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배롱나무 아래서 계곡 물소리를 듣는다" 80m 기암과 계곡이 펼쳐지는 천년 산사
8월 한여름이면 분홍빛 배롱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반야사 경내 풍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8월 한여름이면 분홍빛 배롱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반야사 경내 풍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반야사는 백화산 자락과 석천계곡 사이에 조용히 들어선 산사다. 산 깊숙한 곳까지 오래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절 주변에서 계곡과 산 풍경을 함께 볼 수 있어 가족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백화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산허리를 따라 크게 굽어 흐르며 태극 모양을 만들고, 물길이 오랜 세월 다듬어 놓은 땅은 위에서 보면 연꽃을 닮았다.

반야사의 시작은 신라 성덕왕 27년인 728년으로 전해진다. 당시 원효대사의 제자로 알려진 상원화상이 처음 절을 세웠고, 고려 충숙왕 12년인 1325년에는 학조대사가 낡은 건물을 고쳐 다시 정비했다. 조선 세조 10년인 1464년에는 세조의 허가를 받아 절의 규모를 크게 넓혔다. 사찰 중심에 있는 극락전은 정확히 언제 다시 세워졌는지 확인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낡은 부분을 손보고 단청도 새로 칠해 지금은 단정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세조가 글을 남겼다는 망경대 약수터 이야기

반야사 앞마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폭 약 50m의 석천계곡이 백화산 자락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맑은 물 아래에는 넓고 평평한 바위가 깔려 있으며, 여름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계곡 풍경을 바라보며 쉬어가기 좋다. 계곡 한쪽에 자리한 망경대는 옥빛 물과 바위 절벽이 맞닿아 있는 곳으로,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에서 열린 법회를 마치고 반야사에 들렀을 때 문수동자가 나타나 망경대의 약수로 안내했다고 한다. 피부병을 앓던 세조는 동자의 말에 따라 계곡물에 몸을 씻었고, 이후 문수동자를 만난 일을 기리며 직접 글을 남겼다는 내용이다.

세조가 쓴 어필은 현재도 사찰에 보관돼 있다. 반야사라는 이름도 문수보살의 지혜를 뜻하는 '반야'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망경대와 세조 이야기는 사찰의 이름에 담긴 뜻을 함께 보여준다.

북쪽 탑벌에서 옮겨온 반야사 삼층석탑

만개한 배롱나무 꽃 너머로 고풍스럽게 자리한 보물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과 대웅전. / 한국관광콘텐츠랩
만개한 배롱나무 꽃 너머로 고풍스럽게 자리한 보물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과 대웅전. / 한국관광콘텐츠랩

반야사 경내에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처음부터 현재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원래는 사찰 북쪽 석천계곡 인근의 탑벌에 세워져 있었다. 이후 훼손을 막고 관리하기 위해 1950년 사찰 안으로 옮겼고, 현재는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관리하고 있다.

석탑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넓게 뻗은 지붕돌과 곧게 올라간 몸돌의 비율이 눈에 들어온다. 백제계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지붕돌과 신라계 석탑의 반듯한 구성이 함께 담겨 있어 고려 전기 석탑 양식을 살펴보는 자료로 평가된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을 맞았지만 전체 형태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탑 주변을 천천히 돌거나 두 손을 모아 가족의 평안을 비는 방문객도 볼 수 있다.

산허리에 자리한 거대한 호랑이 형상

사찰 뒤편 백화산 산비탈의 파쇄석이 만들어낸 거대한 호랑이 형상과 경내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사찰 뒤편 백화산 산비탈의 파쇄석이 만들어낸 거대한 호랑이 형상과 경내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반야사 경내에 들어서면 사찰 뒤편 백화산 산비탈에 자리한 호랑이 형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허리를 가로지른 돌무더기가 머리와 몸통, 길게 치켜든 꼬리처럼 이어져 마치 호랑이 한 마리가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높이는 약 80m, 전체 길이는 200m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 형상은 사람이 바위를 깎거나 색을 칠해 만든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산 위에서 흘러내린 돌이 비탈에 쌓이고, 주변으로 자란 나무와 돌무더기의 경계가 이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만들어졌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돌과 숲의 색이 선명하게 나뉘어 호랑이 모양도 한결 알아보기 쉽다.

