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만 펼쳐지는 붉은 풍경…" 철거 65년 뒤 다시 세운 무료 서원 산책길
기와지붕과 돌담 너머로 붉은 배롱나무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충곡서원 입구 전경. / 충남관광
기와지붕과 돌담 너머로 붉은 배롱나무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충곡서원 입구 전경. / 충남관광

여름이 되면 거리와 공원 곳곳에서 붉은 꽃송이가 오래 피어 있는 배롱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 배롱나무꽃은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차례로 피고 지며, 기와지붕과 돌담이 남아 있는 서원이나 향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충남 논산에는 옛 건축물과 붉은 배롱나무꽃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부적면 충곡로269번길에 자리한 충곡서원이다.

한옥 처마와 담장을 붉게 물들이는 배롱나무꽃

서원 마당으로 이어지는 돌길 양옆을 분홍빛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수놓은 풍경. / 충남관광
서원 마당으로 이어지는 돌길 양옆을 분홍빛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수놓은 풍경. / 충남관광

충곡서원 입구로 들어서면 담장을 따라 늘어선 배롱나무가 가장 먼저 보인다. 굵은 줄기에서 뻗은 가지마다 붉은 꽃송이가 피어 있고, 꽃 사이로 기와지붕과 처마가 보인다. 먼저 핀 꽃이 지면 뒤이어 다른 꽃망울이 피기 때문에 8월 내내 담장과 마당에서 붉은 배롱나무꽃을 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가지가 가볍게 흔들리고 꽃잎은 오래된 목조건물 앞마당으로 떨어진다. 사진에는 짙은 나뭇빛의 기둥과 기와, 붉은 배롱나무꽃이 함께 담긴다. 한낮에는 햇빛을 받은 꽃송이가 선명하게 보이고,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에는 처마 그림자와 부드러운 햇살이 더해져 차분한 서원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세워진 충곡서원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뒤 복원돼 고풍스러운 전각과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모습. / 충남관광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뒤 복원돼 고풍스러운 전각과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모습. / 충남관광

충곡서원은 1688년 숙종 14년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세웠다. 이후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학문을 익히는 공간으로 쓰였지만, 1868년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건물이 철거됐다. 서원이 사라진 뒤에는 터만 남았고, 제향도 오랫동안 중단됐다.

1933년 지방 유림이 다시 힘을 모으면서 복원이 시작됐고, 관계 기관의 협조를 받아 옛터에 건물을 다시 세웠다. 제자리에 복원한 뒤에는 충곡서원지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1976년 충남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됐다. 철거된 뒤에도 옛터를 지키고 제향을 되살리려 했던 지역 유림의 노력이 현재의 충곡서원으로 남았다.

향교와 서원은 무엇이 다를까

방문객을 맞이하는 충곡서원 외관. / 논산시
방문객을 맞이하는 충곡서원 외관. / 논산시

논산에는 향교와 서원 등 유교 교육과 제향 기능을 맡았던 문화유산이 여러 곳 남아 있다. 두 시설은 조선시대에 학문을 가르치고 성현의 위패를 모셨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운 주체와 운영 방식은 달랐다. 향교는 나라가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냈고, 서원은 지역 유림이 세운 사립 교육기관으로 학문을 가르치며 우리나라 선현의 뜻을 기렸다.

관람할 때는 건물의 쓰임을 살펴보면 차이를 이해하기 쉽다. 향교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과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을 볼 수 있고, 서원에서는 강학 공간과 선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충곡서원도 지역 유림이 세운 곳으로, 경내를 걸으며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계백 장군과 사육신의 위패를 함께 모신 충곡서원

충곡서원지 모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곡서원지 모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곡서원에는 백제 계백 장군과 조선시대 사육신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사육신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은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목숨을 걸고 뜻을 지킨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한 서원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33년 서원을 다시 세울 때는 이현동과 박증, 김정망, 김익겸, 김홍익, 이민진, 김만중, 박종, 조병시, 김자빈, 이학순 등 11명의 위패도 새로 모셨다. 경내 서재 앞에는 2004년에 세운 충곡서원지비가 있고, 내삼문 왼쪽에는 매죽헌 성삼문을 기록한 창녕성선생유허비가 남아 있다.

외삼문 안쪽에서 살펴본 충곡서원의 제향 구역

충곡서원 경내 마당 모습. / 충남청
충곡서원 경내 마당 모습. / 충남청

서원과 향교는 평소 외삼문이 닫혀 있어 안쪽을 살펴보기 어려운 곳이 많다. 충곡서원도 제례나 보수정비 공사가 있는 날에는 외삼문이 열려 경내 건물을 둘러볼 수 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유생들이 머물던 동재와 서재가 마당 양쪽에 놓여 있고, 다른 서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당 건물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마당 뒤편에는 두 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충곡사가 자리한다. 기단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고, 계단 위에서는 외삼문과 동재, 서재, 앞마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충곡서원과 백제군사박물관을 함께 둘러보는 당일 코스

충곡서원 관람을 마친 뒤에는 가까운 백제군사박물관으로 이동해 논산에 남은 백제 역사를 더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황산벌 전투에서 숨진 계백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자리하며, 전시관에서는 백제의 무기와 군사 제도, 황산벌 전투에 얽힌 내용을 다룬다. 

충곡서원과 계백 장군 유적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포함된 곳이어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건물 안쪽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8월에는 한낮 햇볕이 강하니 모자나 양산, 마실 물을 챙기고 오전 일찍 움직이는 편이 좋다. 야외 구간을 오래 걸어야 할 때는 그늘에서 자주 쉬고, 몸이 뜨겁거나 어지러우면 관람을 멈춘 뒤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충곡서원 관람 뒤 탑정호에서 먹는 민물매운탕

충곡서원과 백제군사박물관까지 둘러보고 나면 탑정호 주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할 수 있다. 역사 유적과 야외 산책로를 오랫동안 걸은 뒤 뜨거운 국물이 생각난다면 '신풍매운탕'에서 참게매운탕을 주문해 볼 만하다. 참게를 넣고 푹 끓여 국물 맛이 진하고, 건더기를 건져 먹은 뒤 국물에 밥을 곁들이면 한 끼를 든든하게 마칠 수 있다.

참게 대신 민물고기 맛을 살린 메뉴를 찾는 사람은 메기매운탕을 고를 수 있고, 새우를 넣어 끓인 새우탕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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