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찾아갑니다…" 서당 최초로 국가 보물이 된 충북의 숨은 명소
옥천 이지당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옥천 이지당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가을이 깊어지면 화려한 단풍 명소뿐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과 자연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에도 눈길이 간다. 특히 강물이 굽이치는 산자락에 자리한 옛 건물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북적이는 관광지를 벗어나 조용히 걷고 쉬어가고 싶은 여행객에게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에는 서화천을 내려다보는 산비탈에 자리한 이지당이 있다. 조선 중기 의병장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터에 세운 기와집으로, 앞쪽에는 물길이 흐르고 뒤쪽에는 기암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 산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서화천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이이의 학문을 이은 조헌이 옥천에서 의병을 모으기까지

옥천 이지당 이층 누. / 한국관광콘텐츠랩
옥천 이지당 이층 누. / 한국관광콘텐츠랩

조헌은 1544년에 태어나 이이(1536~1584)의 학문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학자다. 호는 중봉이며, 1574년에는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옥천에서는 제자를 가르쳤는데, 이지당의 뿌리인 각신서당이 바로 조헌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조헌은 옥천에서 의병을 모았고, 승병장 영규가 이끄는 승병과 함께 청주 수복에 나섰다. 이어 금산전투에 나갔다가 의병 700여 명과 함께 전사했다. 충남 금산군에는 이때 순절한 이들을 모신 칠백의총이 있어, 이지당에서 시작한 조헌의 행적을 금산까지 이어서 살펴볼 수 있다.

시기 내용
1544년 조헌 출생, 이이의 학문을 이어받은 학자
1574년 질정관으로 명나라 방문
1592년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 수복에 나선 뒤 금산전투에서 전사

조헌이 세상을 떠나고 80여 년 뒤 서당 터에 건물이 선 경위

옥천 이지당을 멀리서 본 모습. / 한국관광콘텐츠랩
옥천 이지당을 멀리서 본 모습. / 한국관광콘텐츠랩

조헌이 세상을 떠난 지 80여 년이 지난 1674년 무렵, 김만균이 조헌의 업적을 기리려고 각신서당 터에 건물을 세웠다. 이 건물에 이지당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인 사람은 송시열(1607~1689)이다. 우암이라는 호로도 알려진 송시열은 『시전』, 곧 시경에 나오는 '고산앙지 경행행지'라는 문구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높은 산을 우러르고 밝은 행실을 따른다는 뜻이다.

건립 뒤 이지당은 정사로 쓰였다.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려고 지은 집을 가리킨다. 이곳은 기호학파의 학맥을 잇는 중심 구실을 했는데, 기호학파는 경기와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이이의 학문을 따른 학파다. 이이의 학문은 김장생을 거쳐 송시열로 이어졌고, 조헌의 강학 터였던 이지당은 그 학맥 안에서 의미를 이어 갔다.

건물은 이후에도 손질을 받았다. 광무 5년인 1901년에는 옥천의 금씨, 이씨, 조씨, 안씨 네 문중이 함께 건물을 보수했다. 그 덕분에 이지당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항목 내용
건립 1674년 무렵, 김만균
이름을 지은 사람 송시열
이름의 출처 『시전』 '고산앙지 경행행지'
보수 1901년, 금씨·이씨·조씨·안씨 네 문중

몸채 양옆에 이층 누를 붙인 'ㄷ'자 기와집이 드문 건물로 꼽히는 이유

옥천 이지당 몸채 측면. / 한국관광콘텐츠랩
옥천 이지당 몸채 측면. / 한국관광콘텐츠랩

이지당은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다.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세는 단위로, 정면 6칸이면 건물 앞면에 기둥 사이가 여섯 개 있다는 뜻이다. 몸채 왼쪽에는 3칸, 오른쪽에는 2칸짜리 익랑이 이어져 있다. 익랑은 몸채 양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건물을 말하며, 이 때문에 위에서 보면 전체가 'ㄷ' 모양을 이룬다.

