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잠겨 있던 문이 열렸습니다…" 입장료 없이 걷는 300m 최전방 지하 벙커
소이산 지하벙커의 외부 진입로 전경. / 철원군
소이산 지하벙커의 외부 진입로 전경. / 철원군

철원평야가 짙은 초록으로 물드는 7월, 50년 넘게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소이산 지하 벙커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강원 철원군은 지난 1일부터 벙커에서 방문객을 받기 시작했으며, 별도의 입장료 없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소이산은 해발 362m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철원평야와 백마고지, 비무장지대 주변까지 넓게 내려다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대에 포함돼 산 주변에는 당시 사용된 군사시설과 진지가 남아 있다.

봉수대에서 군사기지로 바뀐 소이산

평화로운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 일대 산세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풍경. / 한국관광공사
평화로운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 일대 산세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풍경. / 한국관광공사

소이산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 고려시대에는 봉화를 올려 먼 곳에 소식을 전했고, 분단 이후에는 미군 레이더 기지와 방공호가 들어섰다. 소이산 지하 벙커도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1970년대에 만든 군사시설로 알려져 있다.

미군이 2010년 철수한 뒤에도 소이산 일대는 군사통제구역에 남아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었다. 철원군은 2019년부터 강원도와 관할 군부대 협조를 받아 시설 안전을 점검하고 내부를 정비했다. 

300m 지하 통로를 걷는 20분

투박한 흔적을 그대로 살려 서늘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약 300m 길이의 지하 통로. / 철원군
투박한 흔적을 그대로 살려 서늘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약 300m 길이의 지하 통로. / 철원군

벙커의 전체 길이는 약 300m다. 입구를 지나면 둥근 천장 아래로 좁고 긴 통로가 이어지고, 콘크리트 벽 사이에서는 서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바깥 기온이 높은 여름에도 내부는 비교적 차가워 얇은 겉옷을 챙기는 편이 좋다.

철원군은 벙커를 새 전시관으로 바꾸기보다 군사시설의 형태와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정비했다. 방문객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바닥과 조명을 손봤고, 콘크리트 벽과 통로 곳곳에는 과거 시설의 모습이 남아 있다. 어두운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벙커가 사용되던 당시의 분위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지하에 있는 밀폐 공간이라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최대 50명이다. 내부를 둘러보는 데는 약 20분이 걸린다. 주말이나 방문객이 몰리는 시기에는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릴 수 있다.

콘크리트 벽을 채우는 빛과 소리

어두운 벙커 내부 벽면과 둥근 천장을 형형색색의 빛과 미디어아트로 가득 채운 신비로운 모습. / 철원군
어두운 벙커 내부 벽면과 둥근 천장을 형형색색의 빛과 미디어아트로 가득 채운 신비로운 모습. / 철원군

벙커 안쪽에는 철원의 역사와 자연을 보여주는 미디어아트가 설치돼 있다. 어두운 콘크리트 벽 위로 조명과 레이저가 번지고, 통로를 따라 음악과 효과음이 울려 퍼진다. 영상에는 철원평야와 두루미, 전쟁의 흔적과 평화를 담은 장면이 차례로 나온다.

낮은 조명 아래 통로를 걷다 보면 빛이 벽과 천장을 넓게 채우며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다. 군사시설의 거친 콘크리트 외형은 그대로 남아 있어 화려한 영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모노레일로 정상에 오른 뒤 벙커까지 걷는 코스

소이산 정상 부근까지 편안하게 오를 수 있도록 운행 중인 초록색 모노레일. / 한국관광공사
소이산 정상 부근까지 편안하게 오를 수 있도록 운행 중인 초록색 모노레일. / 한국관광공사

소이산 여행은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시작한다. 공원에서 2022년 7월 운행을 시작한 모노레일을 타면 가파른 산길을 걷지 않고 정상 부근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철원평야와 백마고지, 김일성고지로도 불리는 고암산, 비무장지대 주변이 넓게 펼쳐진다.

전망대를 둘러본 뒤 하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지하 벙커가 나온다. 모노레일을 이용하지 않는 방문객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갈 수 있다. 걷는 시간과 체력을 고려해 모노레일과 산책로 가운데 이동 방법을 고르면 된다.

소이산 주변에는 백마고지와 제2땅굴, 노동당사,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평야가 모여 있다. 오전에는 전망대와 지하 벙커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백마고지나 제2땅굴, 노동당사로 이동하면 철원의 전쟁사와 분단 흔적을 하루 동안 살펴볼 수 있다.

운영시간과 요금, 방문 전 확인할 사항

소이산 지하 벙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매주 화요일은 문을 닫는다. 입장료는 무료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오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소이산 모노레일과 공원 일부 시설은 요금을 받는다. 모노레일 이용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승차권을 구매하면 철원사랑상품권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모노레일 이용객이 몰려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오전에 도착하거나 사전 예약을 이용하면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명절 연휴나 기상 상황에 따라 벙커와 공원, 모노레일 운영 일정이 달라질 수 있으니 출발 전 철원군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소이산 둘러본 뒤 찾기 좋은 철원 맛집 3곳

소이산 지하 벙커와 철원역사문화공원을 둘러본 뒤에는 철원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철원은 오대쌀과 메밀, 버섯을 넣은 음식이 잘 알려져 있어 국물 요리부터 막국수, 쌈밥까지 취향에 맞게 고르기 좋다.

따뜻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솔향기'의 손만두버섯전골을 찾을 수 있다. 큼직한 손만두와 버섯, 고기를 넣고 끓여 국물이 진하다. 벙커와 전망대를 둘러본 뒤 따뜻하게 식사하기 좋고, 전골을 먹은 뒤 남은 국물에 철원 오대쌀로 죽을 끓여 먹을 수 있다.

시원한 면 요리를 먹고 싶다면 '내대막국수'를 추천한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뽑은 면에 담백한 육수를 곁들이며, 메밀 향이 진하지 않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막국수만으로 양이 부족하다면 두툼하게 썬 수육을 함께 주문하면 된다.

철원 오대쌀로 지은 밥을 먹고 싶다면 '기와집'을 들를 수 있다. 찰기 있는 오대쌀밥에 제육볶음이나 오징어볶음, 쌈 채소가 함께 나온다. 매콤한 볶음 요리를 밥 위에 올리거나 채소에 싸 먹으면 소이산 관람 뒤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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