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완전히 사라졌던 절입니다" 200년 만에 다시 세워진 해발 650m 사찰 명소
형형색색 연등 아래로 전각과 숲길이 이어지는 제주 관음사 경내. / 제주 관음사
형형색색 연등 아래로 전각과 숲길이 이어지는 제주 관음사 경내. / 제주 관음사

관음사는 지금의 고요한 경내만 보면 오래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사찰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 여러 차례 절이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는 시간을 거쳤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 문종 때 처음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고,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관음사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큰 변화가 찾아온 시기는 1702년이다. 당시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 지역 사찰을 없애면서 관음사도 문을 닫았고, 이후 200년 넘게 절의 명맥이 끊겼다. 한라산 자락에 다시 법당이 들어선 것은 20세기 초였다.

안봉려관 스님은 해월굴에서 3년 동안 관음기도를 올린 뒤 법당과 요사를 마련하며 관음사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통영 용화사 등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왔고, 제주 시내에는 포교당 대각사를 세웠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관음사가 다시 제주 불교의 중심 사찰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다.

지금도 경내에 남아 있는 해월굴은 당시 재건의 출발점과 연결된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바위 사이에 자리한 작은 공간이 나타나는데, 대웅전과 불상 중심으로 둘러볼 때와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관음사를 찾는다면 해월굴까지 함께 걸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세워진 관음사는 1939년 또 한 차례 큰 화재를 겪었다. 대웅전과 승방 등이 불타면서 어렵게 마련한 전각 일부를 잃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4·3이 벌어지면서 관음사는 사찰의 역사를 넘어 제주 현대사의 아픈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제주 4·3 한복판에 놓였던 관음사의 아픈 시간

한라산 자락 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한 제주 관음사 일주문. / 제주 관음사
한라산 자락 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한 제주 관음사 일주문. / 제주 관음사

한라산 북쪽 산중에 자리한 관음사는 제주 4·3 당시 무장대가 머무는 거점으로 사용됐다. 어승생악과 가까운 산악 지형을 끼고 있었고, 1949년 1월 한라산 일대에서 공습과 토벌이 이어지면서 관음사 주변에서도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 전투가 벌어졌다.

사찰 건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같은 해 2월 12일이다. 관음사를 접수한 토벌대가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 7채에 불을 질렀고, 경내 건물은 모두 소실됐다. 20세기 초 다시 세운 관음사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또다시 건물을 잃은 것이다.

당시 흔적은 지금도 관음사 주변 산림에 남아 있다. 경내 숲에는 중대와 소대 규모 숙영지 27곳이 있으며, 큰 숙영지는 가로와 세로가 약 25m에 이른다. 주변에는 작은 숙영지와 초소 자리도 남아 있고, 관음사 뒤쪽 아미봉 정상에서도 당시 사용했던 숙영지와 초소 흔적을 볼 수 있다.

연등이 걸린 제주 관음사 경내에서 불교 의식이 진행되는 모습. / 제주 관음사
연등이 걸린 제주 관음사 경내에서 불교 의식이 진행되는 모습. / 제주 관음사

관음사가 다시 전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다. 대웅전을 시작으로 선방과 영산전, 해월각, 사천왕문, 일주문, 종각 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지금의 경내 모습을 갖췄다.

현재 관음사에서 마주하는 전각 대부분은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숲길만 걷고 돌아서기보다 해월굴과 주변 산림에 남아 있는 4·3 흔적까지 함께 살펴보면 관음사가 제주에서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주문부터 해월굴까지 이어지는 관음사 산책

관음사를 찾으면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경내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된다. 입구부터 돌담과 키 큰 나무가 길 양옆으로 이어지고,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연등이 걸린 길과 여러 전각이 차례로 나타난다. 

관음사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주 편에서 가상의 사찰 '황지사'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에 나온 돌담길과 사찰 입구를 직접 보기 위해 찾는 여행객도 많다. 촬영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면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재미도 더해진다.

대웅전 주변을 둘러본 뒤에는 해월각과 해월굴 쪽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해월굴은 안봉려관 스님이 관음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20세기 초 관음사를 다시 세우는 과정과 깊이 연결돼 있다. 규모가 큰 전각과 불상을 지나 숲 안쪽에 자리한 해월굴까지 둘러보면 관음사가 지나온 시간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관음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걷기 명상 프로그램인 '달빛 동동'을 비롯해 토요 명상여행, 휴식형 프로그램, 만다라 체험 등이 마련돼 있다. 프로그램마다 운영 날짜와 시간이 다르므로 방문 전에 일정과 신청 가능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무료 입장부터 제주4·3평화공원까지 함께 보는 하루 코스

울창한 숲과 붉은 꽃나무 사이에 자리한 제주 관음사의 대형 석불. / 제주 관음사
울창한 숲과 붉은 꽃나무 사이에 자리한 제주 관음사의 대형 석불. / 제주 관음사

관음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입장료는 없고 주차장도 이용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나 명상 체험은 프로그램에 따라 별도 비용이 발생한다. 주소는 제주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이다.

관음사 경내 관람과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산행은 구분해서 계획해야 한다. 사찰만 둘러보는 일정이라면 일반적인 산책 복장으로도 충분하지만, 한라산 등반까지 이어갈 경우에는 탐방 예약 여부와 입산 시간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경내에는 돌계단과 흙길이 함께 있어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는 편이 좋다. 비가 내린 날에는 돌계단과 숲길에 물기가 남아 미끄러울 수 있어 발을 천천히 디뎌야 한다. 한라산 자락까지 올라가는 일정이라면 해안 지역과 날씨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 얇은 겉옷도 챙겨두면 좋다.

관음사를 둘러본 뒤 제주 4·3 이야기를 더 살펴보고 싶다면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평화공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관음사에서 차량으로 이동해 평화기념관까지 함께 둘러보면 사찰 주변에서 벌어졌던 전투와 당시 제주 전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다 넓게 이해할 수 있다.

위치 제주 제주시 산록북로 660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연중무휴
입장료 무료·주차 가능
관람 동선 일주문→대웅전→해월각→해월굴
함께 가기 좋은 곳 제주4·3평화공원·평화기념관

오늘의 여행 팁 3가지

- 한라산 자락은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가벼운 바람막이나 얇은 겉옷을 챙겨가는 편이 좋다.

- 경내에는 흙길과 돌계단이 이어지는 구간이 있어 구두나 슬리퍼보다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운동화가 낫다.

- 일주문부터 대웅전과 해월굴까지 천천히 둘러보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오전 시간대에 도착하면 비교적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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