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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강화도에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어도 정족산 자락에 들어서면 울창한 숲이 햇빛을 가려준다. 삼랑성 성문을 지나 나무 그늘이 덮인 길을 따라 오르면 오래된 전각과 성곽 안에 자리한 전등사를 만난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전등사는 정족산 숲길을 걸으며 사찰과 성곽, 여러 역사 유적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2023년 5월 4일부터 사찰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별도의 관람료 없이 경내에 들어가 대웅보전과 약사전, 정족사고, 양헌수승전비를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문화유산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어 삼랑성과 전등사에 남은 오랜 역사를 천천히 따라가기도 어렵지 않다.
삼랑성 안에 이어진 전등사의 역사
전등사를 둘러싼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성곽이다. 처음에는 흙을 다져 만든 토성이었으나 삼국시대를 거치며 돌로 다시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벽 안쪽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전등사가 자리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주요 기록을 보관하는 정족사고가 성 안에 들어섰으며,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의 침입을 막아낸 전투가 벌어졌다. 삼랑성 성문에서 전등사 경내까지 걷다 보면 고대 성곽과 사찰, 조선왕조실록 보관처, 근대 전투의 자취를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국내 현존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랜 창건 기록을 지닌 전등사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에 자리한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 아도 화상이 세운 사찰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 이름은 진종사였으며, 한반도 남쪽에 남아 있는 사찰 가운데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 중기까지의 기록은 자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 원종 7년인 1266년 큰 규모의 중창을 거치면서 사찰의 모습도 달라졌다. 이후 충렬왕 8년인 1282년 왕비 정화궁주가 대장경과 옥등을 시주했고, 이를 계기로 전등사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381년 창건 이후 여러 차례 보수와 중창을 거치며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단군 설화부터 조선왕조실록까지 역사가 쌓인 공간
전등사를 둘러싼 삼랑성은 정족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성이다.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했다는 설화에서 이름이 비롯됐으며, 관련 이야기는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돼 있다.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성곽은 둘레가 약 2.3㎞에 이른다. 처음 쌓은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고려가 삼랑성 안에 가궐을 세운 1259년 이전부터 성곽이 존재했던 것으로 본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시기에는 삼랑성 안에 임시 궁궐인 가궐이 들어섰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성벽과 문루를 여러 차례 고쳐 쌓았다. 산성 내부에는 전등사와 정족산사고, 양헌수승전비가 자리해 고려의 대몽항쟁부터 조선 후기 병인양요까지 여러 시대의 흔적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왕실의 기록을 보관했던 정족산사고도 전등사 경내에 남아 있다. 강화 마니산에 있던 사고를 1660년 정족산으로 옮겼으며, 1678년부터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서적을 보관했다. 전등사는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 지정돼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정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1187책으로 전해지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보관돼 있다.
병인양요 장병들의 이름이 남은 대웅보전
전등사는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 큰불이 나면서 주요 전각이 대부분 소실됐다. 이후 지경 스님이 재건을 이끌었고, 1621년 대웅보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다시 세워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대웅보전은 팔작지붕을 올린 조선 중기 목조건축물로, 공포와 처마 아래 조각이 정교하게 남아 있어 보물로 지정돼 있다.
대웅보전 내부 기둥과 벽면을 살펴보면 먹으로 적은 이름과 글씨가 곳곳에 남아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전투에 나선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이름을 적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한 뒤 정족산성으로 진입했지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의 공격을 받고 물러났다.
전등사 동문 부근에는 정족산성 전투에서 승리한 양헌수 장군의 공을 기리는 양헌수승전비가 세워져 있다. 대웅보전 안에 남은 장병들의 이름과 승전비를 함께 살펴보면 병인양요 당시 전등사와 삼랑성이 전투 현장으로 쓰였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입장료 없이 둘러보는 전등사 문화유산과 숲길
전등사는 2023년 5월 4일부터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아 별도의 입장료 없이 경내를 둘러볼 수 있다. 대웅보전뿐 아니라 약사전과 철종, 사인비구가 만든 동종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도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어 삼랑성과 전등사에 남은 역사를 천천히 따라가기 좋다.
전각 사이에는 흙길과 돌계단이 이어지고, 길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다. 나뭇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에는 그늘이 경내 곳곳을 덮어 한낮에도 햇볕을 피하며 걸을 수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숲길을 따라 산책하며 목조 전각과 성곽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어 조용한 여름 나들이 장소로 찾는 사람이 많다.
주차장 이용 안내와 여름 숲길 안전 수칙
전등사는 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지만 동문과 남문 주차장은 유료로 운영한다. 주차료는 승용차 등 소형 차량 3000원, 버스와 승합차 등 대형 차량 8000원이며 현금과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반려견과 함께 방문할 때는 목줄을 착용하고 동반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주차장에서 전등사 경내로 향하는 길에는 흙길과 돌계단, 경사진 구간이 섞여 있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이 햇볕을 가려주지만 습기가 많거나 비가 내린 뒤에는 바닥이 미끄러워질 수 있어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얇고 땀이 잘 마르는 옷을 입고 모자와 물을 챙기면 한낮에도 숲길을 한결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삼랑성 성곽길까지 둘러볼 계획이라면 풀숲에 오래 머물지 말고 정해진 길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걷는 동안에는 목이 마르기 전부터 물을 조금씩 마시고, 그늘이 보일 때마다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다.
전등사 산책 뒤 들르는 강화도 맛집 3곳
전등사와 삼랑성 숲길을 둘러본 뒤에는 주변 식당에서 산채 요리와 강화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동문 주차장과 가까운 '남문식당'에서는 도토리묵과 산채비빔밥을 판매한다. 여러 산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산채비빔밥은 숲길을 걷고 난 뒤 가볍게 배를 채우기 알맞으며, 도토리묵을 곁들이면 담백한 맛을 더할 수 있다.
고기 메뉴가 생각날 때는 길상면에 있는 '원두막가든'으로 이동할 수 있다. 양념에 재운 돼지갈비를 숯불에 구워 내며, 밑반찬과 함께 차려져 가족이나 여러 사람이 나눠 먹기 편하다. 달큰한 양념과 숯불 향이 어우러져 산책 뒤 든든하게 식사할 수 있다.
강화도 향토 음식을 맛보려면 ‘마니산 단골식당’의 젓국갈비도 빼놓을 수 없다. 돼지갈비와 두부, 채소에 강화 새우젓을 넣고 맑게 끓여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난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어 전등사 산책을 마친 뒤 든든하게 배를 채우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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