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허 위에 이런 풍경이 남았습니다…" 돌기둥과 무지개다리 품은 DMZ 인근 사찰
석교인 능파교 너머로 웅장하게 서 있는 봉서루와 건봉사 전경. / 고성군 문화관광
석교인 능파교 너머로 웅장하게 서 있는 봉서루와 건봉사 전경. / 고성군 문화관광

강원도 고성을 찾으면 푸른 바다와 넓은 호수가 먼저 떠오르지만, 해안도로를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금강산 자락에 있는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때 세워진 사찰로,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흙길을 따라 걸으면 울창한 숲 사이로 오래된 산문이 보인다. 한때 3000여 칸의 전각이 들어섰던 큰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넓은 절터와 일부 전각만 남아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경내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화려한 건물보다 넓은 절터와 조용한 숲길이 먼저 눈에 들어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게 된다. 

승병을 모으고 일본과의 협상에 나선 사명대사

역사 깊은 대웅전 경내 모습. / 고성군 문화관광
역사 깊은 대웅전 경내 모습. / 고성군 문화관광

건봉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쟁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건봉사에서 전국의 승려들을 불러 모아 승병을 꾸렸고, 평소 불경을 읽으며 수행하던 스님들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향했다. 건봉사는 승병들이 머물며 출정을 준비하는 장소로 쓰였고, 강원도 북부에서 왜군에 맞서는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사명대사의 행적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포로 송환을 두고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으며, 전쟁 중 끌려간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도 앞장섰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사명대사는 전쟁이 끝난 뒤 사신의 임무를 맡아 포로 송환 문제를 풀어나갔다. 건봉사를 둘러보면 전쟁 전후로 이어진 사명대사의 삶과 당시 승려들이 겪었던 시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불상 대신 창 너머 사리탑을 바라보는 적멸보궁

사리탑을 조망하도록 불상 없이 세워진 적멸보궁. / 한국관광공사
사리탑을 조망하도록 불상 없이 세워진 적멸보궁. / 한국관광공사

건봉사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반 법당과는 다른 모습의 적멸보궁을 만날 수 있다. 법당 안에는 불상이 놓여 있지 않고, 정면에 낸 유리창 너머로 뒤편 언덕의 사리탑이 보인다. 참배객은 불상 대신 사리탑을 바라보며 절을 올리는데,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이라 따로 불상을 두지 않았다.

사리탑에는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치아 사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빼앗겼다가 사명대사가 일본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다시 돌아왔다. 이후 건봉사에 봉안됐으며, 사찰이 전쟁과 화재를 겪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켜왔다.

화재와 전쟁 속에서도 남은 건봉사 불이문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소실되지 않고 유일하게 견뎌낸 불이문. / 고성군 문화관광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소실되지 않고 유일하게 견뎌낸 불이문. / 고성군 문화관광

건봉사 입구에 서 있는 불이문은 사찰이 겪은 화재와 전쟁을 함께 견딘 오래된 문이다. 1878년 큰불이 나면서 3000칸이 넘는 전각이 불탔지만 불이문은 남았고, 6·25전쟁 당시 고성 일대에 포격이 쏟아져 건봉사 건물 대부분이 무너졌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불이문은 '둘이 아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삶과 죽음, 선과 악, 부처와 중생처럼 서로 반대편에 놓인 듯한 존재도 근본으로 돌아가면 하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나온 이름이다. 남과 북이 맞서 싸웠던 고성에 이런 이름을 지닌 문이 남았다는 사실은 건봉사가 겪은 전쟁의 역사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한다. 

계곡 위로 둥근 곡선을 그리는 건봉사 능파교

불이문을 지나 경내 안쪽으로 들어가면 계곡 위에 놓인 돌다리 하나가 보인다. 보물 제1336호인 능파교다. 잘 다듬은 돌을 무지개처럼 둥글게 쌓아 만든 다리로, 아래쪽 아치가 다리의 무게를 받치면서 계곡 양쪽을 잇고 있다. 오랜 세월 비와 눈을 맞았지만 돌 사이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아 옛 석조 기술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능파라는 이름은 물결 위를 가볍게 걷는다는 뜻에서 붙었다. 불이문을 지나 이 다리를 건너면 대웅전이 있는 안쪽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짧은 거리지만 계곡을 사이에 두고 다리를 건너는 동안 바깥의 소음은 멀어지고, 사찰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는 느낌이 든다.

