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육영수 결혼식이 열렸던 곳이라니”…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붉은 벽돌 건물
계산동성당 야경. / ⓒ한국관광콘텐츠랩-김효서
계산동성당 야경. / ⓒ한국관광콘텐츠랩-김효서

대구 원도심을 여행할 때는 근대 골목을 따라 걷는 사람이 많다. 골목 사이로 붉은 벽돌 건물과 뾰족한 첨탑이 보이지만, 성당 앞에서 사진만 남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물 안팎을 천천히 둘러보면, 대구의 근현대사와 여러 인물의 이야기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대구 중구 서성로에 있는 계산동성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대성당이다. 서울 명동성당과 평양 관후리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 성당으로 기록돼 있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90호로 지정됐으며, 100년 넘게 대구 도심을 지켜왔다.

화재로 사라진 한옥 성당, 벽돌 건물로 다시 재건

계산동성당 건물.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계산동성당 건물. / ⓒ한국관광콘텐츠랩-이범수

계산동성당의 시작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1897년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현재 성당 터를 마련하고, 그 자리에 있던 초가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첫발을 뗐다. 이후 1899년 한식 목조 십자형 성당을 신축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건물이 사라졌다. 재건 과정에서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았고,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함석과 스테인드글라스 등 자재는 프랑스와 홍콩에서 들여왔다.

2년의 공사 끝에 1902년,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서양식 건물이 완공됐다.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로 고딕풍 장식을 더한 외관에, 정면 양쪽으로 팔각 첨탑을 두 개 세운 모습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뾰족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되면서 주교좌성당이 됐다. 이후 신자 수가 늘자 종탑 높이를 두 배로 높이고, 건물 남북쪽을 넓히는 증축 공사를 진행해 1918년 현재의 규모를 갖췄다.

대통령 결혼식부터 추기경 서품까지

계산동성당 내부 모습. / ⓒ한국관광콘텐츠랩-앙지뉴 필름
계산동성당 내부 모습. / ⓒ한국관광콘텐츠랩-앙지뉴 필름

계산동성당은 종교 시설을 넘어 여러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50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1951년에는 훗날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는 김수환 신부가 이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도 이곳을 찾아 계몽 활동과 강연을 펼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영화 '검은 사제들'의 주요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다.

실제로 종을 치는 성당

계산동성당 종탑에 설치돼 있던 젤마나 아오스딩 종. / ⓒ한국관광콘텐츠랩-김효서
계산동성당 종탑에 설치돼 있던 젤마나 아오스딩 종. / ⓒ한국관광콘텐츠랩-김효서

계산동성당은 대구 도심에서 실제로 종을 치는 몇 안 되는 성당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남구 대명동의 가르멜여자수도원, 서울주교좌성당과 더불어 삼종 시간마다 종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꼽힌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인 대구제일교회와 마주 보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두 종교 시설이 나란히 자리한 계산동과 동산동 일대는 대구 그리스도교 역사의 출발지로 소개된다.

계산동성당의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이며, 범어대성당과 함께 대구대교구의 공동 주교좌성당 역할을 하고 있다. 주일 미사는 오전 6시 30분을 시작으로 오전 8시 30분, 오전 9시 30분, 오전 11시(교중미사), 오후 4시(청년미사), 오후 5시 30분, 오후 8시, 오후 9시 30분까지 하루 8차례 봉헌된다. 월요일은 오전 6시 30분,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6시 30분과 오전 11시 30분, 오후 7시 30분에 미사가 있다. 토요일은 오전 6시 30분 미사 외에 오후 4시 어린이 미사와 오후 7시 30분 청소년 미사가 별도로 열린다. 계산동성당의 입장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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