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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 기온이 오르면 실내보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정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오래된 건축과 계절 꽃을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옛집도 살펴볼 만하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자리한 명재고택은 여름이면 오래된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운다. 300년이 넘은 배롱나무가 연못 가운데 섬을 둘러싸고 있어, 고택과 꽃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명재고택은 조선 후기 학자 명재 윤증이 머물던 곳으로, 고택 곳곳에는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와 옛 건물이 남아 있다.
명재고택, 노성산과 마주한 300년 종가터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이자 소론을 이끈 명재 윤증이 머물던 곳으로, 윤증선생고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고, 지금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집터는 노성산 줄기를 등지고,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쪽을 바라보도록 배치돼 있다. 거문고를 타는 선녀 모습을 닮았다는 옥녀탄금형 명당이라는 풍수 해석도 전해진다. 집 앞으로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어 작은 돌산인 석가산을 얹었는데, 그 섬 위에 심긴 배롱나무 한 그루가 30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나무는 7월 말부터 8월 사이 꽃을 피우고, 꽃이 진 뒤에도 100일 동안 붉은빛이 이어진다고 해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고택이라는 이름 표기에도 사연이 담겨 있다. 1709년 아들과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정성껏 집을 지었지만, 윤증은 집이 선비에게 과분하다며 끝내 이곳에 살지 않고 4㎞ 떨어진 유봉의 작은 초가에서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명재고택은 옛 고자 대신 세상을 떠난 사람을 뜻하는 연고 고자를 쓴다.
담장 없는 명재고택 사랑채와 안채
명재고택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다른 곳과 달리 담을 두르지 않고 마당에 그대로 열려 있다. 중앙에는 사랑방을, 오른쪽에는 대청을, 왼쪽에는 누마루를 뒀다.
큰사랑과 작은사랑을 잇는 문은 안고지기라 불린다. 네 짝 가운데 두 짝은 미닫이로, 양쪽 끝 두 짝은 여닫이로 만들어 필요에 따라 여닫는 방식을 달리할 수 있다. 문을 모두 열면 두 공간이 하나로 이어져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로도 쓸 수 있다.
사랑채 돌계단 옆 댓돌에는 일영표준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윤증의 9대손인 윤하중이 천문학에 밝아 독자적으로 해시계를 만들면서 그 기준점을 이 자리에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글자는 닳아 없어져 지금 새긴 것은 뒤에 다시 새로 만든 것이다.
안채는 ㄷ자 모양이며, 일자형 중문간채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자 짜임을 이룬다. 대문을 지나도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중문 뒤에 내외벽을 세웠는데, 벽 아래쪽을 40㎝가량 비워둬 안주인이 밖에서 온 손님의 신발만 보고도 누구인지 미리 헤아릴 수 있게 했다. 안채 옆 광채는 안채보다 지붕을 낮게 두고 북쪽으로 갈수록 폭을 좁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볕과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했다. 그 결과 광채 북쪽 창고는 여름에도 서늘해 곡식을 보관하기 좋았고, 안채는 광채에 가리지 않고 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명재고택 관람 시간과 체험 프로그램
명재고택 마당과 산책로 곳곳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남아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고택을 지키듯 서 있고, 가을이면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든다. 여름에는 배롱나무꽃이 이 나무들 사이에서 눈길을 끈다.
명재고택 관람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하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둘러볼 수 있다. 또한 관람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고택에서는 다례, 천연염색, 국악 공연 같은 체험도 운영된다. 열 명 이상이 모이면 다례와 천연염색 체험을 신청할 수 있고, 공연은 별도로 협의해 진행한다.
추억으로 남기기 좋은 명재고택 한옥스테이
명재고택은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사랑채의 큰사랑방과 작은사랑방, 누마루, 안채의 안사랑방과 건넌방까지 여러 공간이 숙박용으로 열려 있고, 초가 형태 별채와 도서관 공간도 마련돼 있다. 방마다 4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묵을 수 있고 와이파이도 갖췄지만, 조식은 제공되지 않고 화장실은 대부분 공동으로 사용한다. 입실과 퇴실 시각은 예약 시 별도로 안내된다.
고택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논산 돈암서원이 있다. 조선 중기 예학 사상가 사계 김장생을 기리며 세운 서원으로, 강학 공간인 양성당과 보물로 지정된 강당 응도당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호남선 연산역 인근에는 퇴역 열차를 활용한 기차문화체험관과 1911년 세워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 남아 있고, 옛 곡물 창고를 고쳐 2022년 문을 연 연산문화창고에서는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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