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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회생법원 확충 원년"... ‘기업의 재도전’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때

더게이트
뜨거운 햇빛 아래 지나가는 할머니를 위해 손혜원 후보 선거운동원이 후보 선전 피켓을 할머니 머리 위에 씌워준 장면. 손혜원이 목포에서 구현하고 싶은 장면이다. 정치가 정치가의 권력이 아닌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도구가 될 때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손혜원은 현실에서 증명하고 싶어한다(사진=더게이트)[더게이트]=목포]
5월 29일 오후 6시. 전남 목포 ‘원도심 심장’ 로데오 광장.
사람이 들어찼다. 눈대중으로 200명이 넘었다. 이 숫자를 가볍게 보면 곤란하다. 목포는 작은 도시다. 시장이 총력유세를 펴도, 군수가 마이크를 잡아도, 이만한 인파는 좀처럼 모이지 않는다.
당 지도부가 버스를 대절하,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거물들이 줄줄이 단상에 올라도, 목포 같은 도시에선 많아야 100명이다. 그게 보통이다.
손혜원에겐 그런 게 없었다. 무소속이다. 깃발도, 버스도, 거물도 없다. 손혜원 자신도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100명만 와 주셨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더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숫자는 정직하다. ‘200’이라는 숫자는 기대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장에 마이크가 셋, 손도 셋. 그 손을 잡아주러 세 사람이 왔다.
-" 손혜원, 일 낼 거예요. 목포 원도심 위해 일 내야 합니다. "-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연설 장면(사진=더게이트)첫 번째 손은 이부영이었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 시절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쓴 사람.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었을 때, 그 죽음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휴지 한 장에 적어 세상에 내보낸 사람. 그 쪽지가 6월항쟁의 불씨가 됐다. 3선 의원에 열린우리당 의장까지 지냈다. 그러다 2015년 정계와 당적을 함께 내려놨다.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랜 동지인 손혜원이 목포 와서 시의원으로 나온다길래 ‘가겠다’고 했지요.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안 오면 천벌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이부영은 손혜원을 "별난 사람"이라 했다. "뭐든지 보는 사물이 달라요. 저 사람이 정당에 자리를 잡으면, 그 정당이 발칵 뒤집힙니다."
이부영은 김종인마저 손혜원에게 반했다는 일화를 꺼내며 단언했다. "일 낼 거예요. 일 내야 합니다. 손혜원의 손끝이 닿으면 뭔가 새롭게, 더 잘되는 쪽으로 선한 기운이 스며듭니다."
말은 목포의 내력으로 흘러갔다. 호남의 두 거점은 목포와 군산. 일제가 이 땅의 쌀을 실어 나른 항구였고, 동시에 선진 사상이 가장 먼저 들어온 도시였다. 일본과 상해의 진보 인사들이 진을 쳤던 곳. 김대중을 일으킨 기반.
이부영은 말했다. "그랬던 목포가 한국을 움직이는 흐름에서 소외돼 왔다"고. 그리고 다시 말했다. "이제 한번 목포를 다시 떨쳐 일어나게 합시다. 원도심부터 살려 봅시다. 저는 그걸 손혜원 후보가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골목의 기억과 사람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 사람. 바로 손혜원"-
손혜원 무소속 후보의 기호는 '5'번이다. 사회자는 모 돌침대의 광고 문구를 기호 5번에 빗대 '손혜원'을 부르면 '별이 다섯개'라고 외쳐달라고 했다. 청중은 재미난 표정으로 '손혜원' 이름이 불려지면 다섯손가락을 뻗어 '별이 다섯개'라고 외쳤다(사진=더게이트)두 번째 손은 양희삼 목사였다.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1989년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37년 전이다. "하지만, 목포는 그때와 변한 게 없어요. 특히나 원도심은 일부러 역사 박물관을 만들려고 했나 싶을 정도로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양희삼의 진단은 매웠다. "파란 옷만 입고 있으면 막대기를 꽂아놔도 찍어주니 변할래야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청중에게 물었다. "손혜원은 서울 한복판에서 상류층의 삶을 살아도 부족한 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분이에요. 그런데 시의원이 웬 말입니까."