조선 후기 기와집인 이지당은 소박하고 단아하다는 평을 받는다. 기록상 공포는 민도리, 가구는 3량이다. 민도리는 화려한 장식 없이 기둥 위에 도리를 바로 얹는 소박한 방식이고, 3량은 도리 세 줄을 거는 가구 방식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양쪽 익랑에 이층으로 올린 누다. 이런 형태는 매우 드물어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본채 양쪽의 누는 이지당 앞쪽 바깥 공간을 에워싸고, 서화천 쪽 경관을 바라보며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천인합일을 추구하는 휴식 공간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이지당은 정사건축에 누정의 성격을 더한 복합건축으로 불리고, 공부하던 건물이 경치를 보는 자리로도 쓰였다.

송시열 편액과 조헌 친필이 한 건물에 남았다

옥천 이지당 대청 정면. / 한국관광콘텐츠랩
옥천 이지당 대청 정면. / 한국관광콘텐츠랩

이지당이라는 현판 글씨는 송시열의 손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의 친필 편액과 함께 조헌의 친필 '각신서당' 현판이 남아 있고, 조헌을 비롯한 조선 후기 문인들이 남긴 시판도 함께 걸려 있다. 

대청에는 '이지당기'와 '이지당강학조약', 조헌의 친필운이 걸려 있다. 다만 이 현판들의 원본은 도난을 막으려고 1992년부터 옥천 향토전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본을 직접 보려면 이지당만 둘러볼 것이 아니라 향토전시관까지 일정에 넣어야 한다.

도예부터 책 엮기까지 국가유산 체험이 열리는 이지당 방문 정보

'생생 국가유산' 사업은 이지당, 조헌 묘소, 옥주사마소 등을 탐방하고 관련 체험을 하는 옥천군의 프로그램이다. 「조헌과 함께 옥천 나들이」, 「빚고 빚는 이지당」, 「우암 옥주공작소」 등 3개 프로그램이 총 12회 열려 누적 329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 이름의 우암은 송시열의 호이고, 옥주는 옥천의 옛 이름이다. 2026년 남은 기간에는 「빚고 빚는 이지당」 1회와 「우암 옥주공작소」 2회를 추가로 운영할 예정이었다.

2026년 사업에는 선비문화를 주제로 한 도예 체험 '빚고 빚는 이지당'이 들어갔다. 구멍 다섯 개를 뚫어 실로 묶는 옛 제본 방식을 익히는 오침안정법 노트 만들기와, 옛 목조건축에서 부재를 맞춰 짜는 원리를 배우는 체험도 포함됐다. 옥천군은 조헌의 의병 정신과 관련 국가유산을 살펴보는 「옥천, 승리의 시작」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프로그램별 일정과 신청 방법은 '내 손안의 역사 가이드 놀토' 애플리케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지당과 같은 군북면 추소리에는 대청호 물 위로 길게 뻗은 바위 산줄기 부소담악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옥천읍에는 이 지역 출신 시인 정지용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어, 서화천변 방문 뒤 이어 들를 만한 곳으로 꼽힌다. 

항목 내용
주소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126
운영 상시 개방·연중무휴
입장료·주차 0원·주차 가능
문의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체험 일정 '내 손안의 역사 가이드 놀토' 앱

오늘의 여행 팁 3가지

1. 현판 원본은 옥천 향토전시관까지 함께 방문

이지당 현판 원본은 1992년부터 향토전시관에 있다. 이지당만 보고 돌아서면 원본을 놓치니 두 곳을 한 일정으로 묶어 움직인다.

2. 체험 일정은 놀토 앱으로 사전 확인

2026년 남은 체험은 회차가 적어 일정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출발 전에 '내 손안의 역사 가이드 놀토' 앱에서 날짜와 신청 방법을 확인한다.

3. 굽 낮은 운동화와 얇은 겉옷 준비

이지당은 산비탈에 있고 강을 내려다보는 자리라 바람이 불 수 있다. 11월에는 해가 일찍 지니 굽 낮은 운동화를 신고 입고 벗기 편한 겉옷을 챙겨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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