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가 벽돌 건물을 감싸 안았어요…" 붉은빛으로 물든 130년 문화유산 성당
푸른 하늘 아래 붉은 벽돌의 가실성당 전각과 배롱나무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푸른 하늘 아래 붉은 벽돌의 가실성당 전각과 배롱나무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동강 인근의 낮은 언덕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가실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여름이면 성당 담장 주변의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우면서 오래된 벽돌 건물과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가실성당은 조선 말기 경북 지역에 천주교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 교구 열한 번째 본당, 경상도 선교가 시작된 곳

경상도 선교의 역사를 품은 고즈넉한 가실성당의 측면 외관과 주변 전경.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경상도 선교의 역사를 품은 고즈넉한 가실성당의 측면 외관과 주변 전경.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가실성당은 1894년 문을 열었고, 이듬해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가밀로 파이아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하경조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불린 파이아스 신부가 신자들을 돌보면서 가실성당은 본당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실성당은 당시 조선 교구에서 열한 번째로 세워진 본당이다. 경상도에서는 대구 계산성당 다음으로 성당 건물이 완공됐다. 관할 지역도 넓어 경북 북부와 충청도 일부 지역의 신자들까지 가실성당을 찾았다.

시간이 지나 신자가 늘고 각 지역에 새 본당이 생기면서 가실성당이 맡던 지역도 차례로 나뉘었다. 주변 여러 본당이 가실성당에서 시작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지역 신자들은 지금도 가실성당을 '어머니 교회'라고 부른다.

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붉은 벽돌 성당

배롱나무꽃 위로 우뚝 솟은 가실성당의 뾰족한 종탑 모습.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배롱나무꽃 위로 우뚝 솟은 가실성당의 뾰족한 종탑 모습.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현재 남아 있는 성당과 사제관은 1922년부터 1923년 사이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설계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와넬 신부가 맡았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었으며, 두꺼운 벽과 둥근 아치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드러난다. 정면 중앙의 뾰족한 종탑에는 고딕 양식도 함께 보인다.

성당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지어졌으며, 전체 면적은 약 217㎡다. 정면 중앙에 세운 종탑이 건물의 높이를 잡고, 내부 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들어가 있다. 햇빛이 창을 통과하면 성당 안쪽 벽과 바닥에 색이 번져 오래된 벽돌 건물과 잘 어울린다.

가실성당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천주교 건축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상북도는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해 2003년 4월 가실성당을 유형문화유산 제348호로 지정했다.

낙동강 전투 속에서도 남은 가실성당

성당 출입구 계단 뒤로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이 보이는 가실성당.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성당 출입구 계단 뒤로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이 보이는 가실성당.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한국전쟁 당시 왜관 일대는 낙동강 방어선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가실성당도 전선과 가까워 남한군과 북한군이 번갈아 야전병원으로 사용했지만, 건물은 큰 피해 없이 남았다.

성당 정문 오른쪽 벽에는 KELLY라는 영어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쟁 중 누가 어떤 이유로 남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성당에 머물렀던 군인이나 관계자가 새겼을 가능성이 있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오른팔을 잃은 뒤 왼손으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초록빛 정원 마당 한가운데에 성모자상과 배롱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초록빛 정원 마당 한가운데에 성모자상과 배롱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가실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독일 출신 예술가 에기노 바이너트가 만들었다. 192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바이너트는 어린 시절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짜흐 수도원에 들어가 금속공예와 조각을 배웠으며, 수도원을 나온 뒤 화가와 공예가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부비트랩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이후 왼손으로 작품을 만들며 활동을 계속했고, 금속공예와 칠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남겼다. 가실성당과의 인연은 2000년대 초 현익현 주임신부가 독일에 있던 바이너트에게 편지를 보내 제작을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가실성당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했으며, 바이너트가 독일 공방에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도 이 시기에 한국으로 옮겨 설치됐다. 창에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40개 장면이 들어가 있고, 성당 안 감실에는 바이너트가 만든 칠보 작품도 남아 있다.

순례길이 시작되고 드라마 촬영도 이뤄진 가실성당

가실성당에서는 대구대교구가 만든 도보 순례길인 '한티 가는 길'이 시작된다. 가실성당에서 한티성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약 45.6㎞로, 성당과 마을길, 산길을 따라 걷는 코스다. 전 구간을 나눠 걷거나 일부 구간만 찾는 순례객도 많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결혼식 장면에도 가실성당이 등장했다. 붉은 벽돌 성당과 마당에서 촬영한 외부 장면이 방송에 나오면서 성당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방문 전 확인할 미사 시간과 이용 안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화사한 분홍빛 꽃나무 사이에 성모상이 서 있다.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화사한 분홍빛 꽃나무 사이에 성모상이 서 있다. / 경북 공식 블로그 김명훈

가실성당은 입장료가 없으며 주변 무료 주차장도 이용할 수 있다. 왜관역에서는 자동차로 약 10분이 걸린다. 성당은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종교 공간이라 내부를 둘러볼 때는 조용히 이동해야 하며, 반려동물은 데려갈 수 없다.

주일 미사는 오전 7시와 오전 10시에 열린다. 평일 미사는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6시 30분,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저녁에 진행된다. 저녁 미사 시간은 동절기 오후 7시 30분, 하절기 오후 8시다. 성당 일정에 따라 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출발 전 미사 시간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가실성당 둘러본 뒤 찾기 좋은 왜관 식당 3곳

가실성당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가량 떨어진 왜관읍내에서 식사할 수 있다. 왜관 미군부대 주변과 읍내에는 경양식, 중식, 국밥을 파는 오래된 식당이 남아 있다.

'한미식당'은 왜관 미군부대 후문 근처에 있다. 40년 넘게 영업해 온 경양식당으로, 코돈부루와 수제 햄버거를 많이 찾는다. 코돈부루는 얇게 편 돼지고기 안에 치즈와 채소를 넣어 튀긴 메뉴다. 

'황금원'은 야끼우동으로 알려진 중식당이다. 오징어와 돼지고기, 채소를 센 불에 볶은 뒤 매콤한 양념과 면을 섞어 낸다. 소스가 면에 고르게 배어 있어 짬뽕이나 짜장면과는 다른 볶음면을 찾을 때 주문하기 좋다.

'천봉경상도국밥'은 돼지고기와 순대가 들어간 국밥을 내는 곳이다. 맑은 국물에 삶은 돼지고기와 순대를 담아 내며, 밥과 김치가 함께 나온다. 가실성당과 왜관읍내를 둘러본 뒤 뜨거운 국물로 식사하기 좋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