답도 그가 했다. "권력을 탐하는 게 아닙니다. 목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권한을 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광장에 박았다. "정치의 주인은 시민입니다. 그 어떤 정치인도 시민을 이기지 못합니다."
-임대, 그 두 글자 뒤-
총력유세 뒤 손혜원이 청중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장면(사진=더게이트)세 번째는 목포시 소상공인연합회 전 회장 김승희였다. 전통시장을 누비는 트로트 가수이기도 한 그는, 상인의 언어로 광장을 적셨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청년은 떠나고 도시는 늙어갑니다. 한때 목포 경제의 심장이었던 이곳 원도심이, 이제 빈 점포만 넘쳐나는 불 꺼진 거리가 됐습니다."
그는 거리에 붙은 '임대' 두 글자를 가리켰다. "그 두 글자 뒤에는 버티다 버티다 무너진 한 가장의 절망이 있습니다. 흩어진 가족의 피눈물이 있습니다."
그가 부른 이름도 손혜원이었다. "서울 가로수길과 망원시장을 핫플레이스로 바꿔놓은 주인공. 골목의 기억과 사람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사람. 바로 손혜원입니다."
-처음 써 온 연설문-
기호 5번 손혜원이 목포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사진=더게이트)그리고 주인공 차례.
손혜원은 종이를 들고 나왔다. "연설문을 써서 읽은 적이 없는데, 오늘은 제 마음과 각오를 글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목포에 머물며 골목골목을 살피고 주민을 만났다고 했다.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단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사람이 원도심 시의원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6개월이 지나자 주민들이 손을 잡으며 말하더란다. "사그라져 가는 원도심, 다시 한번 살려봐라."
왜 시장도 국회의원도 아닌 시의원인가. 늘 받는 그 질문에 손혜원은 답했다. "목포에는 국회의원이나 시장보다, 목포의 심장인 원도심을 살릴 진짜 일꾼이 필요합니다. 바로 접니다."
그가 말하는 원도심의 자산은 100년 된 목조 주택이었다. "가만히 두면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집들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혜원이 제시한 숫자는 냉정했다. "며칠 있으면 목포 인구 20만이 무너집니다. 살림이 1조 2,000억인데 늘 적자예요. 원도심 빈집이 1,200채가 넘고, 이 로데오거리 상가도 반 이상이 임대 아니면 매매입니다."
관내 초등학교 다섯 곳, 학생 평균 30명. "시장들은 폐교되면 저걸 뭘로 쓸까만 궁리합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동네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큰 정치를 향한 한마디. "위에서 거들먹거리는 큰 정치는 골목길의 눈물을 닦을 수 없습니다. 침몰해가는 목포를, 큰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해낼 수 없어요.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합니다."
-산토리니, 그리고 유네스코-
손혜원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목포에서 여생을 보낼 예정이다. 그에게 목포는 태어난 고향 이상의 의미가 있다(사진=더게이트)각오는 꿈으로 이어졌다. "만호동·유달동의 변화로 제 능력의 일부는 증명됐습니다. 이제 목원동·동명동 차례예요. 유달산 자락 온금동을 대한민국의 산토리니로 만들겠습니다." 마지막 꿈은 더 멀리 있었다. "제가 죽기 전에, 목포 원도심이 통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입니다."
손혜원은 못 박았다. "원도심의 불씨를 다시 키우기 전까지, 저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연설의 끝은 한 문장이었다. "시의원 하나 잘 뽑았더니 목포가 통째로 살아났다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습니다."
유세가 끝나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떠나지 않고 5년을 목포에 머문 사람, 그 사람이 골목에서 내미는 손을 향해 모인 손들이었다.
이제 목포 시민은 투표함 앞에 선다. 그날 로데오광장에 모인 200개의 손이 본 것은 여론조사의 숫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불 꺼진 거리에 다시 불을 켜겠다는, 한 사람의 고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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