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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황등면, 넓은 농경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하늘이 사라지는 구간을 만난다. 500그루의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초록 터널, 익산 아가페정원이다.
이 정원의 시작은 관광이 아니라 돌봄이었다. 1970년, 노인복지시설 아가페정양원을 세운 서정수 신부가 시설에 머무는 어르신들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나무를 심으면서 오늘날 정원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특정 기업이나 지자체가 조성한 관광용 정원이 아니라, 누군가의 여생을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반세기 넘게 자란 숲이라는 점이 이곳을 남다르게 만든다.
40미터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숲터널의 규모
아가페정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메타세쿼이아 숲터널이다. 약 500그루의 메타세쿼이아가 길 양쪽에 서 있고, 높이는 40m 안팎까지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가 높게 뻗어 한낮에도 숲길 안쪽은 그늘이 짙고, 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만 바닥에 드문드문 떨어진다.
메타세쿼이아는 곧게 자라고 성장 속도가 빠른 나무라 국내 여러 지역의 가로수길과 숲길에서 볼 수 있다.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가페정원의 숲터널은 오랜 시간 자란 나무가 가까운 간격으로 서 있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외에도 섬잣나무와 공작단풍, 향나무, 소나무, 오엽송, 백일홍 등 17종의 수목이 정원 곳곳에 심어져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모습이 바뀌는 계절 초화류
아가페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식물이 피고 진다. 봄에는 수선화와 튤립, 목련이 차례로 피고, 양귀비도 정원 곳곳에 색을 보탠다. 초여름에는 작약과 패랭이꽃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한 나무들이 붉게 물든다. 같은 산책로라도 봄과 가을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 계절을 바꿔 다시 찾는 방문객도 있다.
수목 규모도 작지 않다. 등록된 수목은 17종, 1400여 그루로 알려져 있다. 정원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오래 자란 나무가 많아 작은 수목원처럼 둘러볼 수 있다.
노약자도 부담 없는 평탄한 산책로
아가페정원 산책로는 대체로 평탄하다. 노인복지시설 어르신들이 걷기 위해 만든 길에서 시작된 만큼 계단이나 급한 오르막이 많지 않다. 유아차를 끌고 걷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방문객도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여름에는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그늘이 숲길을 덮는다. 햇볕이 강한 한낮에도 나무 아래로 들어서면 더위가 한결 누그러져, 무더운 날 짧게 산책하기에도 부담이 덜하다.
무료 입장과 사전 예약, 방문 전 챙겨야 할 것들
아가페정원은 입장료와 주차비가 없다. 정원 입구 근처에 전용 주차장과 공터 주차 공간이 있어 차량으로 찾기에도 어렵지 않다. 운영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입장은 오후 4시까지 가능하다.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하며, 입장은 오후 3시에 마감된다. 매주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
평일에는 별도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다만 주말과 공휴일에는 사전 전화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은 방문일 2주 전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받으며, 신청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관람은 오전 9시,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로 나뉘고, 한 회차당 2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다. 회차별 인원은 최대 150명이다.
음식물 반입과 반려동물 동반은 제한될 수 있어 방문 전 운영 여부와 예약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익산 여행과 함께 묶기 좋은 위치
아가페정원은 익산역에서 차량으로 약 15분 거리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익산역이나 북부시장 인근에서 41번, 39번, 39-1번 버스를 탈 수 있고, 택시로는 15분에서 20분가량 걸린다. 익산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미륵사지와 보석박물관도 있어 아가페정원 산책 뒤 인근 명소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50년 넘게 어르신들을 위해 가꿔 온 숲은 이제 시민에게도 열린 정원이 됐다. 화려한 시설보다 오래 자란 나무와 그늘진 산책로가 먼저 보이는 곳이라, 조용히 걷는 여행지로 찾는 사람이 많다.
아가페정원 산책 후 즐기는 황등면 비빔밥 명가 3선
자연 속에서 고요한 산책을 마쳤다면, 인근 황등면에서 지역의 맛을 경험할 차례다. 황등면은 밥을 미리 양념에 비벼 그 위에 육회와 고명을 얹어 내는 '황등비빔밥'으로 이름난 곳이다. 비빔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기 좋은 식당 3곳을 소개한다.
가장 먼저 88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오는 진미식당이다. 이곳은 황등비빔밥을 처음 시작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뜨겁게 데워진 그릇에 고추장 양념으로 비빈 밥을 담고, 부드러운 육회와 잣, 은행 등 각종 고명을 넉넉하게 올려서 먹으면 된다.
다음으로 인기를 끄는 곳은 시장비빔밥이다. 이름 그대로 황등풍물시장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과거부터 수십 년간 지역 상권의 중심을 이뤘던 시장 상인들의 배를 채워주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한일식당 역시 황등면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1979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운영 중인 이곳은 당일 도축한 신선한 한우만을 고집해 육회를 준비한다. 선짓국 대신 무와 고기로 우려낸 맑은 국물을 함께 내어주어 선지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무리 없이 먹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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