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가 탄생한 곳입니다… 정약용이 6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한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 클로즈업.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강진 다산초당 클로즈업.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여름철 여행지를 고를 때는 바다나 계곡처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눈길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더위를 피해 그늘진 산길을 걸으며 옛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는 조선 후기 한 학자가 오랜 유배 생활을 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옛 거처가 남아 있다. 방 몇 칸으로 이뤄진 건물뿐 아니라 그가 직접 사용했던 샘과 차를 끓이던 돌, 글자를 새긴 바위도 보존돼 있어 당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 상업시설이 몰려 있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둘러보기에도 좋다.

다산초당,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조선 학자의 거처

강진 다산초당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강진 다산초당 전경.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다산초당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에 위치한다. 뒤로는 만덕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지형에 자리해, 산길을 걷는 동안 바다 쪽 풍경도 함께 볼 수 있다. 정약용의 호로 널리 알려진 '다산'이라는 이름 역시 이 일대 귤동 뒷산의 이름에서 따왔다.

정약용은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돼 경상도 장기로 유배됐다가, 황사영 백서사건과 얽히면서 다시 강진으로 옮겨졌다. 이후 18년에 이르는 유배 생활을 강진에서 보냈다. 처음부터 초당에서 지낸 것은 아니다. 유배 초기 8년 동안은 읍내 주막과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의 집 등을 오가며 지냈고, 1808년 봄부터 해배된 1818년 9월까지 10여 년을 이곳 초당에서 머물렀다.

강진 다산초당 연못.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강진 다산초당 연못.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정약용이 초당에 머문 시기는 그의 학문 활동에서 가장 왕성했던 때로 꼽힌다. 그는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한편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비롯해 6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완성했다. 현재의 초당 건물은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가 복원한 것이다. 정약용이 지내던 동암과 제자들이 머물렀던 서암도 함께 복원돼, 당시 공간이 어떻게 나뉘어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정석·약천·다조·천일각… 곳곳에 남은 흔적

강진 다산초당 뒤편 바위에 새겨진 정석 글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강진 다산초당 뒤편 바위에 새겨진 정석 글자.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초당 주변에는 세부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병풍바위에는 정약용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丁石)' 두 글자가 있고, 그가 수맥을 찾아 사용했다는 약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를 끓일 때 썼던 반석인 다조와 연못, 석가산이 어우러진 연지석가산도 실물로 남아 있다.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강진 다산초당 연지석가산 안내문. / ⓒ한국관광콘텐츠랩-김지호

천일각에서는 학자로서의 모습과 다른 인간적인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흑산도로 유배된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지었다고 전해지는 정자다. 다산초당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입장료는 없고 주차 공간도 마련돼 있어 자가용으로도 오갈 수 있다.

다산초당 근처 맛집 '대통령밥상'

다산초당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곳에는 남도식 한정식을 내는 '대통령밥상'이 있다. 시장 먹거리 장터 안쪽에 자리해 있어, 처음 찾는 이들은 건물 안쪽까지 걸어 들어가야 큰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메뉴는 크게 대통령밥상, 다산한정식, 청렴한정식 세 가지로 나뉜다. 특히 다산한정식을 주문하면 회와 불고기, 꼬막무침, 생선구이가 기본으로 나오고 갓김치와 묵은지, 젓갈 등 남도 반찬이 카트로 두 차례에 걸쳐 나올 만큼 넉넉하게 곁들여진다.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이 많아 다양한 입맛에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점심시간대에는 손님이 몰릴 수 있어, 시간 여유가 없다면 미리 전화로 예약해 두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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