마음을 비우고 지혜를 찾아 떠나는 템플스테이

고즈넉한 산사에 머물며 템플스테이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반야사 대웅전. / 한국관광콘텐츠랩
고즈넉한 산사에 머물며 템플스테이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반야사 대웅전. / 한국관광콘텐츠랩

반야사에서는 산사에 머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연중 운영한다. 사찰 예절을 배우고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에 참여하면서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며, 일정이 끝난 뒤에는 경내와 석천계곡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사찰 생활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사람부터 잠시 쉬어가고 싶은 사람까지 각자 머무는 방식에 맞춰 프로그램을 고를 수 있다.

정해진 체험 일정을 따라가기보다 편하게 머물고 싶다면 프라즈나 템플스테이를 선택하면 된다. 프라즈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를 뜻한다. 산사에서 충분히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참가 날짜와 숙박 기간, 요금은 시기마다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반야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살펴본 뒤 예약해야 한다.

가족 방문 전 확인해야 할 반야사 이용 안내

울창한 숲길을 따라 사찰의 시작을 알리는 '백화산 반야사' 일주문. / 한국관광콘텐츠랩
울창한 숲길을 따라 사찰의 시작을 알리는 '백화산 반야사' 일주문. / 한국관광콘텐츠랩

반야사는 연중무휴로 문을 열며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별도의 입장료 없이 경내를 둘러볼 수 있고, 자동차 이용객을 위한 주차장도 갖추고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방문 차량이 몰릴 수 있으므로 혼잡한 시간을 피하려면 오전에 도착하는 편이 좋다.

화장실은 경내와 주차장 인근에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사찰 안에는 흙길과 돌길이 섞여 있어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한다면 이동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유모차 대여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으므로 개인 유모차나 아기 띠를 챙겨야 한다.

관람과 사찰 운영에 관한 문의는 종무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는 별도 문의 창구가 있어 일정과 참가 방법을 담당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

문화유산과 계곡을 지키는 관람 수칙

법당 내부 모습. / 한국관광콘텐츠랩
법당 내부 모습. / 한국관광콘텐츠랩

반야사 뒤편의 호랑이 형상은 산비탈에 쌓인 파쇄석과 숲의 경계가 만들어낸 자연 지형이다. 돌이 흘러내릴 수 있는 구간이어서 가까이 올라가거나 탐방로 밖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경내의 오래된 백일홍나무도 뿌리 주변을 밟거나 가지에 손을 대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편이 좋다. 

사찰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폭이 좁거나 굽은 구간이 있어 반대편 차량을 살피며 속도를 낮춰야 한다. 가을에는 낙엽이 쌓이고 겨울에는 눈과 얼음이 남을 수 있으므로 바닥이 잘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는 편이 안전하다. 경내에서는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전각 가까이에서 뛰지 말고, 가져온 음식물과 쓰레기는 모두 챙겨 나와야 한다.

반야사 산책 뒤 들러볼 영동의 향토 음식점 2곳

반야사를 둘러본 뒤 황간면 시내 쪽으로 이동하면 영동에서 오래 먹어온 올뱅이국밥을 맛볼 수 있다. 올뱅이는 다슬기를 가리키는 영동 지역 말이다. 된장을 푼 국물에 올뱅이와 아욱, 수제비를 함께 넣고 끓여 구수하면서도 개운한 맛을 낸다. '안성식당'도 올뱅이국밥으로 잘 알려진 곳으로, 산책을 마친 뒤 따뜻한 국물과 함께 든든하게 식사하기 좋다.

면 요리가 생각난다면 황간면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덕승관'의 유니짜장도 있다. 돼지고기와 채소를 잘게 다져 춘장과 함께 볶아 면 위에 올리며, 건더기가 작아 소스가 면에 고루 묻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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