다. 이기영과 안진걸 그리고 임무영은 그런 계산이 없다. 식대도, 차편도 본인들 몫이다. 그래서 더 낯설다. 낯설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드물고 또 드물어 희귀하다.부산의 한 식당에서 사인을 요청하는 식당 주인을 위해 정성스럽게 사인하는 이기영. 정치판은 계산이 빠르다. 떡고물이 어디 있는지부터 본다. 이기영과 안진걸 그리고 임무영은 그런 계산이 없다. 식대도, 차편도 본인들 몫이다. 그래서 더 낯설다. 낯설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드물고 또 드물어 희귀하다.

이기영의 이런 활동은 모두 자비다. 후보에게 식대를 청구하지 않는다. 차량 편의도 요구하지 않는다. 숙박도 본인이 알아서 한다. 후보 입장에선 부담이 없다. 이기영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이기영은 다음 주에 또 길을 나선다. 5월 23일 부천에서 시작한다. 조용익 부천시장 후보를 돕는다. 인천 박찬대 후보 집중 유세에 합류한다. 저녁엔 서울 홍대입구역. 정원호 후보 지원이다.

24일은 강원이다. 우상호 후보를 도와 월정사 봉축법요식에 간다. 영월에서 박선규 후보를 만난다. 그날 밤은 대전에서 잔다. 허태정 후보 지원이 잡혀 있다.

25일은 충청이다. 옥천, 청주, 논산, 금산, 계룡, 대전 서구. 하루에 여섯 곳이다. 거리로만 따져도 만만치 않다.

40년 넘게 배우로 살아온 사람이다. 영화와 드라마만 200편이다. 갑상선암을 이겨냈고, 베트남 촬영 중 폭발 사고를 당했던 이다. 그런 사람이 자비로 전국을 돈다. 어떤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상할 게 없다고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시민을 만나는 게 고마운 일이라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차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기영은 휴대전화로 다음 주 일정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표정에 피로가 없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이기영은 또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간다. 이기영의 일정이다이기영은 또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간다. 이기영의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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