다리 위에서는 발아래로 계곡물이 바위 사이를 흐르고, 고개를 들면 금강산 자락이 겹겹이 보인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나무 사이로 오래된 돌다리의 둥근 선이 드러나 한동안 걸음을 멈추게 한다. 

벚꽃이 지면 숲이 짙어지고 눈 내리면 고요해지는 산사길

기와지붕 및 연못가와 화사하게 어우러진 봄날의 산사 풍경. / 고성군 문화관광
기와지붕 및 연못가와 화사하게 어우러진 봄날의 산사 풍경. / 고성군 문화관광

건봉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변 모습도 크게 달라진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른 가지마다 연분홍 벚꽃이 피고, 꽃잎이 떨어질 무렵에는 오래된 기와지붕과 넓은 마당 위로 하얗고 분홍빛인 꽃잎이 흩어진다.

여름에는 사찰을 둘러싼 나무가 짙어지면서 햇볕을 가려주고,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도 한낮의 열기를 식혀준다. 가을이 오면 금강산 자락에서 내려온 단풍이 산비탈과 사찰 주변을 붉고 노랗게 채운다. 

눈이 전각과 넓은 옛 절터를 아늑하게 감싸 안은 건봉사 겨울 항공 뷰. / 고성군 문화관광
눈이 전각과 넓은 옛 절터를 아늑하게 감싸 안은 건봉사 겨울 항공 뷰. / 고성군 문화관광

겨울에는 기와지붕과 옛 절터, 숲길이 눈으로 덮이면서 주변 소리까지 잦아든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들리고, 넓은 절터를 천천히 걷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도 잠시 가라앉는다.

산에서 내려와 바다와 호수를 달리는 1박 2일 나들이

건봉사 산책 후 드라이브로 찾아가기 좋은 탁 트인 명파해수욕장. / 한국관광공사
건봉사 산책 후 드라이브로 찾아가기 좋은 탁 트인 명파해수욕장. / 한국관광공사

건봉사를 둘러본 뒤에는 산길을 빠져나와 화진포 쪽으로 이동하면 된다. 차로 약 20분을 달리면 넓은 호수와 소나무 숲이 이어지는 화진포에 닿는다. 호숫가 산책로는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걷기 좋고, 주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일성이 머물렀던 별장도 남아 있어 고성의 근현대사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화진포를 둘러본 뒤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명파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해변으로, 넓은 모래사장과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걷기 좋다. 하루 더 머문다면 다음 날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고를 마친 뒤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는 일정도 짤 수 있다.

건봉사는 전각이 한곳에 모여 있는 사찰과 달리 옛 절터와 석축, 돌담이 넓게 흩어져 있다. 경내를 충분히 둘러보려면 발을 편하게 받쳐주는 운동화를 신고, 불이문과 능파교,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길을 미리 확인해 두는 편이 좋다.

건봉사 나들이 뒤 맛보는 고성 향토 음식 

건봉사와 화진포를 둘러보고 나면 고성 북부 해안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며 쉬어가기 좋다. 산길과 호숫가를 오래 걸어 몸에 열이 올랐다면 화진포 주변에서 동치미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살얼음이 뜬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 먹으면 입안이 시원해지고, 새콤하게 무친 명태회나 수육을 곁들이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화진포에서 대진항 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가자미물회를 내는 횟집도 만날 수 있다. 잘게 썬 가자미와 채소에 차가운 육수를 부어 먹는 음식으로, 새콤한 국물에 밥이나 소면을 말면 산책 뒤 허기도 채울 수 있다.

차가운 음식보다 따뜻한 국물이 당긴다면 거진항 주변의 생태찌개 식당을 찾으면 된다. 부드러운 생태살과 큼직하게 썬 무를 함께 끓여 국물이 시원하고 칼칼하며, 밑반찬과 밥을 곁들이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닌 뒤 편안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