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어코리아
강원관광재단, 日 크루즈 유치 총력

더게이트
손혜원 목포 시의원 후보가 '민어횟집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 후보는 고단한 선거운동 기간에도 늘 낙천적이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주민이 즐겁지 않고, 목포도 즐겁지 않다"는 게 손 후보의 생각이다. 그는 '즐거운 목포, 신나는 목포'로 만드는 게 당면한 꿈이다(사진=더게이트)[더게이트=목포]
5월 29일 오후 6시. 목포 원도심의 심장, 로데오광장에 마이크가 켜진다. 슬로건은 단출하다. "손혜원 손잡고 목포를 살려봐요." 무소속 시의원 후보 손혜원이 6·3 지방선거 본투표를 닷새 앞두고 던지는 마지막 승부수다. 그 옆에 두 사람이 선다. 이부영 전 국회의원, 그리고 양희삼 목사.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 기초의원에 도전한다. 그것도 민주당 정당지지율이 80%대인 호남 텃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자체가 사건이었다. 손혜원은 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손혜원TV'를 통해 "장고 끝에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다"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4월 8일 목포시의원 '라선거구'에 예비후보로 정식 등록했다. 라선거구는 목원동·동명동·만호동·유달동, 목포 원도심 4개 동을 묶은 구역이다.
-'손혜원 손잡고' 슬로건의 무게-
손혜원의 모든 공약은 '목포에서의 삶'을 통해 스스로 체험하고,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전체 공약을 스스로 만들어냈다(사진=더게이트)손혜원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흔들림이 없었다. "원도심이 살아야 목포가 산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2주기에 맞춰 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손혜원은 한 발 더 들어갔다.
"2014년 4월 16일 해외에서 귀국하며 접한 세월호 침몰 소식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아무도 탈출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지금의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2026년 오늘, 침몰하는 목포를 더 늦기 전에 구해야 합니다."
손혜원은 "가만히 있으라는 정치에 맞서 직접 행동하겠다"며 "권력의 높이가 아니라 시민과의 거리로 정치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로마 덕분에 주변까지 관광객이 몰리듯 목포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게 손혜원의 비전이다.
2020년 목포 유달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손혜원은 그곳에서 나전칠기 공방을 운영하며 크로스포인트재단을 이끌어 왔다. 목포 거주 5년 차인 목.포 주.민이다.
-손혜원을 향해 달려간 이들, 이부영과 양희삼 -

5월 29일 손혜원 옆에 서는 첫 번째 인물, 이부영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 현대사 한 갈피마다 박혀 있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인 1974년, 동료 기자들과 함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10월 유신에 맞서 발표한 것이 그 유명한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이다. 이듬해 해직,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1986년 5·3 인천 사태 주도 혐의로 또 한 차례 복역하던 중, 이부영은 한국 정치사를 바꾸는 한 장의 쪽지를 만들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은폐됐다는 사실을 교도관으로부터 전해 듣고, 휴지에 그 내막을 적어 김승훈 신부에게 전달했다. 그해 5월 명동성당에서 터진 폭로는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위원장을 거쳐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강동갑에 출마해 당선, 이후 3선을 했다. 통합민주당 부총재, 한나라당 원내총무, 열린우리당 의장까지 지냈다. 2015년 정계 은퇴 선언과 동시에 당적까지 정리했고, 지금은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다.
두 번째 마이크를 잡는 양희삼은 결이 다르다.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총신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공군 군목으로 9년을 사역한 뒤 2008년 대위로 예편했다. 현재는 서울의 카타콤교회 담임목사다. '복음을 지키는 낮은 사람들'이라는 구호 아래 작은 교회를 이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건 광장에서였다. 2019년 검찰개혁을 외친 서초동 집회에서 양희삼은 "검찰과 교회가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고 외쳤다. 같은 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앞에서 열린 '한기총 해산 촉구 기자회견'에 섰고, 전광훈 목사로 상징되는 정치 목사 진영을 향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양희삼의 자기 규정은 명료하다. "정당을 만들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의 정치를 한다." 시국 발언으로 진보 진영의 신뢰를 쌓아왔지만, 민주당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거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 사람을 묶는 한 가지, '시민의 정치'-
손혜원의 정치를 한마디로 규정하면 '진솔'이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주민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갔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눴으며, 진솔하게 처신했다. 그의 진솔함은 목포에서도 여전하다(사진=더게이트)이부영과 양희삼이 5월 29일 손혜원 옆에 서는 이유는 셋의 약력이 겹쳐서가 아니다. 결이 같아서다. 재야에서 시작한 이부영, 광장에서 자란 양희삼, 그리고 중앙 정치에서 내려와 골목으로 들어간 손혜원. 세 사람 모두 '제도 정치 바깥에서 시민의 자리로 정치를 다시 짜겠다'는 문법을 공유한다.
원도심 라선거구는 남성 정치인 중심의 구조가 견고한 곳이다. 손혜원이 당선되면 2002년 이후 약 24년 만에 원도심에서 여성 시의원이 탄생한다.
5월 29일 집회 장소가 로데오광장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목포극장 옆 옛 바나나 골목. 2008년 12월 1,056㎡ 규모로 준공된 이 광장은 원도심 침체를 뚫겠다며 70억 원이 투입된 공간이다. 중앙무대 겸 바닥분수, 코롬방제과·태동반점이 인접한 만남의 광장. 손혜원이 말하는 '원도심'의 가장 상징적인 좌표다.
자신이 살려내겠다고 한 그 동네 한복판에서, 그 동네의 미래를 묻겠다는 것이 이 집중유세의 풍경이다.
광장에는 마이크 세 개가 놓인다. 자유언론선언을 쓴 손, 광장 정치를 끌어온 손, 그리고 골목을 살리겠다는 손. 닷새 뒤, 목포 시민이 그 손들 가운데 어느 손을 잡을지가 6월 3일 투표함에 담긴다.

관심 없음
{카테고리}에 관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